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바르셀로나를 걷다_(8)

정하지 않은 시간들을 발길 닿는 대로 채워가는 하루가 모여 여행이 되고1

by 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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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게 정하지 않은 시간들을 발길 닿는 대로 채워가는 하루가 모여 여행이 되고_(1)

아, 아침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소매치기를 당한 이후로 전쟁 같은 1.5일을 보낸 우리는 다시금 여행자의 마음으로 남은 여행을 즐겨보겠다 다짐했지만... 띠로리!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일뿐. 여행은 항상 마지막 날이 되면 뭔가 더 아쉽고, 부족한 것 같고... 그럴수록 왜 가고 싶은 곳은 늘어가고, 못 가본 곳은 왜 또 그렇게나 많은지...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여행 스케줄을 어떻게 정하세요?


어떤 분들은 여행 오기 전 모든 일정의 세부적인 시간 계획, 이동 수단까지 파일로 정리해서 하나씩 클리어하면서 다니기도 하더라고요. 사실 여태까지 일정을 미리 완벽하게 정하고 한 여행이 없는 저로서는 그저 놀랍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고, [메인 테마 하나+ 알파] 주로 이렇게 정했어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제가 체력이 약한 편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왕 온 김에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이동이 많은 것은 지치기만 하고 제가 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여행이 아니라 체력 훈련을 온 느낌이랄까. 사실 패키지여행을 선호하지 않게 된 이유도 바로 이 이유가 좀 큽니다.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대신 일정이 정말 빡빡하잖아요~ 저는 한 곳만을 보더라도 시간을 넉넉하게 두고 보내는 게 좋았습니다.

다른 이유는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갑자기, 불현듯! 가고 싶은 곳이 생긴다든가,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우연히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을 발견한다든가 할 때가 생기잖아요. 예를 들어 골목 아주 작은 카페의 커피 향에 반해 몇 시간이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든가, 동네 작은 서점에 들러 책 냄새에 빠져 보고 싶다든가, 우연히 발견한 공원에서 맥주 한 캔 들고 유유자적하게 낮술을 하고 싶다든가. 아니면 어제 갔던 곳이 좋아서 다시 한번 더 가고 싶다든가. 그런 순간들이 하루 중에 들어올 수 있는 여유를 두고 싶었거든요. 하나의 완전한 정해짐과 하나 이상의 즉흥성이 따를 수 있는 스케줄. 제 여행은 그런 편이었어요.


오늘의 메인 테마는 몬주익 분수쇼 + 피카소 갤러리였습니다. 분수쇼가 밤에 하는 걸 감안할 때 낮 일정이 하나밖에 정해지지 않은 정말 한가로운 일정이었죠. 그런데 숙소에서 피카소 갤러리 가는 길에 마침 보케리아 시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케리아 시장에 들렀다가 피카소 갤러리에 가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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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바르셀로나 여행 초반에 보케리아 시장을 많이들 가는데, 저는 여행 마지막 날이 돼서야 갈 수 있었습니다. 책에서 보고 상상했던 것보다는 그리 큰 시장은 아니었습니다. 판매되는 종류가 한정돼 있는 건지 제가 자꾸 그런 것들만 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금이나 양념류들이 제 눈을 사로잡더라고요. 일단 색깔이 빨갛고 노랗고 하얗고 하니까! 그리고 결심했죠.


나 꼭 바르셀로나 소금 살 거야!

음식점에서 고기에 찍어 먹어 본 후 저는 이 나라의 소금에 빠졌거든요! 그런데 시장에 소금을 파는 상인들이 많은 겁니다. '역시 이 나라의 소금은 특별한가 봐'라고 확신을 갖게 됐죠. 그렇게 한 바퀴 휘~ 둘러보다가 갑자기 점심 메뉴로 가보고 싶은 음식점을 발견! 그런데 찾아보니 한국인들도 많이 간다는 맛 집이더라고요? ㅋㅋㅋ 이른 아침이라 오픈 전이었어요. 우리는 피카소 갤러리를 둘러본 후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즉흥적으로 결정합니다.

image_1999429521502506384166.jpg?type=w773 보케리아 시장 안, <미친 돼지>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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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봅니다. 건물들이 꽤나 반듯반듯, 쭉쭉 뻗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이곳이 고딕 지구라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 미술 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들어도 와 닿지 않은 단어인 '고딕'이 여행에서 직접 보고 경험하니 저절로 알아집니다. 굉장히 세련되고 날렵하고 시원시원하고 정갈한 미술 양식인데, 살짝 고백하자면 약간(?) 제 스타일이었어요. 하하! 학교 수업시간에는 백 번도 넘게 들었는데, 그때는 왜 제 스타일이 아니었던 걸까요? 한창 고딕 양식에 마음을 뺏긴 채 걷고 있을 때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건물이 나타납니다.

여긴 어디?
우린 어디?
KakaoTalk_20170812_100107309.jpg?type=w773 산자우메 광장

예정된 목적지가 아니었으니 알리가 없죠. 구글 지도를 켜고 찾아본 결과 산자우메 광장. 14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건축된 고딕 양식의 시청사와 자치 정부 청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청사 건물 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특색 없는 현대 양식이라서 그런지 고딕 양식의 청사 건물을 마주하니 뭔가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그런 생각을 더 확고하게 해 준 것은 이날 그곳에서 열린 결혼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느낌상으로는 청사 건물에서 가족과 친구들만 모인 스몰 웨딩 분위기였어요. 걷다 보니 예정에도 없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도 해보는군요.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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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행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는 것은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이런 순간들 때문입니다. 여행 중 결혼식 참석(?)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웨딩촬영을 본 것도 두 번이나 있었고, 신자가 아니었음에도 미사에 참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예상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그런 우연이 주는 소소한 기쁨이 좋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피카소 갤러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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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70812_100222299.jpg?type=w773 고딕 지구 골목에 위치한 피카소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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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갤러리를 하나도 못 보는구나'했는데, 이것 역시 마지막 날에 미션 클리어하게 된 건 좋은데, '여행에서 우연한 순간이 주는 기쁨'도 있지만 '확신이 주는 배신'도 있다는 것을 저는 피카소 갤러리에서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별로...... 사실 워낙 제가 난해하게 생각하는 작가이기도 했고, 그의 초기작들이 많아서 작품이 단조로운데 거기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왜 그렇게 지루한지... 진짜 걷고 있는데도 졸리는 기분은 뭘까요? 제가 그림 보는 안목이 없는 거라고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전혀 '우연한 순간이 주는 기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념품 계산대에서 주인 없는(?) 50유로를 주웠든요. 계산하려고 보니까 발 밑에 50유로가 똻!!! 잃어버린 분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희가 가졌습니다.


누가 떨어뜨린 것인지도 모르겠고, 말도 안 통했고...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저희는 엄청난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이잖아요.(당당)


바로 어제 소매치기에게 전 재산(?)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주워갔을 텐데, 그 주인공이 우리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억세게 운이 나빴던 여자들에게 주어진 아주 소소한 행운이라고 말이죠!


과연 그 돈을 우리는 어디에 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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