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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ug 09. 2020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에서

‘나답지 않게’라는 단어에 담긴 나다움의 의미

나는 침묵을 동반한 어색한 분위기를 유난히 못 견뎌했다. 아마 사람, 장소, 상황, 분위기 할 것 없이 ‘처음’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낯가림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처음’이라는 한정적 상황만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낯을 가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가 하는 일에서 나의 위치는 늘 상황을 설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오도록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이 불편한 상황을 반전시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어색한 분위기를 깬다는 것. 나로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지만 무형의 존재였기에 사람들은 내가 애쓰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는 나는 심하게 낯을 가리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들이 아는’ 내가 될 수 없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나답지 않게 오늘 왜 이렇게 다운되어 있냐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당시에 내가 꽂힌 말은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아니라 ‘나답지 않게’라는 단어에 담긴 나다움의 의미였다. 나는 인정하지 않는 나다움이 호감을 받으면 받을수록 내 고민은 깊어졌다. 과연 나답다는 건 뭘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에서 방황했다. 나는 ‘나다움의 나’는 오직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하나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집을 사랑하고 점점 더 집순이가 되어갔던 건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안심이 드는 유일한 장소가 집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나는 연기를 하고 있고, 사람들은 나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나를 두고,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든가, '겉과 속이 다른 가식적인 사람'이란 걸 들킬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보면 내 속의 다른 나는 가식적인 게 아니라 본캐와 부캐 같은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나의 본캐는 ‘한량’이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노트북 타자를 두드려야 먹고살 수 있는 프리랜서. 한량은 본캐임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체적으로 주말에만 활동할 뿐 대부분의 날은 프리랜서인 부캐가 감당한다. 본캐에 비해 그나마 활동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낯가림이 덜한 부캐는 인기가 많은 편이다. 본캐는 집에만 있고 싶어 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지도 않으면서 부캐가 사랑받는 게 늘 못 마땅하다. 그래서 자꾸 부캐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부캐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건 자신이고, 사람들은 자신을 본캐로 봐주니까.


여전히 아직도 내가 잘 모르는 내 안의 내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나만 모르는 원래의 나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하지 않는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만 볼 수 있는 나일 수도 있다. 진실게임도 아닌데 나는 그것이 ‘내가 맞다, 아니다’로 고민했던 날들이 길었다. ‘그런 나도 있구나’ 하고 말면 될 일. 내 마음대로 나다움을 편집하고 단단히 만들고 또 만들었다. 어리석게도 나를 아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나를 몰라서 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던 때가 더 많았다. 사람들이 보는 내가 정확할 때가 더 많았고, 나라는 사람을 더 아끼는 것도 내가 아니라 타인일 때가 더 많았다. 이젠 안다.  사람들이 보는 나를 내가 인정하든 하지 않든, 나의 전부든 일부든 그것 역시 나라는 걸.


사람들이 정의하는 ‘나다움’이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닌 것들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못 보는 걸 그들이 자꾸 발견하는데... 그래도 영 아니다 싶은 것들은 ‘이 사람은 나를 그렇게 보는구나’ 하고 만다. 어쩌면 그게 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채로 그냥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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