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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an 29. 2021

당연함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택배 배송, 당연해진 하루의 기다림.

10년째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접이식 좌식 테이블 다리가 부러졌다. 정확히는 다리가 아니라 다리 모양을 90도로 잡아주던 지지대가 망가졌다. 2만 원인가, 3만 원을 주고 산 것을 최소 3000일 이상 썼으니 충분히 아니, 기대 이상으로 무리를 한 셈이다. 내 조심성이 테이블의 능력치를 극대화했다기보다는 나기를 튼튼하게 태어난 것 같았다. 관절(!)이 고장 난 다리만 빼면 외관상으로는 아직도 멀쩡하다고 착각할 만했다.


네 개의 다리는 같은 시기에 좌식 테이블 경력을 쌓기 시작했음에도 동시에 ‘파업 선언’을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작별을 고한 것은 왼쪽 팔꿈치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다리였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왼쪽 다리가 먼저 부러졌을까. 과학적 근거는 1도 없지만 아마도 왼쪽 팔을 괴고 생각하는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는 나란히 위치한 오른쪽 다리가,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오른쪽의 또 다른 다리가 ‘뚝’ 부서졌다. 이제 꼿꼿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교체하지 않은 것은 10년을 함께 한 의리나 애착 때문에 고집을 부린 게 아니었다. 자세만 흐트러졌을 뿐 네 개의 다리는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어찌어찌하면 그러니까, 내가 직접 손으로 90도의 자세로 교정해주면 마지막 다리까지 부서져도 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다시 마음에 드는 테이블을 찾는 것도, 주문을 하는 것도, 지금의 테이블을 버리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나 ‘하나만’ 부서졌을 때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나의 조급함은 극명하게 갈렸다. 자꾸만 테이블 위에 올려진 된장찌개가 쏟아지는 상상이 반복됐다.

     

그것이 근거 없는 상상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래전 그랬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쓰던 좌식 테이블은 두 개의 다리를 가진 녀석이었는데, 구입 한 지 1년이 채 가지 않아 한쪽 다리의 고정 버튼이 고장 났다. 애써 무시하고 쓰다가 된장찌개를 올려놓은 어느 날 일이 벌어졌다. 추운 겨울 저녁, 이불 밖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이불 위에다 상을 차린 것도 모자라 미처 테이블 다리를 90도로 잡아주지 않게 큰 실수였다. 테이블 다리는 90도(!)에서 순식간에 좁혀졌고, 이불과 안전거리 유지에 실패했다. 그 순간, 테이블은 된장찌개의 미끄럼틀이 되고 말았다. 된장찌개는 내 입이 아니라 이불로 안겼다. 밥을 못 먹는 것은 크게 아쉽지 않았는데 하나밖에 없던 겨울 이불 위에 쏟아진 된장찌개는 수습 불가였다. 급한 대로 물티슈로 하나 마나 한 세탁을 마친 이불을 덮고 그날 밤은 그냥 잤다. 된장찌개가 떨어진 곳은 얼굴과 가까운 쪽의 이불. 원래 발을 덮는 이불을 내 얼굴로 오게 했다. 왠지 이불에서 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보다는 발에 된장찌개 냄새가 밸 것 같기도 했다. 그 난리를 겪고, 나는 지금의 테이블을 주문했다.      


이대로 무시했다가는 나의 빈틈 사이로 또다시 된장찌개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새 테이블을 주문한 날, 바로 상품 발송이 됐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어련히 다음날이면 와야 할 택배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럼 내일은 오겠지’ 싶어 택배 어플을 조회했다. 내 테이블은 이런 경우 늘 갇혀있던(?) ‘**허브’에도 가지 못하고 상품을 인수 후 하루 내내 그냥 제 자리였다. 지금은 바쁜 시즌이 아닌데 이상하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택배가 전달되어야 하는 날 택배 노조가 ‘파업 선언’을 하고 있었다. 택배 노조의 예고된 행동이었음에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내 택배가 오지 않은 다음에서야 사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틀 후부터 기약 없는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했다. 택배 기사님들의 입장을 공감하면서도 사실 그때 나는 ‘마지막 남은 테이블 다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더 걱정했다. 택배 정상화가 될 때까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당분간 국물 요리는 금지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의 저녁 메뉴는 한 그릇 요리인 김치볶음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택배는 ‘하루면’ 왔고, 그 사실은 예외 없이 당연해졌다. 그 ‘당연해진 하루’를 지키기 위해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끝없이 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들어 택배 노동자들의 사업장 내 과로사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기 시작한 것도.      


하루 만에 오던 택배가 무기한(!) 늦춰지고 나서야 대부분은 기본으로(?) 제공되는 각종 ‘빠른 배송’은 누구를 위한 서비스일까 의문이 들었다. 그 시스템을 만든 것은 나를 비롯한 고객들이 아니다. 2-3일 혹은 가끔 그보다 늦게 오던 시절도 나는 충분히 괜찮았으니까. 택배사들끼리의 경쟁이었고, 그들이 주장하는 고객 만족 서비스였다. 그 서비스를 좋아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극찬했고, 아주 만족했다. 하지만 대가 없는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적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대가도 없이 얻어지는 당연함은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길들여졌다. 어떤 식으로든 길들여진다는 것은 '시소' 같은 거라서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연함을 위해 반드시 한쪽은 양보나 희생을 하도록 하는 길들여'짐'은 정말 '짐'처럼 무거워서 자꾸만 아래로, 보다 더 아래로 누군가를 가라앉게 만들 테니까.      


이제는 느린 택배에 내가 길들여져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파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는 기대를 버렸던 새 테이블은 사흘 만에 도착했다. 한때 당연하게 받아들인 속도였다.      


부디 이제라도 그들에게 ‘당연한 희생’이 아니라 ‘당연한 대가’가 주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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