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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Sep 12. 2020

노력이 지나치면 진심도 오해받을 수 있다.

        그는 내가 변했다고 했다. 나는 바빠져서 전처럼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뿐, 변한 건 아니라고 했다. 나의 설명에도 그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 아니야, 누나는 변했어!      


        그는 마지막까지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고, 나는 조금도 나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어리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12회 방송 예정인 프로그램의 작가와 일반인 출연자로 알게 됐다. 그가 방송에 출연하게 된 건 처음으로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큰 도전이었다. 매회 주인공은 바뀌었는데, 나는 그를 2회 방송 주인공으로 섭외했고, 그의 출연이 마무리될 때까지 책임지고 관리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의 매니저였던 셈이다. 그를 처음 만나게 된 때는 프로그램이 첫 방송되기 두 달 전쯤으로, 나머지 주인공들의 섭외가 계속 진행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미 출연이 확정된 그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때이기도 했다. 평범한 22살 대학생의 솔직함이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었기에 나는 그의 진솔함을 끌어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일주일에 3일 이상 만나고, 매일 통화하다시피 하면서 가능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내 노력에 그도 열의로 응답했고, 덕분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웃으면서 방송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인연은 그와 내 역할이 끝나고 나서도 몇 달 동안 계속 이어졌다. 그는 나보다 8살이나 어렸지만 워낙 서글서글한 성격 탓에 허물없는 술친구로 지냈다. 불안정한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고, 22살 만이 할 수 있는 풋풋한 연애 상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오직 그에게만 집중했고 내가 줄 수 있는 진심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심한 듯 그가 말했다.     


- 누나는 변했어!      


        나로서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를 대함에 있어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는데, 나를 원망하는 그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변했다며 근거를 대는 그는 막힘이 없었다.     


        그에게 우리 프로그램은 이미 끝난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말고도 계속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출연자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늘어났다. 전처럼 그에게 시간을 쓸 수 있지 않았고, 그에게만 향했던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1/N 해야 했다. 그래서 그가 내게 걸었던 전화가 점점 부재중 전화로 남겨지는 일이 많아졌다. 다시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현재 업무에 떠밀려 ‘TO DO’ 리스트에서 매번 그의 이름은 다음으로 미뤄지기 일쑤였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주어진 일을 해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의 동의 없이 나는 이해를 구했고, 분명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최선을 다했던 나만을 기억하는 그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나는 팩트로 나를 설명했고, 그는 감정으로 서운함을 내비쳤다. 머리와 마음이 싸웠으니 서로가 멀게만 느껴진 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끝내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없었고, 서서히 멀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를 잃고 나서야 그가 느꼈을 외로움을 온전히 이해했다. 빈틈없이 바빠진 내 시간만 생각하느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 그의 시간을 빼곡히 채웠을 내가, 모래알처럼 계속 빠져나갔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뒤늦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와 나의 관계가 생각보다 빨리 어긋났던 것은 내가 120% 이상의 노력을 매 순간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그게 진짜 내 진심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섭외라는 목적이 있었던 마음은 원하던 결과를 가졌을 때, 이내 지쳐버렸다. 일방적인 나의 노력으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로 나를 방어했다. 때로는 왜 이해해주지 못하냐고 상대를 탓할 때마저도 있었다. 그날의 나는 그의 말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은 내가, 변한 것이 맞다.     


        일적인 관계에서 인간적인 관계로 변화가 찾아왔을 때, 나는 솔직해지지 못했다. 그동안의 내 마음이 다 거짓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건 아니었다. 진심 없이 그의 눈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내가 약삭빠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일정 부분 노력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마냥 떳떳하지 않았고, 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결국 상처를 주고 말았지만...     


        때로 노력이 지나치면 진심도 오해받을 수 있다. 할 수 있는 노력을 전부 쏟는 것이 관계의 지름길은 될 수 있겠지만 언제나 최선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됐다.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내가 지킬 수 있는 내 몫의 진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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