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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09. 2020

‘함께’라는 이름 뒤에 감춘 ‘나도’라는 욕심.

여행, 함께라서 찍을 수 있었던 마침표.

낄끼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줄여 이르는 말. 모임이나 대화에서 눈치껏 끼어들고 알아서 빠지라는 뜻이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평상시의 나는, 이 말을 어느 정도 잘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독 안 될 때가 있다. 바로 여행에서의 나였다. 그곳에서 나는 좀처럼 포기를 몰랐다. 다소 욕심이 되더라도 포기를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내가 타고난 저질 체력이라는 것. 그런 나에게 체력 대신 믿을 건 어떻게 해서든 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아무리 체력이 바닥나도 무조건 정신력(!)으로 버텼다. 미처 몰랐다. 내가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도 나는 포기를 모른 채, 제주도 올레길 7코스를 걷고 있었다. 멤버는 나의 절친 뽈 언니, 메이 언니, 화 그리고 나까지 넷. 우리 네 명이 올레길을 걷는 것은 오랜 시도 끝에 처음 성사된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내 컨디션이 유난히 좋지 못했다. 첫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기에 전날 잠을 설친 게 문제였다. 기본 체력이 없는 데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까지 겹친 상황. 하지만 1박 2일의 짧은 일정에 휴식은 사치였다. 원래 일정대로 도착 후 다짜고짜 올레길부터 걷기 시작했다. 초반 스타트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전처럼 아무 문제없이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만 나는 생각했다.


몸은 따라 주지 않았지만 마음은 다 걷고 나서 먹을 고기 생각에 더욱더 속력을 내 내달리고 있었다. 명백한 오버 페이스였다. 처음에는 발목만 뻐근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뻐근함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고, 어느새 허벅지까지 장악했다. 8년 동안 이미 여러 차례 올레길을 걸었지만 처음 느껴본 고통이었다. 총 17.7km에서 남은 거리는 이제 5km. 그때 멈췄어야 했는데...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나 스스로 한계를 시험하며 참고 또 참았지만 급기야 몸이 아니,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거리는 약 1.5킬로미터. 더 이상은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인적 없는 얕은 오름에서 더 못 가겠다는 말 대신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업고 갈게


거의 내 울음과 동시에 뽈 언니가 말했다. 이미 그런 결과를 예상이나 한 듯 어떠한 주저함도 없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였다. 후회가 밀려왔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잠을 설친 것? 지나치게 내 의지를 맹신한 것? 예외 없이 늘 똑같은 결과를 얻을 거라 기대한 것?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것? 모두 다 맞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나만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7년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메이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 힘들면 좀 쉬어


나는 혼자 가려던 메이 언니의 파리 여행에 언니를 졸라 꼽사리 꼈다. 그리고 그게 내 첫 유럽 여행이 되었다. 살면서 파리를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놓치는 것 없이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았다. 내 욕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크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상상초월이라는 말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수준. 당연히 내 저질 체력이 무릎을 꿇어야 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쉬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는 언니를 따라 그야말로 꾸역꾸역 루브르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결국 원하는 만큼 보는 것에 성공(?)했다. 그날의 선택을 두고, 그 순간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 여겼다. 그런데 혹시, 좋았던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까.


그녀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모든 순간들을 가능한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욕심을 한 번도 내려놓지 못했고 매번 내 한계를 시험했다. 늘 체력이 문제였지만 힘들더라도 ‘내가’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를 걱정하는 그녀들에게 말로는 괜찮다 했지만 정작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볼 수 없는 힘든 표정의 나를 보며 신경 써야 하는 그녀들의 처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나를 업고 가겠다는 뽈 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에서야 내가 아닌 그녀들이 보였다. 그제야 고통은 절대 나만의 몫이 아니었을뿐더러 참은 것은 내가 아니라 그녀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차마 업힐 수는 없어서 천천히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내 호흡에 맞춰 걸은 그녀들의 도움으로 나는 루브르에서처럼 꾸역꾸역 올레길 7코스를 정복했다.


함께하기로 한 여행에서 ‘포기’를 민폐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혼자가 아닌 ‘함께’였기에 포기할 줄도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포기는 실패라고 생각했고 의지의 문제라고 받아들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들과의 여행에서 포기하지 않은 건 의지가 아니었다. 그녀들 없이 절대 나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마침표라는 욕심이었다. ‘함께’라는 이름 뒤에 감춘 ‘나도’라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그 순간부터 나는 그녀들에게 짐이 될 운명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욕심도 아니었다. 그냥 내 고집이었을 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뜻대로 안 되는 일은 넘치고.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 순간을 잘 놓아줄 수 있어야 포기는 실패가 아닌 경험으로 남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내가 뜻을 이루기 위해 포기 않는 게 아니라 '낙오' 하기 싫어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래야 지난 노력의 시간들이 끝내 포기로 남더라도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상처나 미안함이 아닌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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