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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25. 2024

술 취해서 맞은 '학교종이 땡땡땡'의 위기.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8

        어젯밤 오랜만에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와 현관문을 여는데 ‘학교종이 땡땡땡’ 멜로디가 들렸다. 신호다. 도어록 건전지를 교체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소리의 의미를 몰라 방심하다가 내 집에 내가 들어가지 못할 뻔한 적이 있은 뒤로 내 대처는 즉각적으로 변했다. 전이라면 바로 건전지를 사러 편의점으로 뛰어갔을 텐데 이번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집 정리를 할 때 나도 모르게 쏟아져 나왔던 여러 가지 중 하나가 건전지. 발견된 장소도 다양했다. 책장 서랍에서, 수납함 바구니에서, 싱크대 상부장에서. 대거 발굴을 마쳤지만 또 어딘가에서 발견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것도 모르고 며칠 전에 사놓은 건전지까지 포함해 AA, AAA 건전지는 각 스무 개 정도는 거뜬히 되고도 남았다. 한 곳에 모아 하나씩 때를 기다렸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도어록을 열었더니 AA 건전지 8개가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많이 필요하단 말이야?!’  간접 LED 등을 여러 개 설치할 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을 제외하면 이제 남은 것은 딱 열 개. 다행이었다.  


        술기운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건전지 배열이 꽤 헷갈린다.     

 

 ‘+ - - + 아, 이게 아닌가? 그럼 - + + -’      


        8개나 정확하게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세 번 정도 실패하니 포기하고 싶다. 그럼 밤새 문을 열어놓고 잔다고? 말도 안 된다. 그러자 갑자기 나한테 화가 다. 술이나 깨고 할 것이지 오늘따라 유난히 부지런을 떨어서 밤 12시에 뭐 하는 짓이람? 짜증과 집중, 포기와 타이름 사이를 오가며 20여 분의 고군분투 끝에 ‘삐릭’ 원래의 멜로디를 찾았다.     


        인생에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잘못이나 실수, 위기 발생의 순간에도 어떤 신호가 들리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 양치를 하다가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채 화장을 지우려니 몹시 귀찮다는 유혹에 걸려들었다. 다시 귓가에 ‘학교 종이 땡땡땡~’이 울려 퍼진다.


        그래, 그러면 안 되지. 원래 하던 대로 클렌징 밤으로 열심히 지우고, 폼으로 2차 세안까지 마친다. 샤워볼에 바디 워시를 짜고 샤워를 한다. 이제 그만 자고 싶다. 하지만 최근 나의 욕실 루틴은 샤워를 하면서 간단하게 욕실 청소를 하고 스퀴즈로 물기 제거까지 마치는 것. 하지만 오늘은 정말 하기 싫다. 하루만 건너뛸까? 다시 ‘학교 종이 땡땡땡~’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 얼른 해버리자.      


        위기가 많은 밤이었다. 그리고 무사히 위기를 넘긴 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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