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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6. 2024

지저분하지만 완벽주의자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6

        지난 두 달간, 매일은 아니어도 청소를 제법 자주 했다. 바로 어제도 갑자기 기분이 내켜서 청소했을 정도니까. 나 스스로 청소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전에 없던 일’로만 치부하기에는 다소 소박한 표현인 듯하고. 전에 없던 나? 그래, 이게 맞겠다. 청소하는 게 너무 버거워서 싫어하던 나에게 벌어진 생활 혁명이라고 해도 전혀 오버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청소가 버겁지 않다. 오히려 쉬워도 너무 쉽다. 최소 두 시간, 최대 여섯 시간 걸리던 일.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필요한 마음의 준비를 포함하면 짧게는 하루, 어떨 땐 마음만 먹다가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던 나였다. 하지만 이제는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어찌 보면 원룸 생활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것 같고. 그럼에도 그동안은 왜 이런 장점을 스스로 회피해서 못 누리고 살았나 억울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한번 스피노자의 말을 떠올려본다.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사실은 하고 싶지 않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앞서 고백했듯이 나는 청소를 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단지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갈망하면서도 왜 청소가 하고 싶지 않았을까.      


        크리스마스트리 입양을 무사히 마친 그날, 그러니까 그 하나를 들이기 위해 80%의 집안 물건 비우기를 시작한 첫날, 내가 깨달은 건 ‘나는 이런 공간을 원했다’는 사실이었다. 돌아보면 고작 쓸모가 없어졌거나 불필요한 물건을 덜어낸 것에 불과했다. 새집으로 이사를 한 것도 아니었고, 인테리어를 새로 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 주방과 욕실, 책장, 나머지 서랍장 그리고 가장 절실한 냉장고 등은 손도 대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원룸 공간을 넓게 쓰겠다는 이유로 나는 침대가 아닌 좌식 생활을 선택했다.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고, 이불을 개면 거실인 셈. 공간을 넓게 쓰겠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다만 그게 내가 아니라 물건들이라는 게 함정일 뿐. 언제부터였을까. 이불을 펴야 하는 공간을 제외하고 물건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한 게. 당연하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뭐, 손만 뻗으면 필요한 물건들이 어느 방향에나 있었으니 효율성만을 따지자면 나름 최대 아웃풋이었을지도. 하하하.      


        아무리 원룸이라고 할지라도 ‘공간다움’은 필요했다. ‘나다움’을 잃으면 나라는 사람이 내가 아니듯, 잡동사니로 바닥을 점령당한 공간에 잘 공간은 있다고 해서 침실이 될 수는 없었다. 옷더미에게 자신의 일부를 내어준 책상이 옷장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할 때 ‘나는 원래 게으른 사람’이라는 자기 합리화 아니 어쩌면 자기 최면일 수도 있는 그 말이 매번 변명이 되어 주었다. 하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을 때도 나는 여지없이 그 말을 찾았다. 그게 ‘나다움’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잘’하고 싶었다. 이왕 할 거라면 완전하게 해내야 한다고 ‘완벽주의’를 꿈꿨다. 그 부작용으로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면 철저하게 회피했다.


        깔끔한 완벽주의자였다면 아무 문제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깔끔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어느 면에서는 게으르기까지 해서 소소한 지저분함에는 대체로 관대하다. 그런 매일이 쌓여 걷잡을 수 없을 때, 완벽주의를 발동시킨다. 아마도 나는 ‘부분적 완벽주의자’가 아닐까.      


        일반적으로 청소라고 하면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청소를 하기 위해서는 매번 한 단계가 더 필요했다. 정리. 바닥을 비롯한 평평한 공간 모두를 제 멋대로 사용 중인 물건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쓸고 닦을 수 없었다. 옷을 옷장에, 책을 책장에, 갈 곳 잃고 바닥에 내려진 물건들을 제자리로... 내가 해야 하는 청소가 매번 ‘대청소’ 여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청소 그 자체보다는 그에 앞서 반드시 해치워야 하는 정리라는 과정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생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게 된 그날밤, 대량으로 물건을 비우고  지낸 '침실다움'을 찾았다. 긴 시간을 돌아서 겨우 제자리로 돌아온 잠자리에서 결심했다. 잃어버렸던, 아니 내가 강제로 삭제시켰던 ‘공간다움’을 모두에게 돌려주기로. 그리고 이번에는 '한 번에 확'이 아닌 차근차근, 무리하지 않고 '한 군데씩' 정리해 보기로 한다. 부분적 완벽주의자답게 말이다.      


        이제 나에게 대청소는 필요 없다! 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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