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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r 05. 2021

엄마의 그릇 정리.

2주 넘게 침잠하듯 가라앉는 마음을 다시 끌어올리지 못하고 같이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진작에 그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동안 내 마음은 씩씩해도 너무 씩씩했다. 나조차도 녀석이 용케 잘 견딘다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 말하자면 평생 써야 할 긍정의 에너지를 최근 1년 동안 다 쓴 느낌이랄까. 마음이 애쓰는 노력을 쉬겠다 했다. 당연히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면 순식간에 기분을 180° 바꿔주던 원두커피 향도 효과가 없었고, 일주일에 다섯 권씩 해치우듯 읽어나가던 책도 열흘 넘게 제자리걸음이었다. 읽고는 있었지만 무엇을 읽는지 알 수 없었다. 눈이 지나가는 속도를 마음이 동행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며칠째 같은 줄을 맴돌다 결국은 책을 덮었다. 문득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때마다 그릇 정리를 했다...     


엄마가 말하는 ‘그때’는 몸에 이상을 느끼고 검진 결과를 기다리던 날처럼,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마음을 짓누를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단순히 ‘그때’가 아니라 ‘마다’라고 했으니 한 번은 아닌 듯했고, 여러 번인 것 같았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들어 그런 일이 전보다 잦아졌다는 것 또한 짐작... 그렇다. 오직 짐작으로만 알 수 있었다.      


작년에 아빠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아빠가 퇴원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거의 매일 통화를 하는 데도 서울에 혼자 떨어져 사는 내가 걱정할까 봐, 엄마와 아빠 모두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떨어져 산지도 1N 년. 나에게 말하지 않은 채 지나간 일들은 또 얼마나 있었을까. 딸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원래 폐가 좋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가끔 앓던 폐렴이나 감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대구에 코로나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때였다.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병원에서, 엄마는 집에 따로 있어야 했다. 서로가 오롯이 혼자 견디던 그날 밤도 엄마는 그릇 정리를 했단다. 엄마의 의식(!) 같은 습관을 내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설령 봤다고 한들 엄마의 마음이 어디서, 어떤 생각으로 헤매고 있는지 눈치 못 챘을 것이다. 엄마의 말하지 않은 진심을 들은 게 처음이니까. 순간 그릇을 씻고, 하나하나 닦는 엄마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였다. 엄마는 그 밤, 그릇을 닦으면서 준비를 했을까, 정리를 했을까. 아니면 기도를 했을까. 아마도 기도였으리라. 다행히(!) 아빠는 폐렴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의 간병은 물론 면회도 허락지 않았고, 일주일간 엄마와 아빠는 강제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어떤 시간은 언제 겪느냐에 따라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더디게 지나가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폐렴을 예사롭게 넘길 수 없는 나이. 엄마는 무서웠노라 뒤늦게 내게 털어놓았다. 차마 엄마에게 묻지는 못하고,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몇 번이나 그릇 정리를 했던 걸까.... 마음으로 조용히 세어 보았지만 나로서는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엄마처럼 현재의 내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 개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대신에 집을 온통 뒤집어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쓸고, 닦고, 버리고, 다시 대열을 정리하고. 장장 이틀이 걸렸다. 그릇을 정리하던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 그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아침 일찍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는 거의 통화할 일이 없는데... 언제부턴가 아침에 걸려오는 전화가 반갑기보다 두려워졌다.     


- 어제 꿈에 내가 너를 잃어버리고

  ‘또’ 얼마나 울었는지. 별일 없지?     


종종 엄마는 비슷한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아주 어렸고,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의 손을 놓치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나를 찾으며 울다가 잠에서 깼다. 아무 일 없다고 말하는 동시에 나는, 정말 별일 없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엄마가 나 때문에 그릇 정리를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미 많이 해버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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