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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 Jul 26. 2020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행동이 쉽다고 그 마음까지 쉬웠던 건 아니더라...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든 대수롭지 않은 거라고.


그런데 행동이 쉽다고

그 마음까지 쉬웠던 건 아니더라...    



친구와 절교선언(?)을 한다는 것이 10대, 20대가 아닌 30대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것도 1, 2년 알아왔던 것도 아니고 5년 이상을 알아온 사이에도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그녀와의 이별(?)을 통해 알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 절교 선언 같은 것은 없었다. 아무 일 없던 듯이, 아무 말도 없이 우린 남남이 됐다. ‘촉’이 왔던 거겠지. ‘이제 서로 다시 볼 일은 없겠구나’하는 마음이.


우리의 틈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 이때부터였을까?


'나 사고 쳤어...!'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주로 밤에 일어나는 남녀 간의 그 사고가 맞다. 내 기억에 첫 고백(!)은 그녀를 알게 된 지 5년쯤 지난 시점이었는데, 그때까지 그녀(가 만든) 이미지는 ‘아무것도 몰라요’에 더 가까운 편이었으므로 사실 내게는 충격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내 연기가 뛰어났던 탓인지 한 번 시작한 그녀의 자수(?)는 그 날 이후 계속됐다.


사고를 친 그다음 날 아침이면 그녀는 전화를 통해 고해성사를 하듯 바로바로 내게 알렸다. 나는 그때마다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했다. 이것이 술만 마시면 확률 50% 이상으로 자주 일어나는 그녀의 주사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똑같은 실수를 세 번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나에게도 적용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사고가 세 번도 아니고, 네 번, 다섯 번을 넘어 계속되자 지난밤 그녀의 전말을 듣는 것에 나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매일(?) 후회를 하면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그녀를. 하지만 내 진심을 말할 수는 없었고,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쪽의 말로 속마음을 가렸다.


당시에는 나 역시도 문제가 있었는데, ‘쿨(cool) 병’ 말기 증상이 나를 지배할 때였다. 설령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뭔가 좀 더 쿨하게(?) 보이는 쪽으로 대답하느라 머리가 항상 바빴다. 특히 남녀 사이의 문제는 나 자체가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영역을 내 기준으로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에 나는 거의 대부분 반대로 말했다.


만약 거기까지였다면 우리 사이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 중 하나를 공개하고 나서 그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다른 모습들도 과감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원치 않는 술자리에 나를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게 진짜 나를 힘들 게 하는 일이었다.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 마시는 것도 술자리도 즐기는 나였기에 처음에는 흔쾌히 나가겠다고 했다. 그 자리가 단순히 즐기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부른 모든 술자리는 그녀와 나를 제외하면 모두 ‘혼자남’이거나, ‘남자들’이었고 그녀는 그들에게 호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남자들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몇 명을 제외하면 지금도 알지 못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바람잡이 역할로 나를 불렀다는 것을 초반에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 나는 '그래 진짜 연애를 시작하면 그녀의 실수도 멈춰지겠지'하는 마음이었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에게도 마음이 없었으므로 뭐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나는 ‘그런(!) 술자리’에 또다시 지쳐갔다.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앞으로 계속 나를 술자리에 부른다면 친구로서도 너를 보지 않겠으니 나를 부르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제야 그녀는 내 뜻을 이해했고, 더 이상 술자리에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두 달이 지나자 또다시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와 인연을 끊기 전까지 계속됐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술자리에서 남자들에게 쉽게 호감을 갖지 않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찜’한 남자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나의 특성(?)이 그녀가  계속 나를 술자리에 부른 이유였을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5년 만에 전에 없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 쭉 그래 왔고, 그동안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그 역할을 대신했을 거라는 것. 그래서 내게 자신을 보여주는데 5년이 걸린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녀는 누가 봐도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상이었다. 내가 보기에 외모, 몸매, 성격, 취향, 유머 등 모든 것이 뛰어났지만 굳이 어떤 조건을 두지 않더라도 그녀는 남자들이 바라는 사랑스러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아니, 그녀의 성에는 차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술자리에서의 만남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고자 했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그러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사람인데(이건 진심이다. 술자리를 제외(?)하면 - 인생에서 제외가 안 된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녀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왜 자꾸 소위 말하는 ‘쉬운 여자’가 되려고 하는지... 물론 나는 이 말도 그때는 그녀에게 하지 못했다. ‘쿨병’이 여전히 치료되지 않은 탓이다.


진심으로 이해하지도 않으면서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하는 나의 가식적인 모습도 여간 꼴 보기 싫은 게 아니었다. 맞다, 그때의 나는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쉬운 여자’와 ‘쉽지 않은 여자’를 내 마음대로 저울질하고 한쪽을  'good  girl‘ 또 다른 쪽을 ’bad girl'같이 이분법적으로 정의 내렸다. 솔직히 ‘쉬운 여자’를 경멸했지만 사실 나는 쉬운 여자(?)가 될 수도 없었다. 늘 앞뒤를 따져야 했고, 한 번도 내 감정에 솔직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 점에서 언제나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그녀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는 세상 도도한 척 고고 한척하면서.


어찌 보면 그녀의 지나친 솔직함과 나의 가식 게이지가 최고치를 달한 그 순간, 우리의 인연은 유효기간을 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일 말고도 그녀와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여기서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왜 사고(!)를 쳤다고 매번 ‘안물 안궁’인 고백을 나에게 했으며 그리고 그것을 왜 꼭 ‘사고’로 표현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녀에게 정식으로 들은 답변이 아니므로 이것은 오직 나만의 결론이다.


여자는 사랑받길 원했고 남자는 분명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그 밤을 지나자 정말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져 버렸다. 매 순간 감정에 솔직할 뿐이었던 여자는 자신의 선택을 사랑으로 인정하기에는 너무 초라해졌고, 남자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하기에는 마음이 너무 가여웠다. 행동이 쉽다고 그 마음까지 쉬웠던 건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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