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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13. 2020

안 되는 꿈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은 ‘비참하다’...?

어느 날 전현무가 진행하는 라디오의 한 코너에 사연이 도착했다. 사연인즉, 자신이 전현무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을 어머니가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던 전현무. 어렵사리 사연자 어머니와의 통화가 성사됐다.


"방송이 싫은 게 아니고 딸이 눈만 뜨면 이걸 듣는다. 전현무 씨가 말하는 게 얄밉더라. 꿈은 빨리 버리는 게 낫다고 했는데 젊은이들한테 꿈은,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꿈과 희망을 가지라고 해야 하는 게 방송인으로서 의무다. 방송을 한두 사람이 듣는 것도 아닌데, 방송인이라면 그런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안 그래도 암울해하는데 '꿈을 가지라'라고 해야지. '꿈을 버리라'라고 했나.''


이에 전현무는 꿈을 버리라는 게 아니라 안 되는 꿈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은 ‘비참하다’라고 말씀드리려 했지만 어머님의 입장은 확고했다.


“안 되는 꿈이라도 잡고 있어야 되는 것이다. 꿈을 쫓아가는 과정이 인생이다. 어떻게 목표 달성만 하면서 인간이 달려갈 수 있는가. 꿈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다.”


꿈꾸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와 결과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전현무.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날의 언쟁(?)은 아마도 두 사람이 생각하는 꿈이 달라서는 아니었을까.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어렸을 때는 선생님이었고, 철이 들고 나서는 방송작가였다. 직업이 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꿈이 직업을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전현무의 말처럼 ‘안 되는 꿈’을 계속 잡고 있는 건 비참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긁지 않은 복권처럼 해보기 전에는 될지, 안 될지 그 누구도 모른다. 꿈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풀어가야 하는 숙제. 혹여 수없이 많은 탈락과 실패가 계속된다고 해도 시작이 그러했듯 꿈을 놓는 것 또한 오직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고, 제삼자가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꿈을 꾼다는 것은 때로 ‘노력’보다는 ‘시간’을 더 큰 담보로 하는 일이라서 이뤄내지 못할 경우 다른 기회 또한 놓치게 된다. 아마 전현무가 꿈을 버리라고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그리고 조금이라도 선택의 폭이 넓을 때, 다른 일에 도전하라는 의미였지 싶다. 꿈이 직업이 되는 ‘덕업 일치’를 이룬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었다.


따지고 보면 꿈이란 아주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하고 싶은 것’ 일 수도 있는데, 너무 무엇이 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갖는 직업인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도 꿈이 될 수 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꼭 여행사 직원이나 여행가가 될 필요는 없다. 적당한 곳에서 돈을 벌고 여행을 하면 되는 것이지. (내 얘기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반드시 바리스타가 될 필요가 없듯이. 매일 아침 집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것도 소확행이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꿈이 될 수 있다. (이것 역시 내 얘기다.)  내 인생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요원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도 현재 내 꿈이기는 하다. 요즘은 어째 점점 더 ‘나쁜 사람’은 되지 말자로 바뀌는 중이이라서 이 꿈이야 말로 '안 되는 꿈'인데 내가 잡고 있는 건가 다. 이처럼 꿈이 인생의 목표나 삶을 대하는 가치관이라고 한다면 꿈을 가지고 쫓아가는 것 자체가 인생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꿈은 이루고 싶은 희망 사항.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미션과는 다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미션으로 생각하고, 너무 많은 책임감만 부여했. 자고로 꿈이란 결과로써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 그냥 가지고만 있는 것은 무책임하거나 무능한 것이 될까 봐 ‘도전’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오히려 꿈을 구속했다.


하지만 꿈에 도전한다는 것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적당한 때라는 것도 분명하지 않다.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을 것도, 없을 것도 같다. 때문에 인생에서 적당한 순간을 만나지 못한다면 시도조차 아예 못해보고 끝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루지 못한 꿈이라 할지라도 여러 선택 중 하나가 연기되거나 삭제된 것일 뿐. 그것이 삶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 아니, '나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정작 비참한 것은 ‘안 되는 꿈’을 잡고 있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는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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