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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1. 2021

책을 버릴 수 없는 이유.

나에게 책은 내용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자, 사람이었다.

정확하게 통계를 내보진 않았지만 ‘내돈내산 취미 리스트’ 중 ‘여행’ 다음으로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하는 것은 ‘책’ 일 것이다. 3년 전쯤을 마지막으로 세어보기를 포기했는데 그때 대략 400권이었다. 지금은 450권? 아니면 500권이 되려나? 그저 대충 기억하고 마는 것은 책들 대부분은 책장이 아닌 곳에 탈출해 있기 때문이다. 새로 들여온 책들은 기존의 책장 앞을 가로막고 한 줄에서 두 줄로 하루하루 키를 높여갔다. 급기야 최근에는 세 번째 줄이 쌓아지기 시작했다. 얼핏 그 부분은 헌책방 한구석을 방불케 했다. 책만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내 집에서 나와 같이 사는 물건들 대부분이 워낙 자유분방한 편이라서 굵직한 공간을 차지해야 하는 것들이 아니면 자기 자리의 개념은 딱히 없었다. 우연히 놓이는 곳이 당분간 그들이 지낼 거처가 된다. 우리 집에서 가장 정해진 ‘규칙’에 맞게 사는 것은 어쩌면 나 하나뿐인 것 같기도...      


가능한 책을 소장하는 것은 내 규칙 중 하나였다. '책 읽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지적 허영심’이 충만했던 시절에 생긴 소확행적 사치이자 습관적 소비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읽은 책 보다 단순히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SNS용 책이 많았다. 책장에 한 권씩, 두 권씩 늘어가는 책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책 속의 세계가 모두 내 머리에 옮겨진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딱 좋았다. 정작 그중에 다 읽은 책은 손에, 그것도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면서.      


분명 시작은 읽기 위함이 아니었다. 딱히 내세울 게 없었던 나를 위해 그럴듯한 이미지가 필요했을 뿐. ‘책 읽는 사람’은 1만 원 전후의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이미지였다.      


본격적으로 방구석에서 쌓여만 가던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 졌을 때였다. 멈추고 싶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한 재생 반복되는 ‘불행한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그 이미지는 그 순간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실망할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읽어서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사기만 한 이미지고, 1만 원어치의 몫은 이미 해낸 셈이었다. 생각의 빈틈을 없애고자 애썼던 그때, 예상외로 책 속에 박힌 활자들이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위해 그냥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내가 아니라 글자들이 나를 끌고 다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몰랐다. 마치 ‘지금은 쓰여 있는 대로 읽기만 해’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어두운 생각의 틈이 비집고 들어올라치면 읽고 또 읽어치웠다. 그렇게 도무지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절망의 순간, 나는 진짜(!) 책 읽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책은 집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점점 더 확장해갔다. 나름대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했기에 옷, 신발, 액세서리, 가방은 미련 없이 처분했다. 하지만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책만큼은 절대 버려지는 일 따위 없었다.      


나에게 책은 내용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자, 사람이었다. 내가 책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읽었던 책. (나는 대체로 행복할 때는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는 편이다.) 여행을 갔을 때 함께 간 책.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즉흥적으로 산 책. 생일날, 내 나이가 적혀있다는 이유로 선물 받은 책. 당신이 좋았다면서 추천해준 책. 그 사람이 읽어서 나도 읽고 싶어진 책. 내 친구의 이름으로 나온 첫 번째 책. 나는 저자의 동의 없이 내 추억들을 책마다 차곡차곡 밀어 넣었다. 그래서 나에게 책은 계속 듣고 싶은 어떤 노래이기도 했고, 지울 수 없는 기억이기도 했으며, 간직해야 할 사진이기도 했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온 (몇 년 전부터는 도서관에서도 많이 데려온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읽다가 내가 책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캐나다 생활을 위해서 서울 집을 정리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책을 처분하기로 한다. 앞으로도 함께할 책과 떠나보내야 할 책을 나누면서 이런저런 고민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가 헌책방으로 책을 돌려보내기로 한 이유는 자신보다 더 그 책을 의미 있게 읽어줄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과연 내 책들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에게 와서 한 번, 고작해야 두 번 읽힌 후 추억 속에 수납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까. 아님을 알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보내줄 수가 없다. 나는 나의 지난날을 놓아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에게 책은 어떤 순간이자,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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