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했어요?’ 오랫동안 나에게 으레 따라붙던 질문들. 질문의 목적어가 ‘남자 친구’에서 ‘결혼’으로 바뀐 건 언제였을까. 아무튼 현실적으로(?) 결혼과 멀어진 나이가 된 최근에서야 꼬리처럼 따라다녔던 저 질문들은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묻지 않는 이유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당연히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고.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여러 번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나의 사생활을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특히 일로 만난 사람들과 술자리에서는. 어느 업계나 소문은 존재한다. 일부 사실이 있다고 할지라도 구전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소문에는 MSG가 첨가되고 때로는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기도 했다. 그렇게 진실처럼 떠돌아다니는 소문은 생각보다 기대 수명이 길어서 어떤 경우에는 선배의, 선배의, 선배 때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을 때도 있었다. 영웅담이나 무용담 같은 이야기는 상관없다. 그런 이야기들은 남는 게 있고, 배울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연애’, ‘잠자리’, ‘부부생활’ 이야기는 달랐다. 아주 사적인 둘만의 이야기가 단지 웃고 즐길 ‘에피소드’로 취급되고, 술자리에서 소비되는 게 싫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사랑했던 마음까지도 안주로 이리저리 씹히다가 일회용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져, 이 사람, 저 사람이 유효기간 없이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런 일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막을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입을 닫고 살았다. 그래서 ‘남자 친구 있어요?’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남자 친구는 없어서 없고, 있어도 없다.
거기서 끝나면 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거였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왜 없느냐.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냐. 어떤 스타일 좋아하느냐. 이 자리에 있는 누가 괜찮은데 한번 만나볼 생각 없느냐. 아니면 그 옆에 사람은 어떠냐.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는 여러 남자들과 내가 매칭 되기 시작했다. 차마 ‘지금 이거 나만 불편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 빼고는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술자리. ‘분위기 망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대답 대신 나는 웃고, 또 웃고, 계속 웃어넘겼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그런 시간에 익숙해지고, 점점 무뎌져 갔다. 어느 날의 나는 심지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저랑 만나보실래요?'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나는 몇 번이나 했던가.
- 너는 현진 작가님, 여자 친구로 어때?
그는 나보다 못해도 족히 여덟 살은 어릴 것 같은 조연출 후배에게 묻고 있었다. 그 말 때문에 갑자기 회식 자리의 모든 눈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단 한 사람, 그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그의 나이였던 예전의 나를 만났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당혹스러움과 난처함이 교대로 스치고 있었다. 당연히 그의 진심을 묻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재미(!)로 던진 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 적당히 웃음으로 넘기면서 깨우쳤지만 이 상황이 처음인 그에게는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는 질문에 낚여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10. 9. 8. 7..... 오직 내 귀에만 들리는 운명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내가 그랬듯, 그러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 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그 위험신호가 그가 아닌 나를 압박했다.
- 근데 저...
한 번 갔다 왔어요
도대체 그 말이 왜 툭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장 먼저 ‘아차’ 했다. 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농담이었다고 수습하기에는 이미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나마 단 하나의 위안이라면 순식간에 그와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 함께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 그때까지 수없이 여러 번 겪은 상황이지만 일순간 상황이 정리된 것은 처음이었다. 알고 있었다. 분명 선을 넘은 말이었다. 다시는 농담이라도 이런 식으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좋았다. 이 한 마디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마치 마스터 카드를 얻은 것 같았다. 결국 다신 안 하겠다는 다짐은 그 순간뿐이 됐다. 그 거짓말을 그 후에도 여러 번 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과해져, 어느 순간의 나는 미혼모일 때도 있었다.
- 저 결혼은 안 했는데 아이는 있어요
그들이 웃자고 해보는 말이 괴로웠다. ‘NO’라고 하지 못해서 질질 끌려다니는 거지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끝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현실을 이용해 ‘그러니 제발 그 입 다물어줄래요?’를 대신했다. 부디 아니길 바라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상처나 아픔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웃자고 나를 힘들게 하던 그들과 불쾌한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남의 사연을 훔친 내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고 나서 깨달았다. 웃자고 하는 말에는 적어도 한 사람은 절대로 웃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웃자고 하는 말’은 누가 정하는 걸까?
나에게는 아직 까슬한 상처가
남들에게는 웃을 수 있는 일이 라면
나는 솔직하게 싫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넘기는 게 맞을까.
같이 웃기에는 ‘나는’ 아프고,
혼자 안 웃으면 ‘나만’ 이상하고.
이러나 저라나
그 말에 마음 쏟는 건 나뿐이겠지.
가끔은 말과 말 사이,
상대의 진심을 해석해 내고 마는
눈치 빠른 저울질이 야속하다.
나를 찌르려 하는 말이 아닌 걸 안다.
아닌 걸 너무 알아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