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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Mar 19. 2021

기억을 따라다니는 노래.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여행지에 도착한 첫날 향수를 꼭 하나씩 산다는 어느 여배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러고선 여행 내내 그 향수만 뿌리고 다닌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 그곳에서 뿌린 향수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여행지에서의 추억이 떠오르거든요.’ 이유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다음 여행에서는 나도 따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이 아닌 향기가 불러오는 기억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향기는.... 기억을 아련하게 만드는  아닐까. 내가 가장 오랫동안 기억하는 향기는 우리 엄마 냄새. 그래서 어쩌면 여행지에서 품은 향기는 사진이나 노래보다 오래가는 추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절대 느낄 수 없는 오직 나만이 느끼는 향이자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여배우의 향수처럼 나에게는 기억을 따라다니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노래는 내 기억을 생생하고도 풍성하게 만든다.


‘언젠가’ 책 한 권을 다 읽을 동안 노래 한 곡만 무한반복으로 들었다. 매번 해왔던 습관은 아니었고, 그때 한정으로만 했던 행동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과 뮤지컬 헤드윅 넘버 중 하나인 <사랑의 기원( the origin of love)> 배우 조승우 버전. 딱 한 번에 불과한 선택의 후광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언제든 그 책의 제목이 내 눈에 들어오면 그 노래가 귓가에 들렸고, 반대로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책의 내용이 눈 앞을 지나가듯이 떠올랐다. 마치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물론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럴 수 있는 일 아니겠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일본판도, 한국판도 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연상작용은 오직 노래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 확신한다. 보통은 책을 읽을 때는 노래를 듣지 않는데, 어쩐지 그 노래의 분위기가 딸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가는 나가미네의 심정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재생시킨 뮤직비디오 속 나가미네는 조승우 일 때가 많았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둘을 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함께 머물게 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언젠가’로 시작한 어렴풋했던 기억의 시작을 발견했다. 2014년. 그해 드라마 <신의 선물-14일>에 출연한 조승우에 내가 완전 푹 빠져있었고, 마침 서점에는 같은 해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의 원작 소설인 <방황하는 칼날>이 쫙 깔려있던 해이기도 했다.    

 

특정 길(!)에서 내 기억을 장악하는 가수도 있다. 그 길에서는 한 가수의 노래만 계속 들었기 때문이었다. 주로 서울 집과 본가인 대구를 오갈 때인 경부고속도로 위, 버스 안에서였다. 1N 년 동안 그의 노래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으나 8할은 그랬으므로 어쩐지 고향 가는 길을 떠올릴 때면 자동으로 그의 노래가 생각났다. 고향길 내 플레이 리스트의 주인공은 성시경. 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팬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위치. 왜 성시경이었을까. 장시간 이동 거리에 휴식을 취하기에도, 책을 읽으면서 듣기에도 좋은 목소리라는 판단이 이 기억의 시작이었다. 계절도, 풍경도, 책도 계속 바뀌었지만 플레이 리스트는 그대로였다. 그래서 경부고속도로 하면 다소 엉뚱하게도 나는 성시경의 노래가 생각난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 안에서 그의 노래를 듣는 어느 순간은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착각마저 들 때도 있었다.      


어떤 노래는 나를 순식간에 베트남으로 데려다기도 했다. 그 노래는 지디의 <그XX>. 모르긴 몰라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보다는 물음표를 갖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하긴 저 노래의 하이라이트 가사는 ‘그 새끼보다 내가 못한 게 뭐야. 도대체 왜 나는 가질 수 없는 거야. 그 새끼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언제까지 바보 같이 울고만 있을 거야’ 이별 후 베트남으로 여행 간 것이 아니고서야, 그 어디에도 딱히 베트남과 어울릴만한 구석이 없는 게 사실이다.     


프로그램 답사차 베트남에 갔을 때였다. 일주일 동안 이어진 고단한 여정. 우리 팀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비포장도로가 즐비한 베트남에서의 이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서 1시간이면 되는 거리를 베트남에서는 기본 2시간, 많게는 3시간 이상을 견뎌야 했다. 그 시간,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차 안에서 듣는 노래뿐이었다. 차 안 DJ를 자처한 것은 프로그램을 물심양면 도와주고 있는 A였다. A의 플레이 리스트에서 <그XX> 노래를 처음 들었다. 만약 나에게 선곡권이 있었다면 아마 듣지 않을 노래였다. 그의 노래도, 그가 속한 그룹의 노래도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새끼’라는 단어에 꽂히고 말았다. 어떻게 노래 가사에 ‘새끼’라는 단어를 쓸 생각을 했는지 너무 신선했다. 관례대로(?) 순화하자면 ‘그 자식’이나 ‘그 녀석’으로 했었으면 됐었겠지만 그 단어 하나를 지키고자 자발적으로 19금 표기를 했던 곡이었다. 혹시나 해서 단어를 바꿔 보았지만 조금도 원래 흥이 나지 않았다. 다른 가사는 몰라도 이 곡에는 ‘새끼’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란 내가 생각해도 없었다. 예기치 못한 단어에 꽂혀버린 그날 이후 일주일 내내 핸드폰에 이어폰을 꼽고 혼자서 그 노래만 들었다. 지질한 듯하면서도 나름 비장한 노래 가사가 마음에 들었다. 가수에도, 노래에도 관심이 없었던 탓에 언제 나온 곡인지는 지금까지도 몰랐다. 찾아보니 2012년 9월. 내가 베트남에 답사를 갔던 시기와도 맞닿아있었다.      


어떤 노래를 들을 때면 시간을 넘어 당신 생각이 날 때도 있다. 그 노래를 부르는 당신을 쫓던 내 시선 속 당신을 지금도 가끔 본다. 어쩌면 그 노래는 이미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에서는 지워진 지 오래. 내 기억에만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나라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노래도 있을까?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나를 부르는 기억의 노래는 어떤 순간,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은 건지 궁금해졌으니까. 없으면 말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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