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진 Apr 02. 2021

글 하나에 16만 8천이라는 조회수.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10여 년 넘게 방송 작가 일을 해 왔지만 여전히 내가 쓴 대본이나 기획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매번 긴장된다. 선배 언니에게 기획안을 보낸 그 하루도 긴장 속에 보낸 것 같다. 그리고 늦은 밤, 언니로부터 내 긴장에 대한 최후통첩이 부르르 진동과 함께 도착했다.     


- 현진아...     


문장 끝에 점 세 개를 찍는 것은 나와는 다른 언니의 습관이었다. 언니를 잘 몰랐던 시절, 점 세 개는 종종 나를 방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주로 섭섭함이나 실망을, 때로는 민망함이나 미안함을 표현할 때 썼기 때문이다. 내가 또 무언가를 실수했나? 아니면 언니가 나한테 서운한 게 생겼나? 미칠 듯이 신경이 쓰이면서도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혼자서 더듬이를 세우고 언니를 관찰하기 바빴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언니의 습관이었다. 오랫동안 언니를 보아왔기에 내 이름의 부름 끝에 점 세 개를 붙인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날따라 점 세 개가 유난히 마음에 쓰였다.  기획안 작성은 나의 가장 큰 아킬레스 건. 아주 잠깐 동안은 점 세 개를 보며 또다시 실망할 마음의 준비도 했다.     


언니에게 기획안을 건넨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언니의 권유 반, 나의 자의 반으로 여러 번 도전했지만 결과는 늘 탐탁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언니에게 기획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항상 받았다. 나는 말 그대로 그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번 기획안은 그래서는 안 됐다.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오기가 있었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될 만큼 최선을 다했다. 전부를 걸고도 달라지는 게 없다면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계속 부족한 능력치로 그냥 둘 걸. 괜한 욕심을 부린 건가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다. 언니의 부름에 답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까 겁이 나서 망설이던 순간, 언니의 다음 말이 먼저 찍혔다.      


- 재밌다...!     


지금껏 듣지 못한 칭찬. 구성안이나 대본 칭찬을 받은 적은 있지만 기획안은 난생처음이었다. 뭐,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보다 ‘재미있다’라는 말이 먼저였다.


그 한 마디는, 내가 1N 년을 기다려 들은 말이었다. 아니다. 나는 그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 욕심내지도 않았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계속 부딪히고, 도전해서 긍정의 평가나 결과를 얻는 것보다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 또한 막아 버리는 그 편이 훨씬 쉬웠다. 그리고 나는, 어느 쪽의 말도 듣지 않는 것으로 충분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나와 협상을 해왔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메인에 내 글이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몇 번쯤은 기대를 하다가 영 그런 기미가 없자 포기한 게 그보다 먼저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난주에 올린 <층간 소음 항의 문자를 받았다.>가 다음 메인에 노출된 것 같았다. 무려 16만 8천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그동안 소소하게(!) 내 글이 노출된 적은 있지만 메인으로 간 것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은 단순 클릭이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조회수는 좋기보다는 외려 무서웠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럴만한 글도 아니었음에도 전에 없이 쓴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괜한 오해를 살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오탈자, 비문 수정 외에는 원글 그대로 뒀다.) 그것으로도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아 한 번도 닫힌 적 없던 댓글을 닫을까 생각도 했다. 좋은 반응을 기대하는 것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차단하는 것이 훨씬 쉬우니까.      


어느 쪽으로든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최근에 정체되어 있던 구독자 수가 몇 분으로 인해 조금 더 늘었고, 아무리 다시 읽어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유를 해 간 흔적도 남았다. 그리고 내가 가장 우려했던 댓글. 네 분이나(!)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주셨지만(내 글은 몇몇 작가님의 댓글을 제외하면 댓글이 없는 편이다.) 감사하게도 용기를 얻었을 뿐, 상처되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음으로 인해 나에 대한 긍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평가 또한 막아 버리는 편이 지금도 쉽고, 덜 상처 받는 길이라 생각한다. 또 분명 어떤 순간은 그것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일 때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상처 받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유연 해지는 것도, 강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상처를 받더라도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쪽이 훨씬 더 나를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규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카일리가 있음에도 그때 왜 선뜻 나와 사귀기로 했냐고.

-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 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그러거나 말거나’ 무턱대고 덤벼볼 필요도 있다. 그 결말이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으로 끝날지라도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을 따라다니는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