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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Nov 01. 2022

내가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한 이유.

내가 현재 소유 중인 가능성.

        1031일 월요일인 어제, 입술에 물집이 잡혔다. 생전 처음도 아니었고 종종 나타난 증상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보통 입술 물집은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매우 피곤한 상태면 출몰한다. ‘매우 피곤한 상태... 매우 피곤한 상태... 매우 피곤한 상태... 매우 피곤한 상태... 매우 피곤한 상태...’ 일을 쉬고 있어서 현재 피곤할 일이 전혀 없는데... 짚이는 일이 하나 있기는 하다.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내 입술을 보니 내가 응모에 정말 진심이었구나 싶다.


        10월 30일 일요일 마감일에 맞춰 나도 처음으로 응모했다. 이번에는 ‘해보자’ 마음먹은 것은 9월 21일 무렵. 원래 응모 마감일은 23일이었으니 딱 4주 남짓 남은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빠듯하더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만큼 기존 글에 새 글도 써서 브런치 북을 만들 생각이었다. 맹세코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생각’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건 솔직히 행동 입장도 좀 들어 봐야 한다. 행동이 응하지 않은 건 생각이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심해서 갈피만 잡다가 파업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또 처음부터 행동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는데 생각이 일방적으로 ‘그린 라이트’로 받아들여 무리한 입장 표명을 진행한 것일 수도 있고. 이만하면 눈치챘겠지만 10월 1일이 되도록 단 하나의 글도 발행하지 못했다. 생각만큼 글쓰기가 따라주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안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아니다.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볼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나를 평생 겪어왔고, 쉽사리 나약해지던 나를 목격했다. 또 그럴까 봐 친구들에게 대대적으로 선포했었다. 이번에 꼭 응모하고 말겠다고.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해 놓은 말을 주워 담을 것인가, 아니면 뱉은 말에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지는 쪽을 택했다기보다 지금까지 너무 많이 그래 왔고, 그로 인해 후회하고 자책했으면서 또다시 회피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친구들에게는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라고 얘기하는 것을 더는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 아예 새롭게 할 수 없다면 그동안 쓴 글만이라도 최대한 수습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리고 브런치를 계속하는 동안에도.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예전 글을 다시 마주하는 심정은 정말이지 처참했다.


        나는 내가 참 겁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 용기로 발행 버튼을 눌렀나 싶은 글들의 연속. 어떤 글은 그냥 다시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대공사가 필요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억지로라도 쓰다 보니 조금씩 글 근육이 붙은 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엄청난 필력의 소유자가 된 것은 아니다. 나도 꾸준히 쓰다 보면 '글발'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설령 그 가능성이 고작 1%일지라도, ‘그럴 수도 있는 것’과 ‘그럴 여지가 없는 것’은 단순히 숫자 0과 1로 가늠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 사실 이 도전을 어떻게 해서든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싶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어떤 가능성을 가져보고 싶어서.    

  

        무사히 응모 완료. 그러자 전에는 느껴 보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찾아왔다. 여태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것이거나 혹은 너무 오래돼서 잃어버린 감정. 그래서 내가 느끼고 있는 지금 이 마음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분석하는 데도 하루가 걸렸다. 습관처럼 도망치는 것에 익숙해진 나라서 이번에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사실이 정말 미치도록 흡족했다.     


        아주 솔직하게, 당선을 목표로 두지 않았다. 영양가 없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해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든, 약 두 달 후면 당선과 탈락이라는 결과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당선 확률은 1% 미만. 언감생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나 보다.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그게 나일 가능성과 아닐 가능성.


        그러면 그게 나일 수도 있을 가능성은 무려 50%!!! (물론 내가 아닐 가능성도 50%나 되지만... 하하하) 이런 게 정신승리인가? 그러면 어때. 나는야 당선 확률 1% 미만에 포기하지 않고, 그게 나일 수도 있는 50%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현재 소유 중인 사람. 일단 지금은 그런 내가 한껏 대견하다. 이 진심이 어쩌면 발표되기도 전에, 아니 며칠 후면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 도전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매번 도망치던 사람이 도망치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180도 달라진 사람인 게 아닌가. 와!!!


        물론 혹시나... 아주 혹시나... 내가 주인공이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래! 이런 공상을 해볼 수 있는 것도 내가 해낸 사람이니까 가능한 것.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누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환상에 취할 테다. 말리지 말길! 어차피 두 달 후면 정신 차릴 거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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