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 옷.
크리스마스트리가 갖고 싶어서_20
내가 가진 옷장은 딱 하나. 아래에 두 개의 서랍이 달린 디자인으로 대략 가로 80, 너비 60, 높이 190cm 정도 되는 사이즈인데, 색깔마저도 화이트라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옷장이다. 겉보기에는.
옷장을 열자마자, 무기력함속에 버텨온 지난 시간이 눈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가 심장을 옥죄기 시작하면 한숨이 자동으로 토해진다. 이불장도 겸하고 있어 위아래, 좌우 양옆, 사방이 틈 없이 엉켜 있다. 마치 출퇴근 길 지옥철을 연상케 하는 빽빽함. 와중에 지하철 손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옷걸이들이 봉에서 이탈하지 않아 와르르 쏟아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몇몇 옷이 옷걸이에 걸린 게 아니라 걸쳐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대충 눈으로 훑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도, 색깔도, 크기도 모두 제각각.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건 샛노란색의 여름용 미니 원피스이다. 다른 옷들은 어찌어찌 계절에 상관없이 입을 수 있다고 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저 옷만은 아무리 관용을 발휘한다고 해도 허용 한계치를 한 참 벗어났다. 늦가을 무렵, 옷들을 교체하면서 미처 보관용 옷상자에 들어가지 못하고 계속 옷장에 걸려버린 상태였다. 그것도 떡 하니 센터에. 위치 때문인지, 그나마 비주얼 센터 자격은 제일 있어 보이긴 한다.
옷걸이 개수를 세어 보니 46개. 아직 열지 않은 두 개의 서랍장 속 옷까지 포함하면... 옷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책상과 의자에서 널브러진 옷들까지 고려하면... 그리고 그것들을 믹스매치해서 입을 수 있는 가짓수까지 계산하면... 나는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걸까.
어렵게 계산할 것 없다. 나는 저 안의 모든 옷을 다 입지 않는다. 넉넉히 잡아도 1/4도 안 입는 것 같다. 한때는 열심히 입었지만 전성기를 지나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옷이 반, 전성기가 한참 지났는데도 애착 옷이 되어 계속 입는 옷이 반에 반. 너무나 원해서 산 옷들이지만 손이 가지 않아 안 입게 된 옷이 반에 반.
비주얼 센터를 맡고 있는 노란색 미니 원피스만 해도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네 번 정도 입었나? 사실 그 정도면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 원피스를 '어떤 필요'가 아니라 ‘어떤 척’을 하고 싶었던 한순간을 위해서 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가는 모임에서 입으려고 샀다. 그것도 모임 이틀 전에. 그 자리에서 초라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주목받고 싶어서 산 원피스였을 것이다. 아무리 옷장을 보고 또 봐도 ‘입을만한 옷’이 없었다. 말은 바로 하자. 아무리 변명이라고 해도, 핑계일지라도 개연성은 있어야지. 입을 만한 옷은 많았다. 다만 그런 척을 하기 위해 입을 옷이 없었을 뿐. 이것도 거짓말이다. 왠지 새 옷을 입어야 더 그럴듯해 보일 것 같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그 옷이 캐스팅된 적은 내 생일날, 그리고 뭔가 기분 전환을 위해서 입은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아쉽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충분히 납득 가능한 결과였다. 딱히 일상에 필요한 옷이 아니었으니까. 색깔을 제외하더라도 레이스 디자인이라서 화려한 편이었고, 길이마저도 조심성을 갖춰야 하는 데다가 먹는 것도 자제해야 하는 타이트한 사이즈. 때문에 그 옷을 입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는데, 옷 입는 일에 그 정도의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으므로 대부분 입지 않는 쪽을 택했다.
평상시에는 맨투맨이나 후디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성인이 된 후 매일 같이 입는 교복과도 같다. 비단 노란색의 비주얼 센터 원피스가 아니더라도 여름을 제외하면 원피스 자체를 잘 입지 않는다. 그것도 플라워 패턴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는. 그런데 옷장 곳곳에는 그런 원피스가 네 벌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블랙 두 벌, 핑크 한 벌, 피치 색 한 벌. 모두 6년 전 부모님과 마카오 여행을 갔을 때 산 옷이었다.
여행에 남는 건 사진뿐이라며 오직 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어서 산 원피스. 원하던 대로 사진은 잘 나왔다. 그들의 역할이 끝난 것도 이미 한참 전.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계속 입지도 그렇다고 정리하지도 못한 채로 매년 꺼내고 도로 집어넣고를 반복했다.
나라고 아무 고민 없이 쇼핑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긴 한다. 이때 아니면 입을 일이 없잖아. 불필요한 소비라고. 아주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으로 나 자신을 의심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바로 ‘이때 아니면 언제 입어 보겠어?’로 바뀐다. 다음이 안 올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전제가 갖다 붙자 마음의 죄책감도 최대한 덜어진다. 쓸 때는 써야 한다고 부추김까지 추가하자 완벽히 넘어갔다.
오늘만 살 것처럼 산 옷에게 내일이 있을 리가...
어디 여행 갔을 때 입었던 옷. 크리스마스 때 입었던 옷. 콘서트 갈 때 입었던 옷. 미팅 갈 때 입었던 옷. 이런 식으로 기억되는 옷들이 과거의 추억에만 갇혀 현재를 살지 못한 것은 이처럼 단지 어떤 순간만을 위해 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