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진 Aug 11. 2020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알겠더라

도대체 언제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선명하지 않을 만큼 비가 일상이 돼 버렸다. 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모든 것이 다 다운돼 있는 것 같다. 그중에서도 가장 티를 내는 건 내 기분. 요 며칠은 진짜 나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땅 끝까지 꺼져버린 느낌이다. 하긴 비를 싫어하는데 끊임없이 비가 내리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비를 싫어했던 걸까?’


중학교 시절, 비 오는 날이면 다른 아이들은 하얀색 그대로였는데 유난히 내 스타킹만 땡땡이 얼룩무늬였다. 발이 정사이즈가 아닌 탓에 뒤꿈치가 신발에서 매번 슬쩍슬쩍 탈출했다. 그때마다 땅에 떨어진 빗물이 흙과 함께 종아리에 방울방울 달라붙었다.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칠칠치 못하게 보이는 것도 싫었다. 그게 신경이 쓰이면서도 깔창을 깔아서 맞게 신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냥 내 발이 문제라고만 생각했고, 정사이즈에 맞게 커지기만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적응하는 스타일이지 뭔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시대 흐름(?)에 맞게 커피색 스타킹을 신어도 됐을 때가 너무 좋았다. 다른 아이들은 어른 여자의 다리처럼 섹시해 보이는 게 좋았던 것 같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젠 빗물이 스타킹에 튀어도 티가 덜 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안심이 됐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내가 비를 싫어하게 된 이유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코 찔찔이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 갑자기 비가 오면 엄마를 기다렸다. 맞벌이 부부였으니까, 못 온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렸다. 그러다 오지 않는 엄마를 탓하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비가 오는 건 엄마 탓이 아니니까. 알지만 어쩐지 비가 오면 나는 내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비가 안 왔으면’하고 매일 생각했다.


원래부터 준비성이 철저한 아이는 아니었다. 거기다 타고난 귀차니즘까지 갖췄으니 우산을 가지고 다니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은 대구는 비보다는 폭염을 걱정해야 하는 도시. 그래도 비가 안 오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엄마는 오지 않는다’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엄마는 늘 우산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는데 우산을 챙겨 오지 않은 건 나다. 그러니까 내 탓이 맞다. 그런데도 엄마가 아주 조금은 미웠던 것 같다. 엄마에게는 나보다 일이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엄마가 데리러 오는 다른 아이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는 오늘은 올지도 모를 엄마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라는 엄마는 오지 않고 비만 계속 내렸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엄마를 기다렸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는 안 오는 게 아니라 오고 싶어도 못 오는 거였으니까. 결국 3학년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엄마를 기다리지 않았고, 엄마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 오는 게 싫었던 마음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부터 엄마가 전화를 했다. 뉴스를 보니 서울도 집중 호우 문제가 심각한데 ‘너는 괜찮냐’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비가 온다고 다 큰 딸을 걱정하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갑자기 비가 오면 엄마는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엄마를 원망했던 그때를 엄마가 영원히 몰랐으면 했다.


신발은 산 그대로 신고 다니면 여전히 헐떡거린다. 이젠 깔창을 까는 요령이 생겼으니까 빗물이 튈 걱정은 없다. 갑자기 비가 오면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은 지금도 없다. 그러나 괜찮다. 이제는 우산 하나 살 정도의 여유는 있으니까. 그래도 비는 아직도 싫다. 이제는 그냥 비 오는 날을 싫어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기본 루틴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비 오는 날이 싫어서 비를 싫어하게 됐는데 계속 싫어하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싫어하게 된 게 이유라면 이유겠지.


한번 먹은 마음이 잘 안 변한다는 게 신뢰나 의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의 장점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인간관계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게 무엇이든 처음 이미지, 그대로 각인되는 편이었고, 한 번 아니면 다음이 없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절대적이었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세 번은 만나보라고 하는데, 매번 그게 안 됐다. 처음이 아니면 ‘그냥’ 아닌 채로 남았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호감 받는 사람이 되려고 늘 애쓰면서 살았던 날도 있었다. 때로는 그런 내 노력이 부질없을 때도 있었고, 뜻하지 않게 오해로 돌아왔을 때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억울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한 번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구분 지었다. 나야말로 내로남불 그 자체. 아무리 싫어하는데 이유가 없다지만 그게 내가 되어 보니까 '그냥' 싫어하는 것만큼 아픈 것도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알겠더라.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와 ‘내가 아는 나’ 사이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