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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08. 2024

오늘도 나는 엄마 음식을 버리는 못된 딸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8

        부분적 완벽주의자로서 오늘은 딱 냉장고 정리만 하기로 했다. 소형 냉장고니까 금방 하겠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뭐,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냉장실의 반이상의 지분을 엄마가 보내준 김치가 갖고 있었다. 추정컨대 대략 8개월 정도 된 것도, 바로 얼마 전에 보내준 것도 있다. 김치 없이는 밥이 잘 안 넘어가는 한국 사람이 바로 나. 가끔 해 먹는 집밥 메뉴의 50% 이상이 김치볶음밥일 정도로 어떤 때는 2주일 내내 해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작년 2월부터 10월까지는 정말 바빴다. 내 생애 그렇게 산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일이 녹초 상태였다. 집에서 밥을 먹는 날도 많지 않았지만 설령 그런 선택지가 주어지더라도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도무지 따라주지 않았으므로 집밥이라는 보기는 자동 삭제. 가능한 밖에서 해결하고 오거나, 사 오거나,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그마저도 힘들면 그냥 굶고 바로 잠을 청하는 식이었다.


        애써 김치를 숙성시키는 거라고  믿으며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사실 난 푹 익은 김치 보다 금방 담은 김치를 좋아한다.) 당연히 처음 받은 양에서 김치는 거의 줄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엄마가 보내준 깻잎 김치와 무말랭이, 콩자반도 마찬가지. 언제 마지막으로 먹고 쭉 냉장고에 두었더라. 최후의 개봉 날짜는 기억하지 못해도 안다. 아주 오래전이라는 것을. 차마 반찬통을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의 오래전.


        다른 나머지는 최애 메뉴 된장찌개의 핵심 재료 된장. 보쌈을 시키면 같이 안 보내줄 때를 대비한 새우젓. 볶음밥으로 해 먹기 좋은 낙지젓갈. 불투명 하얀색 플라스틱 일회용 그릇에 담긴 정체불명의 배달음식 반찬들. 냉동실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엄마가 하나하나 손질해 준 채 썬 청양고추와 깐 마늘. 2인분 이상만 배달되는 음식을 먹고 남은 것들. 먹다 만 몇몇의 냉동식품들. 진작에 냉장고 안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봉투 안으로 넣어야 할 것들이었다.


        알면서도 단호하게 버리지 못한 데는 '엄마음식'에서 밀려오는 죄책감 때문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엄마의 정성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었다면 열심히나 먹던가. 완전한 자의는 아니었다고는 하나 먹지도 않고 썩히면서 미안해서 버릴 수는 없다고? 가지고 있으면 죄책감이 없어지나? 아니. 죄책감을 줄일 방법도, 사라지게 할 방법도 없다. 그 마음을 발견했다는 건 잘못을 했고, 그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며, 절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무엇보다 스스로가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 다만 우리는, 또다시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 그 마음을 가슴 한편에 숨겨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엄마 음식을 버리는 못된 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판결을 유예시키기 위해서 냉장고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끄럽지만 죄책감이라는 그 마음의 무게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순간을 맞은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그때마다 다음에는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게 어려워 엄마 음식을 무조건 거절할 때도 있었다. 또 버리게 될 것을 알았으니까. 그렇게 내 안에 죄책감이 쌓이고 쌓이는 게 싫었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딸에게 해 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 찬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음식 거절 사건 이후 갑자기 내가 엄마가 만든 미역줄기볶음을 먹고 싶다고 한 날이었다. 엄마는 그저 들떠 있었다. 심지어 예전 맛이 안 난다며 다시 만들기까지 했더랬다. 혹여 내가 못된 딸이 된다 하더라도 엄마의 기쁨을 지켜주자 싶었다. 사실 내가 어려운 건 없었다. 엄마가 힘들 뿐이지.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했던가. 이 경우에는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까? 또다시 나쁜 딸이 되고 말았다. 과연 그렇게 안 되려고 노력이라는 걸 하기는 했나. 나라는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인 걸까. 오만가지 생각에 둘러싸여 대부분의 냉장고 입주자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매정한 건물주 같았다. 어쩌면 나에 대한 화를 그들에게 푼 걸지도 모르겠다.


        텅 빈 냉장고 속을 바라보자 이제는 밥을 해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가 해주던 무생채 비빔밥이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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