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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11. 2024

나는 왜 주방이 싫어졌을까.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1

        나는 왜 주방이 싫어졌을까. 내가 파악한 주방 거부증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통해 점점 더 단단하게 굳어졌고 고질적으로 변해갔다.


        앞으로는 밥을 해 먹자. 하지만 전에 먹은 설거지가 쌓여 있다. 밥은 먹고 싶지만 설거지는 너무 귀찮다. 설거지를 덜 해도 되게 그릇 개수를 늘린다. 기하급수적으로 그릇이 늘어난다. 정리가 안 된다. 주방이 어수선해진다. 많아진 물건 때문에 동선도 엉키기 시작한다. 뭐 하나를 해 먹으려고 해도 요리하기가 너무 불편하다. 짜증이 난다. 그냥 하지 말까. 그래, 배달이나 시키자. (다음날) 오늘은 밥을 해 먹자. 하지만 여전히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다. 아, 너무 귀찮은데.....


        언뜻 보면 단순히 설거지 귀차니즘에서 비롯된 문제처럼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설거지를 끝내도 전혀 개운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설거지 귀차니즘을 (잠시 잠깐일지언정) 극복했으면 청소가 그렇듯 설거지도 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분이 상쾌해야 되는 거 아닌가? 전에는 요즘과 달리 깨끗함이 오래 유지되지 못했을 뿐 분명 청소를 하고 난 직후에는 엄청난 희열과 만족을 느꼈다. 그런데 왜 설거지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설거지 귀차니즘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주방은 나의 잠자리와 냉장고가 그랬듯이 공간다움을 잃어버렸다. 뒤죽박죽, 어수선한 주방. 한 마디로 정리라는 게 없는 무법지대였다. 온갖 그릇들이 설거지를 마치고도 제자리를 찾은 적 없이 계속 대기 상태로 밖에 나와 있고, 각종 양념과 소스들은 제각각 흩어져 마이웨이 상태. 이를테면 설탕은 싱크대 하부장 바구니에, 고추장은 상부장 1단 구석에, 된장은 냉장실에, 고춧가루는 냉동실에. 설거지를 마친 그릇들이 계속 밖을 싸돌아다니는 동안 원래의 자리에는 또 다른 물품들이 차지했으므로 이제 와서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것도 너무 늦은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내가 아무리 만성적 귀차니스트라고 해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시작은 한두 개가 질서에서 벗어났다. 나 혼자 사는 집이니까, 나만 모른 척하면 되니까, '그래도 괜찮다'며 눈감아주었다.  두 개가 세 개가 되고, 세 개가 수십 개가 되어 오늘을 만들기까지 몸은 편했는데 이제는 눈이 너무 힘들다.  육체적 스트레스 대신 시각적 스트레스를 얻은 게 분명하다. 보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걸 보면 말이다.


        여느 날처럼 이쯤 해서 심신의 안정을 위해 요리를 포기하고 배달음식을 시켰던 마음을 달래 돌려세웠다. 무를 사놓기도 했고, 무엇보다 무생채를 만들어 먹겠다고 채칼까지 산 마당에 무는 베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주방 문제를 고민해 보자.


        레시피대로 하면 15분 만에 끝나야 하는데, 이미 틀려도 한참 틀려 먹었다. 장비의 도움을 받아 무 채를 써는데도 이미 30분이나 걸렸다. 게다가 요령이 없어서 막무가내 힘으로만 하니 죽을 맛이다. 간신히 썬 무를 볼에 담고 냉장실에 들렀다가, 냉동실에 들렀다가, 싱크대 하부장으로 갔다가, 싱크대 상부장으로 갔다가, 다시 하부장으로 갔다가, 레시피 찾아봤다가. 그야말로 양념 찾아 헤맸다. 처음에는 분명히 한 곳에 모아 두었는데 도대체 언제 저마다 독립을 한 거지? 이 순간 결심이 섰다. 주방 공간을 전면적으로 재배치해야겠다고.


        무생채 만들기 작전 돌입 2시간 후. 나는 우걱우걱 무생채 비빔밥을 씹으며 그토록 싫어했던 주방을 응시했다. 무생채는 실패였다. 그럼에도 된장찌개와 고추장이 부족한 맛을 채워준 탓인지 비빔밥은 너무 맛있다. 실패한 무생채는 내가 백종원 대표나 이연복 프가 되지 않는 이상 되살릴 수 없다.


        하지만 주방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무생채 말고 주방을 살려보기로 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밥이 맛있어서 신나 있는 나란 인간. 연신 맛있다를 내뱉었다. 실패한 요리로도 이렇게 좋아하면서 그동안은 어떻게 안 하고 살았니. 응?!


        같은 하나의 나인데, 나도 나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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