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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5. 2024

물건을 버리는 원칙.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고 싶어서_5

        청소는 매번 시작할 엄두를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줄곧 말해왔다. 나에게도.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었기에 그동안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저분함의 끝에 닿거나 누군가의 방문이 있어야 할 때가 되어서야 어쩔 수 없이 해치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나를 강력하게 압박해 오고 있었다.      


        집안에 존재하는 모든 수납 바구니를 꺼내 보관하고 있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면서 알았다. 넘쳐나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는 걸. 풀소유? 그래, 그것까지는 좋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딘가에 그럴싸하게 숨겨두기만 했을 뿐 관리는커녕 소유하고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물건들과 숨바꼭질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숨기는 것, 그것도 대충 쑤셔 넣기만 바빴다. 그런 행위도 수납이자, 정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집이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라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녀석과 함께 생활하려고 보니 곳곳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고, 이 정도면 그래도 무난하다고 합격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그 어디도 없었다.     


        사는 동안 물건들이 저절로 줄어들 일은 거의 없다. 외부의 강제성이나 자발적 의지 없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식구들은 계속 집 어딘가로 무혈입성 했지만 둘 곳은 마땅치 않았다. 그럴 때면 집이 좁아서 그렇다는 핑계로 점점 더 공간과 공간의 경계를 쓸모와 존재의 이유를 허물었다. '당장' 그리고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그것밖에 없었다.

  

         욕실용품이 바로 옆 주방에 있는 것은 애교 수준. 옷들이 옷장을 박차고 나와 책상 위에 자리 잡아 옷더미를 이루고 있는가 하면 싱크대의 설거지거리는 딱 봐도 오늘치 분량이 아니었으며, 읽었는지 아니면 앞으로 읽을 책인지 한눈에 구분할 수 없는 책들은 책장이 아닌 바닥에서 먼지와 함께 쌓여있었고, 수건들은 세탁기 근처에서 요란스러운 자태로 청결해질 때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하는 세제는 싸게 판다는 이유로 대량 구입했지만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없는 상태였다.   


        과감히 버리기로 한다. 원칙은 두 가지. 보관하고 있는지 몰랐던 물건이거나 최근 2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가지고 있는 것도 몰랐던 물건이라면 원래도 필요가 없었는데 구입했거나 한때는 필요했으나 지금은 새로운 물건이 그 자리를 대체해 없어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었다.


        최근 2년 동안 사용을 미루면서 다음에, 또 그다음으로 미루기만 했던 것들도 마찬가지. 대체로 신발과 옷이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루고 또 미루다 보면 기어코 그 한순간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한 번을 위해 대체 언제까지 내 공간을 옷과 신발들에게 내주어야 하는 걸까? 2년 동안 없었던 일이 다음 달, 그다음 달이면 생길까. 조금 더 넉넉잡아서 내년, 내후년에 생길 가능성은 얼마지? 그 한 번을 두고 보자는 유혹보다 그 한 번이 오지 않는다는 가정이 훨씬 더 마음이 편안하게 만들었다.


    기준이라곤 딱 두 가지뿐이었는데 보관하고 있던 것 중에 80% 이상은 살아남지 못했다. 처참한 결과였다. 다만 400여 권이 넘는 책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면서도 도저히 포기되지 않아 예외로 두었다.   

  

    단지 물건을 버렸을 뿐인데, 집은 어제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몰랐다. 달라진 건 집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이날을 시작으로 나는 점점 더 물건 버리기와 체계적인 정리는 물론, 청소에 취미를 붙였다.


    2만 5천 원짜리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를 갖기 위해 가지고 있던 물건 80%를 정리한 하루. 이거 수지타산이 맞는 건가.....? 자본주의 관점에서만 보면 손해가 분명한데 나는 왜 뿌듯하기만 한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크리스마스트리 너무 이쁘다. 사길 참 잘 다 싶다.


'너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하거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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