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라는 말이 마냥 설레던 날이 있었어.
실은 이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을 때
훨씬 더 많이 쓰는 말이란 걸 알기 전까지
다음을 약속하는 게
대부분 기약 없는 바람이 될 줄은 몰랐어...
흔히 말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말 중 하나는 ‘언제 밥 한 번 먹어요.’였다.
마음에 없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터라 저 말을 받을 때면 진짜 밥 먹을 생각이 있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안 먹을 사람에게 ‘네’라고 거짓말로 대답할 수는 없어서 내 딴에는 매번 대답에 신중을 기했다. 그때 만해도 많이 순진(?) 했던 탓에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줄만 알았지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의미를 해석할 능력이 내겐 없었고, 웃프게도 서로의 건투를 비는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내가 대답을 고민했던 만큼에 비례해서 사람들에 대해 실망 아닌 실망도 많이 했었다. ‘아니, 빈말을 도대체 왜 하는 거야?’라며 내 기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을 탓하면서...
살아 보니 ‘언제 밥 한 번 먹어요.’라는 말은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밥 한 끼 같이 하면 좋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웃으면서 다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그럭저럭 잘 지냅시다.'에 훨씬 더 가까웠다. 정말 마음에 없는 상대에게도, 아주 진심인 상대에게도 건네지는 말이기도 했다.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했는데, 나는 ‘언젠가’라는 말을 매번 희망과 기대가 포함되어 있는 다음에 대한 지켜질 약속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말하는 ‘언제가’의 범주는 ‘내 일을 갖게 되면’까지, 그러니까 돈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이었고, 그때 나는 아우토반까지는 아니어도 나의 내일이 4차선 도로 정도는 될 줄 알았더랬다. 그래서 다음을 약속하는 게 뭐든 설렜고, 마음만 먹으면 지켜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 일을 갖게 된다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거나 하면 안 되는 것이 더 많았고,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은 말도 때론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언젠가’라는 말은 상대방의 제안에 바로 확답할 수 없거나 애매하게 돌려서 거절하고 싶을 때, 다 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현재를 살아야 하는 나를 붙잡아야 할 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러기를 바랄 때 주로 쓰는 말이 되어버렸다.
엉뚱한 생각 같지만 과연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일까를 생각해 봤다. 대체적으로 ‘언젠가’라는 것은 현실과 타협해서 적당한 시기와 시간이라는 조율 지점을 찾았을 때이지만 결정적으로는 마음의 허락이 구해진 시기를 말하는 것 같다. 이때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고 싶다’는 의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야 된다’는 의무감 섞인 마음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어쩌면 마냥 꿈처럼 부푼 말로만 여겼던 ‘언제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터져버리고 마는 풍선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끝내 찢어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더라도 우리는 또다시 말할 것이다. '언젠가'는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