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에서 사서직 공무원, 그리고 부동산 스타트업까지
2015년 여름 서울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공무원 시험의 인기는 지금과 다르게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마땅한 재주가 없던 평범한 문과생이었던 나에게 공무원은 취준생의 신분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보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던가 대학 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공무원 시험. 공무원 직렬도 제대로 몰랐던 내가 국가직 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이름도 생소한 '교정직 공무원'
합격하고나서야 허겁지겁 어떤 직렬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당황스러웠다. 흔히 말하는 교도관. 지금도 그렇겠지만 교도관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섭지 않아요?' 처음보는 사람마다 물어보았고 나도 솔직히 무서웠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월급 220만원'
군대까지 갔다와 3호봉 그리고 교대근무로 야근수당과 특수직 수당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이정도였다. 차라리 야간편의점 알바를 뛰는게 나았다. 그래도 시험에 붙은게 아까워 쉽게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른 수단이 필요했다.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중 대학시절부터 관심있었던 부동산이 생각났다. 뭔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내가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부동산을 검색하고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내 눈에 처음 띈 것은 xx시에 있던 지역주택조합 홍보 포스팅이었다. '지역주택조합'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다. 그저 시세보다 싸게 살 수 있었고 준공까지 기간도 짧다는 홍보내용. 내가 수중에 가진 돈으로는 수도권 아파트는 꿈도 꿀 수 없었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유일하게 그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었다.
홀린듯이 모델하우스로 갔고 그곳은 환상의 공간이었다. 예쁘게 인테리어된 공간과 곳곳에 걸려있던 호재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부린이에게는 모든 것이 좋아보였다.
그렇게 덜컥 계약
티끌모아 티끌. 티끌을 담은 예금통장을 털었다. 결과는 뻔했다. 처참한 실패였다. 지르고 나면 보인다고 했던가. 그제서야 눈에 보이지 않던 리스크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환상처럼 보이던 호재들은 가루가 되었고 값싼 분양가는 내 피같은 돈으로 이루어졌다. 방법은 하나였다.
실패를 인정하자. 하지만 내 인생이 실패는 아니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본격적인 부동산의 세계에 입문했다. 내 나이 27살. 경매학원에 등록하고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더이상 바닥이 없다고 느껴졌다. 도서관에 있던 '부동산 관련 책'을 읽었다. 그냥 다 읽었다. 세금, 아파트투자, 경매, 건물, 토지, 상가 등등 모두 다 말이다. 하루에 한 권씩, 100권정도 읽으니 어느 정도의 '감'이 생겼다. 그 무렵 직장생활도 적응이 되었고 교대근무라는 특성을 활용해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