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바르셀로나를 걷다_(7)

바르셀로나에서 생전 처음 경찰서 간 썰. jpg

by 현진


당한 만큼 경험치는 쌓이는 소매치기(?)


결전의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경찰서를 제 발로 찾아갑니다. 그것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숙소를 옮기기로 한 날이라서 아침부터 더 부산했습니다. 친구 한 명은 귀국 일정에 맞춰 오후 비행기를 예정대로 타기로 했고 우리 셋은 남아서 뒷수습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이럴 때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주 큰 힘이 됩니다. 오전에는 두 팀으로 나눠 이 사태(?)를 수습하기로 했습니다. 1조는 경찰서를 바로 방문해서 대기하기로 했고 2조는 다음 숙소에 짐을 맡겨 놓고 경찰서에서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사고 신고서를 받는 대로 바로 마드리드로 갈 수 있도록.


이른 아침, 경찰서 오픈 시간에 맞춰 갔는데 이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젯밤만큼 있는 걸로 봐서는 소매치기를 당하는 사람의 수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게 아닐까 의심까지 하게 됩니다. 그만큼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겠죠. 잠시지만 우리만 당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기는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눈뜨고 당한 일이라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모양입니다. 우리들이 운 나쁘게 타깃이 됐던 것뿐 바보여서는 아니었을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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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70809_093032813.jpg?type=w773 카탈루냐 광장에 위치한 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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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우리 차례가 찾아왔고 외국인 통역관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봅니다. 물론 굉장히 감정 없는 말투였습니다.(근데 나중에 보니까 츤데레 스타일이었어요 ㅋㅋㅋ) 그에게는 이게 일상이기도 했고, 이런 일로 찾아오는 사람이 오늘만 해도 우리 앞에 5명은 있었거든요. 생각보다 순조롭게 조서를 마치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핸드폰 도난 신고를 하려면 핸드폰 고유 번호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고유번호가 당연히 있겠지만 세상에 누가 자기 핸드폰 고유번호를 기억하거나 메모해두겠습니까? 하지만 그걸 모르면 리포트 작성을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도대체 고유 번호가 뭐길래 그걸 알아야 한다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고, 그 사람에게는 융통성이 없고 참 답답할 노릇이었죠.


image_766153751502259882780.jpg?type=w773 우리의 사건(?)을 담당해준 외국인 통역관


그런데 그때 사건 당사자인 언니의 치밀함이 빛을 발합니다. 언니는 워낙 꼼꼼하기도 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자기의 핸드폰 케이스를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놨다는 겁니다. 부랴부랴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처음 알았습니다. 핸드폰 케이스에 적혀 있는 고유번호의 존재를, 그리고 그것의 어마 무시한 소중함을요. 여러분 여행 갈 때는 그리고 바르셀로나를 갈 때는 꼭 핸드폰 고유번호를 기록해놓으세요. IMEI 번호 알아야 고통의 시간이 빨리 끝납니다. 저희는 이것 때문에 1시간 넘게 씨름을 했답니다.


잃어버린 여권을 찾아서, 마드리드로...!

한국으로 돌아갈 친구와 헤어지고, 우리는 사건 신고서를 들고 마드리드로 향했습니다. 정말 뜻하지 않았던 마드리드행이었죠. 이제 대사관에서 여권 발급만 받으면 그냥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해프닝에서 해방! 생각보다 사건(?) 수습이 잘 마무리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언니는 우리의 시간을 자신 때문에 쓰는 것 같아 미안해했고, 우리는 여권 재발급을 위해 발생한 경비를 언니가 모두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머리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편하지 않았죠.

그때 저와 다른 언니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드리드 여행 간다고 생각하자! 최대한 즐겁게!' 당사자의 언니는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친구들의 여행에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 최대한 잊고, 웃자!'

아무리 언니가 웃고 있어도 우린 알죠. 언니의 속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덜 미안하라고 우리는 언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즐거워했습니다. 또 그게 사실이고요. 물론 언니도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웃고는 있어도 언니를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만큼 그렇게 10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해온 사람들이니까요.

만약 혼자였다면...?


라고 생각해봤습니다. 또는 '소매치기를 당한 언니가 혼자 남겨졌다면...?' '이 상황을 우리 셋이 아니라 둘이서 헤쳐나가야 했다면...?' '혹시 내가 소매치기를 당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처럼 잘 해결할 수 있었을까...?

그때 나는 두 언니들에 대한 내 마음을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고 치열했던 20대의 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30대가 되고 느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도 그녀들의 공이 컸습니다. 나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크게 봐주고, 내가 힘들 때 오롯이 나의 편에 서주고,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나보다 더 화를 내줬던 그녀들.

이제 내가 그녀의 편이 되어줄 차례입니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다는 말 믿으세요? 저는 믿어요. 왜냐면 우리가 그랬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셋이 함께 마드리드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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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특별한 여권!

바르셀로나 산츠에서 탄 렌페가 드디어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했습니다. 비오 오고 시간이 급했기 때문에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30분 정도 걸려 만난 대한민국 대사관! 아, 이거 뭔데 감격스럽죠? 힘들게 와서 그런 것도 있지만 외국에서 대사관을 보니 뭔가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 다들 이런 마음이었던 거겠죠? 안으로 들어가니 더 놀라울 일이... 글쎄 우리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쌓여있는 서류를 바닥에 쌓으면 제 종아리 높이까지는 오겠더라고요. 새삼 스페인에 소매치기가 많다는 걸 다시 느끼며 퇴근을 미루고 우리를 기다린 주무관님의 지시에 따라 여권 재발급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한 20여 분 만에 발급된 스페인산(?) 여권! 이 유니크한 여권을 15유로 안 되는 돈으로 장만(!)했으니
어쩌면 득템 한 것 아니겠냐며 우리는 또 깔깔깔 웃습니다. 돌아올 때 출국 심사를 하던 관계자들은 언니의 여권을 보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고 하더라고요.


Oh. That's too bad


우리는 처음 당한 일인데, 그분들은 역시나 자주 보던 일이었나 봅니다. 언니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다시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게 말이죠. 물론 스페인산 여권은 평생 가보로 간직할 것입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 소매치기당하고 신고하러 경찰서에 찾아갔을 때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 영어 통역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외교부 도움을 받았는데요. 이때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외국에 도착하자마자 외교부에서 문자를 막막! 엄청 열심히 보내주잖아요? 그 번호로 전화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 그 번호는 유로더라고요. 저희는 당연히 무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유로인 걸 알고 대충격! 그런데 여권에 보면 무료 전화번호도 있어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그 번호도 알아두시는 게 좋아요. 무료 번호는 (현지 국제전화코드+) 800-2100-0404입니다. 그런데 외교부 처음부터 문자 안내를 할 때 무료 번호로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진짜 억울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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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소매치기 사건(?)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축배를 들어야겠죠? 그 와중에 이왕에 마드리드까지 가는 김에 맛 집을 가겠다며 기차에서 찾아봤죠! 우리가 간 곳은 솔 광장 근처에 있는 <Parrilla Alhambra> 사실 어제부터 마음 편히 먹은 끼니가 전혀 없던 차에 미션 클리어도 했고, 맛 집까지 왔으니 진짜 여행 온 것 같더라고요.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기 전까지 시간도 남아서 솔 광장 일대를 휘젓고 다니며 우리는 반나절 빡센 투어(?)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마드리드 방문기는 딱 이 단어로 정리됩니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고진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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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70809_093545077.jpg?type=w773 마드리드의 상징 <엘 오소> 곰상
KakaoTalk_20170809_093709484.jpg?type=w773 솔 광장 0km 도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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