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던 집에서 이사 나오면서 양해를 구하고 아파트 창고에 남겨둔 책꽂이가 있었다. 튼튼하고 모양새도 좀 특이한 물건이라 버리는 게 아까워서 나중에 찾아가야지 했다. 그게 벌써 4년 전인가. 이번에 혁신파크의 롤링다이스 사무실로 옮기기로 하고, 남편이 용달을 불러 실어다 주겠노라고 했다. 용달을 수배해보니 여의도에서 불광역 부근까지 책꽂이를 옮기는 데 3만 3천원이라고 했다. 햐, 진짜 싼 값이구나 싶었다. 몇 년전보다 어쩐지 값이 더 내려간 느낌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남편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책꽂이를 용달에 실어 지하주차장을 나오는데 책꽂이가 높아 주차장 천장에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다고 했다. 천장의 형광등이 서른 개 넘게 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뛰어나와 막말을 하면서 화를 내는 와중에도 용달 기사님은 차분히 사과를 하고, 보험사에 연락을 하고, 형광등 잔해를 쓸어담기까지 의연하시더란다. 남편은 “이미 책꽂이가 많이 상했으니 굳이 불광까지 실어갈 필요가 없고, 제겐 보상을 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용달 기사님은 굳이 보험처리해서 책꽂이를 고쳐줄 테니 그래도 싣고 가자고 하셨다고.
사고 처리가 끝나고 망가져버린 책꽂이를 태우고 불광까지 가는 길에 용달 아저씨는 “3년을 무사고로 일해 개인택시 면허를 따는 게 목표인데, 이제 1년 8개월째였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사업을 해오며 살았고, 한때는 사업도 제법 잘 되었는데, 부동산 경기에 따라 부침이 큰 사업을 하다가 일이 잘못 되어 빚을 제법 지고 망했다고. 다행히 자식들은 잘 커서 제 밥벌이는 잘하며 살지만, 그래도 본인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하니 빠듯하게 산다고. 그래도 3년 용달 일을 무사고로 마치면 개인택시는 자식이 마련해 줄 거라고 했다고.
“그런데 틀려 버렸네.”라고 했다고.
그러면서도 “책꽂이는 보험처리해서 수리해 드릴 테니 걱정말라”는 말을 연신 하더라고 했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사는 게 다 무어람’ 싶은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우리는 이미 책꽂이 보험처리는 포기했다. 그냥 적당히 직접 고쳐 쓸 만큼 써야지.
그런데 바로 그 밤에 용달 기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옆에서 통화를 건너 들으니, 지하 주차장의 기물 값은 보험처리하지 않기로 하셨다는 것 같았다. 그러면 사고로 접수되지 않으니 개인택시 계획은 물거품이 되지 않는다. 남편은 “네네, 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네요.”라고 답을 했다. 이제 남은 건 우리 책꽂이다. 용달 기사님의 전직 중에 '목공소 운영'도 있었던 모양이다. 보험 처리를 해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자신이 직접 가서 수리를 해주겠다고 하더란다. (남편이 현직 목수라는 건 모르셨겠지.) 남편은 연신 “괜찮습니다. 그냥도 못 쓸 정도는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몇 차례 실랑이가 오간 다음에야 기사님이 포기한 모양이다. “나중에 택시 하시게 되면, 길거리에서라도 다시 뵐지 모르죠. 계획대로 잘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남편이 인사를 전했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내 마음조차 뭉클해졌다.
둘 다 어쩐지 먹먹해져 있는데, 얼마 안 가 또 전화가 울린다. 용달값 3만 3천 원이라도 돌려드리고 싶다는 전화다. 남편은 “그래도 불광까지 실어다 주신 건 맞는데요.”라고 두어 번 거절을 하다가 결국 “그래야 사장님도 맘이 편하실 것 같으니, 그럼 그 돈은 돌려받겠습니다.”라고 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 말을 듣다가 나는 결국 눈물이 찔끔 나고 말았다.
다시 볼 사람도 아닌 이에게 끝까지 책임을 다하시려는 그분은,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시는 것이로구나. 염치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분의 3년 계획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201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