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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7. 2024

당신의 냉장고는 안녕하십니까?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7

        우리 집 냉장고 말이다. 나는 이 네모난 상자를 이 집에서 공간다움을 상실한 1위로 꼽겠다.  다른 이들의 냉장고는 아마도 조만간 먹을 음식이나 식재료들을 상하지 않도록 보관하는 역할을 위풍당당하게 수행 중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냉장고는 애석하게도 그 목적보다 결국에는 안 (해) 먹을 거지만 먹을 수도 있는 내일을 위해 재료들의 싱싱함을 점점 더 잃게 만드는 곳이거나, 남은 배달 음식을 버리기 아까워 또는 당장 버리기 귀찮아서 내일을 기약하며 처박아두는 곳으로 쓰이는 때가 더 많았다. 1년 365일 가장 성실하게 열일 중임에도 이 집에서 본연의 존재 가치라는 측면에서 가장 푸대접을 받는 대상이었기에 나는 늘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수없이 곱씹었지만 그때마다 마법의 문장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를 끄집어내  이내  재정비 욕구를 사그라들게 만든 것도 다름 아닌 나였다.


        내가 보유한 냉장고는 소형 냉장고로 대략 가로, 세로 50cm 정도, 높이 90cm  남짓의  크기에 냉동실과 냉장실이 나뉜 2 도어 사양. 독립생활 처음부터 같은 크기의 냉장고를 브랜드만 바꿔 사용 중이었다. 그동안 바꿀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주변에서도 냉장고와 에어프라이어는 무조건 커야 한다고도 했다.  응원(!)에 힘입어 실제로 몇 번은 구매 직전에  이르기도 했지만 번번이  마음을  접었다. 지금도 제대로 쓰지 않는데 단지 냉장고 사양을 바꾼다고 해서 그동안 안 해 먹던 집밥을 해 먹고 살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고로 절대적으로 불확실에 가까운 미래에 돈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솔직히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끼니의 대부분을 배달음식에 의존했으니까. 열 번 중 여덟 번을, 심할 때는 열 번 모두 그랬다.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면 냉장고 안을 궁금해하는 대신 바로 배달 어플을 켰다.  심지어 당일 아침 로켓프레시로 도착한 싱싱한 먹을거리들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거면 주문을 왜 했냐는 자책과 비난 그리고 낭비를 했다는 후회로 배달 어플을 켜기까지 잠시 잠깐의 망설임이 추가될 뿐, 최종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냉장고가 아주 작은 것에 비해 식재료를 주문할 때면 매번 대용량으로 사들였다. 매일 한두 끼씩 해 먹는다고 가정할 때  5일에서 일주일정도는 버틸 수 있을 양이었다. 밥을 거의 안 해 먹는 1인 가구였음에도 그런 무모한 선택을 했던 내 나름의 이유는 있다. 무료 배송 최저가를 맞추기 위해서 이것저것 담다 보면 또 다른 저것 이것들이 필요했다. 또 오늘의 특가와 같은 유혹에도 곧잘 빠졌다.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구색을 맞춰 부재료들과 소스 등등 사고야 마는 것은 항상 필요이상으로 넘쳐버렸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식재료들을 사기만 하고 잘해 먹지는 않는 사람. 유통기한을 넘겨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럼에도 시시때때로 야심 차게 집밥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다시 사야 하는 악순환을 절대 끊어 낼 수 없었고 잘못된 선택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겨울에는 그나마 덜하지만 여름이면 대부분의 재료들은 무조건 냉장고로 직행해야 한다. 버려야 할 것들이 버려지지 않은 냉장고에 그들이 새로이 자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리저리 테트리스하듯 끼워 맞춰보지만 말했다시피 우리 집 냉장고는 작아도 너무 작았고 이미 그 속에는 필요한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뒤엉켜 불행한 공존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겨우 냉장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운이 좋은 편. 테트리스에 실패한 일부는 집에서 가장 서늘한 공간에서 오지 않을지도 모를 때만을 기다리며 저마다의 생기를  잃어갔다. 어차피 냉장고 안에 있는 아이들의 운명도 그저 시기만 늦춰질 뿐 같은 모습을 하게 될 테지만.


        지난해 12월 1일부터 2월 7일 오늘까지, 내가 배달 음식을 먹은 건 단 세 번. 그나마도 내 주제에 감히 만들 수 없는 것들이었다. 크리스피도넛, 초밥, 바지락칼국수(요즘은 밀키트도 잘 나오지만 우리 동네에 내 스타일의 맛집이 있어서 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시켜 먹을 때도 있을 만큼 최애 메뉴). 얼마 전부터 일을 쉬고 있는 백수이기 때문에 해당 기간 동안 간간히 있었던 약속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무슨 말이냐. 모든 끼니를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냉장고가 본연의 공간다움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닫게 다. 그것은 바로... 다음에 쓰겠다. 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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