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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ug 19. 2020

갑질이 따로 있나, 당신이 하는 게 갑질이지!

거절에도 예의는 필요하다

나는 프리랜서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 돈을 벌 수 있다. 대부분 프로젝트 당 돈을 받는 만큼 건수(!)가 많을수록 수입은 늘어난다. 하지만 현실은 매달 일정한 수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목표금액에 넘치는 달도 있지만 어떨 때는 0일 때도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무슨 일이든 일단 하는 게 좋다. 다음 달의 나는 물론 열심히 일하고 싶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나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일을 할 때 옆은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스타일이라는 것. 때문에 두 개 세 개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하나에만 집중하기도 솔직히 벅찼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나의 일. 생각만 한다고 아이디어가 화수분처럼 떠오른다면 나는 이미 부자가 됐을 것이다. 사실 그게 능력이긴 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일을 하기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하고자 노력했다. 내가 받는 돈으로 나의 가치가 증명되는 만큼 적어도 ‘돈 아깝다’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인지 돈보다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을 선택할 때 나름대로는 몹시 까다로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잘할 수 있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

‘잘’이라는 기준에는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잘’과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잘’ 두 가지 다 포함된다. 이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조건이 너무 좋은 일은 욕심내지 않았다. 아니, 속지 않았다. 돈을 많이 주는 일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아이디어가 부족한데 그런 일을 하고 나면 영혼까지 털려버렸고, 다른 프로젝트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정신적, 신체적, 금전적 모두.


나에게 지급되는 페이가 적당한가?

이 일을 좋아하면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돈을 협상해야 될 때이다. 언제나 그렇듯 많이 준다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예산이 부족하니 ‘알아서’ 깎아달라는 게 그들의 가장 큰 요구 사항이다. 그걸 내가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일을 성사시키는 데 가장 큰 문제였다. 처음에는 1도 양보 없이 거절했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밀당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조건을 한번 두 번 받아들이면 불합리한 요구가 당연한 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나였다. 내가 아니어도 하겠다는 사람들은 많았던 탓이다. 이상을 실현하는 것도 좋지만 돈도 벌어야겠기에 나로서는 꿈과 현실이 서로 다치지 않을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 했다.


내가 투자해야 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에게 시간이 돈이다. 돈은 다소 적더라도 시간적으로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충분하다면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어떤 면에서는 돈 많이 주는 곳 보다 시간 적게 쓰는 일이 만족도 면에서는 훨씬 좋았다.


이상은 내가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부자가 되지는 못했어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딱히 여러 가지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일이 재미있다는 게 전부다. 일이 재미있는데 돈까지 벌 수 있으니 내가 싫어할 이유가 없지...


당연히 싫어질 때도 있다. 얼마 전에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준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홀드 되거나 엎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통장이 텅장이 되어가는 상황이라 불안하던 차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기다 나쁘지 않은 아니, 괜찮은 조건이었다. 나를 섭외한 프로젝트 담당자와 나 그리고 함께 일할 다른 파트의 프리랜서 A와 미팅을 진행했다. 남은 것은 세부 사항에 대한 계약서 작성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그 일은 최종적으로 내가 빠지고 A가 하게 됐다. A가 나 말고 다른 사람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A는 오랫동안 그 일을 해온 경력자였고, 나에게는 처음 시도해보는 새로운 분야였다. A는 내 능력을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A가 의심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 탈로날 것이 두려웠다는 것을. 미팅을 마치고 따로 이야기할 게 있다면서 나를 먼저 돌려보낼 때 나는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


A는 간부급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그날 미팅에서 A가 한 말이라고는 구체적인 구상이나 실현 방안이 아니었다. 은근슬쩍 과시한 간부와의 친분, 그게 다였다. 초짜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그때 내가 그러겠다고 해야 했을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이 싸움에서 내가 빠져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프리랜서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갑질을 당한 적은 많지만 같은 입장의 프리랜서에게 당한 가장 어이없는 갑질이었다.


먼저 나에게 제안한 담당자는 난감한 상황에 많이 미안해했다. 사실 나도 허탈했다. 그런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도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일 뿐 아무런 힘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다음을 약속했다.


통화를 끝내고 한참 후 담당자로부터 장문의 문자가 왔다.


거절에도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의 문자를 보면서 깨달았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있다면 ‘예스’ 일 때보다 ‘노’ 일 때 더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지금까지 겪은 상황은 그 반대였다. 최종 결과에 대한 연락 없음이 곧 암묵적 거절이었다. 미안함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내가 받은 상처가 더 컸다. 만약 그의 문자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온 내 커리어가 한순간 무시당했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보낸 한 통의 문자, 그것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받아본 적 없던 위로였다


나는 고마움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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