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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l 24. 2020

넘쳐버린 말 한마디

그렇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게 아닌 게 분명한데도

말 한마디가 자꾸만 서운해졌다.

끝내 참지 못하고 그 말을 내뱉어버렸다.


그대도 나 때문에 속상했겠지.


왜 말 한마디가 항상 넘쳐버리는 걸까

알면서도 또 그러고 말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그녀에게 말실수를 했던 건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그래, 그건 말실수를 한 거지, 상처를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우리 엄마다.


내가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진짜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가시 돋친 말이었다. 내뱉자마자 내가 식겁해서 진심이 아니라고, 미안하다는 말도 잘못했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생각보다 일찍 꿈을 결정했다

그리고 고향에서 내 꿈을 이룰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큰 물’인 서울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이런 내 뜻을 내비쳤는데, 엄마는 저러다 말겠지 싶었는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나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그때 동의한 게 아니었다는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대학교 4학년 때 알았다. 서울에 가야겠으니 지원을 해달라고 말했다. 대학교 공부까지 시켜놨더니 취직을 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취업을 위해 필요한 또 다른 교육과정에 대한 지원까지 요청한 것이다. 내가 엄마였어도 어이가 없었을 것 같다.


변명을 하자면 내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에 내가 일 하고자 했던 분야는 이렇다(?) 할 공식 채용과정이 없었다. 대부분 소위 말하는 인맥으로 가거나 취업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 이수로 알음알음 가거나. 지역 토박이인 나에게는 서울에 그런 인맥은 없었으므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맥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6개월 수강료만도 만만치 않았고, 생활비까지 더하면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엄마가 반대를 한 건 단지 지원을 해줄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큰돈이긴 했지만 그것보다 걱정됐던 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된다는 보장이 없었고, 상처만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까 싶어서였다. 하긴 교육을 마치면 취업을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이력서에 단지 그 교육을 마쳤다고 한 줄 더 쓸 수 있는 것뿐 그 후의 문제는 다시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였으니 엄마의 걱정이 컸던 것도 절대 무리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엄마의 반대는 격렬했고 그런 엄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시작도 못해보고 이대로 내 꿈이 멈춰버릴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내가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진짜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가시 돋친 말이었다. 엄마는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내가 서울에 가는 것을 허락했다.


엄마는 3남 2녀 중 셋째였다

엄마의 부모님, 그러니까 외할아버지, 할머니는 녹록지 않은 가정 형평 탓에 자식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아들 중심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공부도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고 아주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해 오빠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꿈 타령을 하며 엄마와 냉전을 벌인 나이에 아빠와 결혼을 했고 나를 낳았다. 고작 이 몇 줄로 엄마의 삶, 모두를 대변할 수 없음을 나는 분명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미안했다. 엄마의 삶을 한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부정해버린 것 같아서... 그것도 다름 아닌 딸인 내가...!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도,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가질 수 있었다.


엄마에게 한 가지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엄마처럼 살았으면 좋겠어? " 의 의미가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어’는 아니었다. 엄마의 삶에 대한 부정(否定)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다만 나는 엄마가 참 안 됐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 할 수만 있다면 나처럼 우겨서 엄마도 가지고 싶은 게 있었을 텐데...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 아프게 한 게 지금도 못내 미안하다.


어렸을 때는 엄마를 사랑했지만 지금은 엄마를 누구보다 존경하게 다. 살면 살수록 깨닫게 되는 건 나는 엄마처럼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애초에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부족한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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