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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Feb 26. 2024

‘어떤 척’을 하고 싶어서 옷을 샀다.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19

        기대가 크면 시작이 두려워진다.     


        얼마 전 내가 쓴 문장이다. 터무니없이 그 문장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소유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문장도 아닐뿐더러, 내가 가장 먼저 한 말도 아닐 테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나만 하는 독창적인 생각은 더더구나 아닐 것이기 때문에.      


        옷장을 정리하다가 ‘그 많던 두려움은 어디로 갔나?’하는 의문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두려움도 없이 내가 사들인 옷들을 보고 있자니 과연 같은 사람이 맞나 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기대 없이 산 것들 아니겠냐고? 절대 아니다. 나는 기대 없이 옷을 사지 않는다. 실은 엄청난 기대를 하며 산다. 산 옷의 99%는 온라인으로 구입한 것들. 실착은커녕 실물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전적으로 모델 핏에만 의존해 살지 말지를 결정한다. 모델이 입은 옷을 내가 입으면 모델처럼 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분위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 기대 없이 산 옷은 단언컨대 없다.    

 

        모델처럼 될 수 있을 것이란 허황된 기대가 처참히 무너지는 데는 빠르면 하루 늦어도 3일이 걸리지 않는다. 택배가 도착하고 거울 앞에 선 나를 본 순간 ‘이럴 줄 알았어’하고 나의 도전이 또다시 실패했음을 받아들이게 되니까. 하지만 정말 그때 안 것이 아니다. 이럴 줄 알았지만 ‘혹시나’를 바라면서 저지른 충동구매였다.     


        그렇게 기분 따라 산 옷들은 한두 번 내 몸에 입혀졌을 뿐 옷장 신세를 면치 못한다. 취향이란 게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한 번 입고 나면 이미 그들의 가장 큰 경쟁력인 ‘something new’는 사라지고 없으니까. 다른 헌 옷들과의 경쟁에서 새 옷이라는 지위마저도 잃은 그들은 선택받지 못하고 번번이 진다. 어쩌면 그들의 역할이란 입고 다니기 위함이 아니라 장바구니에 담기고, 결제를 하게 만들고, 집에 도착하는 것까지. 거기에서 소멸된 것 같았다.      


        좀 더 예뻐 보이고 싶어서. 좀 더 세련되어 보이고 싶어서. 좀 더 어려 보이고 싶어서. 좀 더 몸매가 좋아 보이고 싶어서. 내가 아니라 나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산 옷들. 혹은 진짜 나를 감추고 싶어서 산 옷들. 분명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도 있었지만 그 목적을 대신할 옷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옷은 택조차 제거 하지 않았고, 또 어떤 옷은 비닐 포장도 벗겨지지 않은 채 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래, 인정하겠다. 나는 '어떤 필요'가 아니라 ‘어떤 척’을 하고 싶을 때 주로 옷을 샀다. 이제 옷장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수많은 척'에 대해서 고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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