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는 지난해 11월부터 계정 공유 유료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넷플릭스 계정 이용대상은 회원 본인과 함께 거주하는 사람, 즉 한 가구 구성원에 한한다고 못을 박았던 터였다. 사는 곳도 다 다른 선후배와 친구 사이 이렇게 네 명으로 구성된 우리들의 앞날은 이미 몇 개월 전에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운 좋았던 건지, 아니면 다들 열심히 보지 않았던 것인지 지금까지는 계정 공유에 문제없었다. 그러다 어젯밤 그들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유지하려면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2주에 한 번씩 계정주가 인증 코드를 공유하면 된단다. 우리의 경우는 내가 계정주였다. 서로가 인증 코드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번거로움 정도는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매리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은 확실했다. ‘아니요’.
2년 반 정도 계정을 유지하면서 며칠을 연달아 볼 때도 있었지만 한 달에 한 편도 보지 않은 달도 많았다. 사실 그 정도는 평범하다. 아예 두세 달 동안 보지 않은 적도 있었으니까. 양적으로는 많았지만 무엇을 봐도 대개는 시큰둥했다. 어차피 내일이나 다음에 보면 되니까 끝까지 보는 것에 그다지 연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시청 중인 목록은 늘 꽉 차 있다가 어느 날 모두 지워지고, 다시 채워지고를 반복했다.
그나마 지난달은 연달아 몇 날 며칠을 본 달이었다. 갑자기 해외 시리즈에 꽂혀서 터키 드라마 <욕망의 새 시즌 1, 2>, 영국 드라마 <비밀의 비밀>, 콜롬비아 드라마 <가짜 프로필>까지 쉼 없이 달렸다. 설날을 기점으로 다시 아무것도 안 보게 되었지만.
멤버십 해지 버튼을 누르자마자 우리의 이별은 성사되었다. 완벽히 쿨한 이별이었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현진 님, 안녕하세요
요청하신 대로 해지 신청이 접수되었으며, 2024년 2월 29일 목요일에 회원님의 멤버십이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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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라니. 지금껏 수많은 사이트를 돌아서면서 없었던 미련이 생겨났다. 별것 아닌 문장 하나가 도로의 과속 방지턱이 되어 마음에 급제동을 걸었다.
다른 유료 결제 사이트들은 절대 이러지 않았다. 해지 결정 의사를 내비치면 ‘단 돈 얼마면 이런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혜택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계산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철저히 ‘돈’, ‘요금’이라는 말을 배제한 채로 넷플릭스와 나, 우리 사이에 실제로 존재한 관계가 끊어지는 것처럼 묘사해 놓은 게 아닌가. 그것도 오직 내 의지만으로. 게다가 정확히 마지막 날짜까지 알려주니 뭔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의 위력을 실감하며 계속 볼까, 흔들렸다.
그뿐이었다. 돈으로 맺어진 우리 관계는 애초부터 시한부. 계속 본다 해도, 보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관계가 영원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게 언제든 내가 손을 놓으면 끝날 관계가 아닐까? 미안하지만 나만 애쓰는 관계에 나는 지쳐도 너무 지쳤다.
안녕, 넷플릭스.
헤어지자는 내 요청을 바로 받아줘서 고마워. 말 꺼내기가 무섭게 너도 잘 알고 있더라. 그래, 나는 너를 2023년 2월 29일까지만 보려고 해.
네가 나를 그리워할 날은 아마도 없겠지. 그러니 네가 필요해지면 내가 결제 카드 가지고 돌아갈게. 카드 없이 만난 적 한 번도 없잖아. 너는 모두에게 쉽고, 친절하고, 많은 걸 보여주니까, 딱히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야. 아마 앞으로는 네가 가장 잘 나갈 때는 못 보겠다. 너의 새로운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서, 적당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얼굴 한번 보던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