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평선 끝에는 어떤 욕망이 있는가, 마주해 본다면
6.
지방에서 서울로 긴 시간 차를 타고 오면서, 고속터미널 앞 반포에 반드시 집을 마련해 보겠다는 지방러들의 열패감, 혹은 호기로움이 분명 강남의 집값을 올렸을 것이다. 나도 여기에 한몫을 한 사람이라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나란 사람은 한번 마음 먹은 일은 꼭 경험해봐야 하는 사람이니, 마음의 호령을 무시하지 않고 계속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연봉이 높은 편인 남편이 뒷받쳐 주었으니,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한다면,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방에서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해, 남편이 레지던트 과정 4년 후, 공중보건의를 3년을 끝냈을 때가 서른 중반이 넘은 나이였다. 그때까지는 여느 4년제 대졸자와 비슷한 연봉이었을 때인데, 서울에 공동명의로 첫 등기를 쳤기에, 나는 비슷하게 마음을 둔 젊은이들에게는 도전의 마음을 감히 건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남편 덕분에, 서울 핵심지로의 진입 시간이 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면, 분명 지방 도시에서 시작해 갈아타면서,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점을, 나는 꼭 전하고 싶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고, 실천으로 옮기면, 그 꿈꾼대로 가지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꼭 집을 가지는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쓸데없는 곳에 돈과 인생을 어차피 허비하기도 하지 않는가. 철마다 좋은 옷을 꼭 한 벌은 갖고 싶다는 마음, 아끼는 후배에게 밥 한 끼 사는 일에 아끼지 않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경조사에 내 사정에 비해 큰 돈을 지불하며 빚진 마음을 갚기도 하고, 또 기부도 하며. 여행이나 차를 사기도 하며. 나는 이런 계산 없지만 마음을 쏟아붓는 일들이 인생을 더 윤기나게 함을 안다.
나의 부모님은, 어딜 가나 커플 사진을 다정하게 찍으신다. 그저 월급받는 노동자 생활을 해오신 분들이라, 큰 부자로 사신 적은 없지만, 언제나 곱게 차려 입으셔서 어느 부부 모임에서든 포토제닉이 되신다. 엄마는 신도시에 살면서, 대량으로 쏟아지는 신규 아파트 물량의 흐름을 타, 언제나 쾌적한 공간에 우리가 살 수 있게 인도했었다. 나의 외할아버지 역시 언제나 깔끔한 중절모에 다림질을 잘한 옷을 입고 다니셔서, 아흔에 임박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도 곱게 빗은 머리로 단정하다는 칭찬을 들으신 그런 분.
나는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본질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부류에 대해서는 “하찮지가 않아.”라고 말하는 편이다. 외모는 그 사람을 곧장 보여주는 단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니까. 물론 전시하기 위해 사는 삶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기쁨’은 우리 인간의 기본 욕망 가운데도 있거니와, 아름다운 물건들이 속속 나오는 세상에서, 그것을 누리는 기쁨이 큰 사람도 있는 것이니. 저급하다거나, 가진 자들의 허세라고만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한 가치에 의미를 두며, 살아가는 자유인이면 되니.
결혼할 때, 세계적인 베라왕 드레스는 반드시 입어보겠다는 꿈을 가졌다가, 모델로서 하루종일 마음껏 입어본 뒤로는, 그 마음이 사라졌다는 교회 언니(당시 직업이 모델, 연기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니를 보며, 결혼을 앞두고 나는, 몰디브로 신혼여행지를 정했다가, 발리로 바꾸었다. 몰디브가 너무 가고 싶었지만, 검색을 너무 하다 보니, 이미 몰디브 웬만한 풀빌라는 다 다녀온 느낌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아낀 돈은 의미있는 곳에, 살면서 가장 큰 금액으로 기부를 했다. 그 ‘거룩한 낭비’가 주는 기쁨이 참 좋았으므로, 그 쓰임으로 인하여, 내가 돈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으므로,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나는 ‘이 돈을 갑자기 잃어도 살 수 있다’는 이상하게 굳건한 마음이 올라왔던 시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가 예기치 않게 받아온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음에 대해서도, 돌아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