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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ug 17. 2020

당신을 뉴스‘사회면’에서 만나는 일이 없어야 하는 이유

우리 모두는 서로의 추억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학교 학보사 기자 생활을 함께 하던 동기는 남자 7명 여자 7명, 나포함 14명이었다. 환상(?)의 비율이었는데도 아쉽게도 사내(!) 커플은 없었다. 그러니까 기자를 그만둔 이유가 이별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각자 나름의 이런저런 이유로 서로 다른 시기에 그만두었다. 그중 비교적 빨리 그만둔 건 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습기자 시절 워낙 동기애를 시험받고, 함께 버틴 시간 덕분에 지금까지 서로에 대한 인연은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 평일 오후 5시쯤, 존재하지 않았던 신문사 동기 단톡 방이 만들어졌다. 이유가 딱히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한꺼번에 묻기 위함이 그 시작이었다. 철부지 스무 살 신입생 시절 만났던 우리가 어느덧 밥벌이로 삼을 일도 찾고, 나만 빼고 모두 가정도 꾸린 만큼 지나간 시절 이야기는 시간도 넘고, 공간도 넘어 끝없이 이어졌다.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누구 하나 그만 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나간 과거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주 오랜만에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 속 우리를 만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서로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그때의 우리. ‘그땐 그랬지’ 타임은 진실게임처럼 주인공을 바꿔가며 계속됐고,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돌아왔다.

여. 전. 히. 좋. 아. 해?


주어 없는 질문이지만 아무도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게 그런 사람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내가 좋아한 가수다. 그의 팬이라는 사실은 내 오랜 시그니처다. 때문에 사는 동안 어느 지점에서 만났던 사람이던지 간에 내 이야기에서 그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갈아타기(?) 없이 그 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다들 신기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고 할 수는 없다. 실은 잊고 보낸 날들도 많았다. 운 좋게(?) 그 사람만큼 좋아하게 된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다.  지금까지 내가 놓지 못했던 건 어쩌면 ‘그’가 아니라 ‘그를 좋아했던 그때의 나’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전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하지 않았다. 추억을 현재까지 끌고 온 건 8할 이상,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나는 그 시간들에 자연스럽게 흘러왔다. 어느 순간이든 그에게 실망할 일이 있었다면 내 마음은 멈췄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될 일은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문득 그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밤 8시가 되자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자 동기들뿐이었다. 남자 동기들이 퇴근 후 집에 도착한 것 같다고 예상했다. 우리들의 동기에서 남편이자 아빠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시시한 이야기 일뿐인데, 혹시라도 아내가 오해(?)할까 봐 톡을 아예 읽지도 않는 것 같았다. 마무리 인사 정도는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싶었지만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그냥 좀 웃겼던 것 같다. 취재 핑계로 5월 가정의 달에도 집에 4번밖에 안 들어간 녀석들이 가정적(!)으로 변하다니! 심지어 녀석들이 좀 기특하기도 했던 것 같다. 메시지 읽음 숫자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모두 없어졌다. 나이 먹고 귀여워진 이상한 애들(!) 언젠가는 이날의 너희를 추억하는 날도 오겠구나 생각했다.


추억의 생명력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저하게 현재에 달려있다. 그때뿐 아니라 현재의 삶에도 최선을 다해야 원래의 빛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 시간들은 단지 후회나 미련뿐인 ‘과거’ 밖에 될 수 없다. 지나온 시간 모두가 추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현재 진행형의 추억을 가지기란 어렵다. 만약 추억할 게 많은 사람이라면 그만큼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거라는 의미도 되지 않을까.


나는 가끔 농담처럼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추억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 뉴스 ‘사회면’이나 '고소장'에서 서로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하자고 말이다.


나의 지나온 시간들이 '흑역사'가 아닌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늘 애써준 수많은 당신께 고맙다. 앞으로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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