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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Oct 06. 2020

엄마와 나,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시력을 찾고 깨달은 세 가지

엄마는 한 달 전 백내장 수술을 했다. 백내장 수술을 권유받고도 무서워서 못하겠다며 오랫동안 차일피일 미루던 엄마는 수정체가 흔들려 위험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나서야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내가 이렇게 피부가 쪼글쪼글하고,
 잡티가 많고, 못 생겼는지 전에는 몰랐다.
처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말에는 광명(!)을 찾은 기쁨 못지않게, 거울 앞에서 확인한 세월의 흔적에 적잖이 받은 충격까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백내장으로 엄마가 보았던 세상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대충 짐작만 할 뿐 알 수 없는 내가, 그 말만큼은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있었다. 거울 앞에서 내 얼굴을 보고 충격(!) 받았던 그런 날이. 초등학교 4학년, 시력이 0.8일 무렵부터 안경을 썼는데 눈은 참 쓸데없을 정도로 성실하게 계속 나빠졌고, 최종적으로는 난시, 근시 합쳐서 -7이라는 숫자에 도달했다. 안경을 안 쓰면 속된 말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내 얼굴에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던 날은 대학교 1학년 때, 안경 대신 렌즈를 낀 날이었다. 성인으로서 완성형(?)에 이른 나의 민낯을 실루엣이 아닌 실물로 또렷하게 마주한 첫 순간이었다. 얼굴의 여백의 미(?)가 정말이지 ‘충. 격. 적’이었다. 특히나 무쌍에 눈이 작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눈과 눈 사이가 그렇게나 멀고 콧대라는 것이 그 정도로 없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말했다.


 참... 못... 생겼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해야 되는 것은 정말로 괴롭다는 사실을 그 말을 내뱉으면서 느꼈다. 화장을 도피처로 삼았던 것 같고, 쌩얼일 때는 전처럼 안경이 심심한 얼굴을 매워줘 민낯을 보는 충격(!)을 줄여주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번째 고비(?)는 10년 후 찾아왔다. 솔직히 다른 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시력이 나쁜 게 짐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렌즈, 렌즈 통, 보존액, 안경, 안경집, 안경 닦개, 인공눈물 등을 챙겨 다녀야 했는데 이게 진짜 거추장스러웠다. 또 그때쯤 안구 건조증, 각막염 같은 렌즈 부작용이 생각보다 자주 나를 괴롭혔다. 때마침 운명처럼(?) 얼마 전 라섹을 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수차례 미뤘듯이 나 역시 시력 교정은 ‘수술’이라는 말이 무서워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다음 날로 나는 친구의 추천 병원으로 향했고, 3일 후 라섹 수술을 강행했다. 그야말로 내 인생에 정말 보기 드문 속전속결이었다. 그 결과 교정시력 1.0 그리고 이제는 안경이라는 도망칠 곳도 없이 시시 때대로 나의 못생김을 인정해야 되는 순간까지 덤으로 받았다. 완전 생 민낯은 렌즈로 만난 전적 때문인지 생각보다 괜찮았다. 뭐든 처음이 낯설고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결코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나체’였다.


사우나를 좋아했다. 이제는 과거형으로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더 이상 사우나를 가지 않으니까. 사우나, 그곳은 따듯한 희뿌연 습기가 나를 감싸는 곳. 나만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눈에 뵈는 게 없던 시절에는 나만 존재한다고 충분히 착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 마디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세상이었다. 현실에 지친 내 몸과 영혼을 사우나에 맡기고 나는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었기에 내 유일한 힐링 스폿이었다. 그런데 시력을 찾은 후 간 사우나는 내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너무 명료했다. 전에는 그 광경들이 전혀 이상하지도 부끄럽지 않았는데, 너무나도 한순간에 민망해졌고, 아무리 나에게만 집중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우나를 다시는 가지 못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 있다는 말의 공평한 무게를 나는 사우나에서 깨달았다.


시력을 찾은 엄마는 연휴 내내 잠시도 쉬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청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인데 이제는 너무 잘 보여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아마 내가 사우나에서 느낀 마음과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내 눈에는 전에도 깨끗했고 지금도 깨끗하기만 한데... 하긴 엄마는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깔끔쟁이’니까.


나에 대한 잔소리에도 새로운 레퍼토리가 생겼다. 립스틱 색깔을 두고 너무 야하다며 엄마는 바꾸라고 했다. 그 립스틱은 전부터 내가 꾸준히 바른 색깔이었다. 늘 바르던 거라고 소심하게 반항했지만 엄마가 멈추기보다 늘 내가 마음을 바꾸는 게 빨랐으므로 나는 립스틱을 지우는 쪽을 택했다. 사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짠했다.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뿌옇게 내 얼굴을 봤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다른 때에 비해 잔소리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유난히 나에게 잘해줬다. 그동안 잘 몰랐던 딸의 나이 듦을 엄마가 일순간 훅 느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최근 들어 확 더 늘어버린 새치도, 팔자주름도, 얼굴 잡티도 엄마가 눈치챈 것 같아서 나는 마음이 계속 쓰였다.


엄마나 나나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앞으로 잘 보여서 서로 마음 아파질 일이 많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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