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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Aug 09. 2022

기록적인 폭우에도 나는 핸드폰 배터리 잔량을 확인했다.

        SNS의 어떤 글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나를 데려다 놓을 때가 있다. 마치 소설처럼.     


얼마 전 새벽에 택시가 안 잡혀서
젊은 사람들은 다 카카오 택시 불러서 가는데
할아버님들은 계속 서 계셨음     


        그 어떤 묘사도, 비유도, 은유도 없는 딱 한 문장의 글. 그 순간의 사실만 기록한 글자들 사이에서, 한 움큼씩 새어 나오는 서글픔도 읽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서글픔의 출처는 얼마나 오래 서 있었을까, 결국 택시를 잡기는 했을까, 먼저 떠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내 상상 속 그들은 하염없이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서글픔은 실제보다 훨씬 더 막막한 크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동대구역에서 앱으로 예매한 기차표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죄송한데, 기차 티켓 좀 끊어주세요.’     


        구걸이 아니었다. 아주 많이 봐야 50대 초반. 실제로는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자신의 신용카드를 건네며 생판 처음 보는 나에게 기차표를 부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엉겁결에 ‘신용’ 카드를 받게 되자 ‘대체 나를 뭘 믿고?’라는 스스로에게 불신이 생기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서일까. 자초지종을 묻는 말 대신에 ‘제가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몹시 어쩔 줄 몰라하며 부탁을 하는 그녀였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그냥 잘 모른다고만 했다. 가장 빠른 수원행 차편이면 된다는 말만 보탰다. 사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매표창구 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일요일 오후 기차역은 사람들로 많이 붐볐고, 매표창구도 한산하지 않았다. 그제야 그녀가 잘 모른다고 한 것이 키오스크 사용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신용카드를 받아 들고 그녀를 데리고 쭈뼛쭈뼛 키오스크로 걸어갔다. 다시 행선지를 확인하고, 가장 빠른 시간은 KTX인데도 괜찮냐고 하자 그녀는 상관없다고 했다. 급해서 따질 처지가 아닐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더는 묻지 않았다. 몇 번의 터치 후 그녀의 티켓이 나왔다. 기차표와 신용카드를 무사히 받아 든 그녀는 미소 가득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에게서 재빨리 멀어졌다. 타는 곳이 그쪽 방향이 아니었지만 돌려세우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가 원하는 것이 이 이상의 친절이 아니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고, 당장 내가 아니어도 시간이 그녀를 재촉할 것이었다. 다행히 딱 그 정도의 여유가 그녀와 나 사이에 있었다. 매표창구 대기줄은 여전히 길었다. 직원이 적은 걸까, 사람이 많은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창구 직원 수보다 키오스크가 두 배는 많아 보였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젠 정말 옛말인 것 같다. 대부분 디지털이 점령해버린 지금 요즘 세상은 모르면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하고, 설사 그로 인해 소외당한다 해도 오로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조금 더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덜 민폐를 끼치기 위해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 뒤에 사람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기다리게 한다는 것이 곧 ‘진상’이 되므로 누군가의 도전이나 노력이 시행착오가 되지 못하고 한 개인의 욕심으로 치부되기 쉽다. 세상에는 포기되는 게 많을까, 포기하는 게 많을까.  

   

        디지털 문화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디지털 약자’라고 한다. 어제 ‘잠시’ 디지털 약자처럼 살게 되었다. 중부 지방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가 원인이었다. 밤 9시 30분 인터넷 먹통으로 TV까지 멈췄다. 그때까진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정전이 됐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나뿐이라는 고립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을 느끼기도 전에 내가 확인한 것은 남은 핸드폰 배터리량이었다. 65퍼센트. ‘이걸로 버틸 수 있나?’라는 생각을 하는 내가 어이없으면서도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 보조 배터리를 찾았다. 보조 배터리를 찾은 순간 다행히 전기는 다시 들어왔다.      


        거의 텀 없이 안전 문자가 오기 시작했고, 구급차나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안전 문자 내용으로 보아 아마도 우리 동네에서 근처 다른 동네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내 생각보다 더, 더, 더! 상황이 심각하다 느꼈지만 인터넷도 TV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는 핸드폰뿐인데 그마저도 카톡은 물론 통화까지 되다, 안 되다를 반복하는데 하물며 인터넷 연결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더 이상 디지털에만 의지할 수 없다고 판단. 사태 파악을 위해 창문을 열어 밖을 봤다.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들 종아리까지 차오른 빗물이 아주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6층에 사는 나는 그제야 건물 1층이 침수됐다는 걸 알았다.


        디지털 문화와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디지털 약자’이라고 한다면, 너무 의존해서 디지털 불능 상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디지털 올인족’쯤 되려나? 자연재해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 나뿐이라는 고립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을 느끼기도 전에 핸드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한 나는, 디지털 올인족.      


그리고 그 올인의 결과로 어제 패가망신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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