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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4. 2024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4

        보는 눈이 없으니 내 멋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 때문에 지저분하게 사는 굴레서 벗어나지 못했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나 역시 너무나 동의한다. 집이 지저분한 것이 이른바 ‘나의 멋’이라면 나도 상관없었다. 다만 내가 문제 삼는 부분은 ‘보는 눈’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타인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이런 꼴로 사는 모습에 스스로가 당당하지 못했기에 지인들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괜히 초대라는 걸 해서 감당 못 할 청소를 하게 되는 대참사를 나는 매번 경계해 왔다. 물론 피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수리 및 설치 기사님들이 집을 방문하게 되는 날. 그런 날은 강제로 대청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하는 척에 그치는 수준이었지만. 이렇듯 나에게 청소란 벼랑 끝에서야 결심하는 최후의 선택 같은 것이었다.      


        청소를 해도 잠시 잠깐일 뿐. 일 년 중 대부분의 날들이 쾌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저분한 집을 보면서 ‘너를 어떡하면 좋니?’라고 수도 없이 되물었다. 질문에 대한 선택지는 매번 다양하지 않다. ‘어쩔 수 없다’와 ‘이렇게 지내도 불편하지 않잖아?’. 마음의 줄다리기는 OX 퀴즈를 하듯 이내 양쪽으로 갈라서지만 양쪽은 늘 팽팽했고 당연하게도 어느 쪽이 이긴다 해도 결과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지난해 12월 1일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집 정리. 그 후 2월 4일 오늘까지 약 두 달여간 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쾌적하고 편안한 상태를 ‘매일’ 유지하고 있다. 어째서? 내가 아는 나는 분명 귀찮아하고, 게으르고 타인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인데 말이다. 무엇보다 청소 상태가 일주일을 넘기기도 힘들었던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깨끗하게 산다고? 이게 말이 돼? 스스로도 놀랍다.     


        어떤 책에서 봤는데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나는 청소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다시 마음의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정말 할 수 없었던 것이 맞아?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결과는 한쪽의 일방적인 패배.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갈망하면서도 왜 청소가 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에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게 된 건 그로부터 한 달 정도가 지난 후였다.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수납 바구니를 꺼내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갈 무렵, 크리스마스트리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시계는 오후 6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청소 따위 내일로 미루는 편인데 집안이 정말 난장판이다. 왜 일을 크게 벌여서 오히려 더 수습 불가 상태로 만들어버렸을까. 커다란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과연 오늘 안에 트리 설치를 마칠 수는 있을지. 아니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라면 잠을 잘 공간도 없겠다. 하아...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에이, 설마. 평소 안 하던 청소 좀 했다고 죽지는 않겠지? 하하하. 웃고 있지만 눈에 습기가 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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