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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Feb 27. 2017

손으로 만드는 기술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 4화 

손을 직접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 본 게 언제인가요? 

나에게 손이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만큼 몰입했던 경험이 언제였는지 떠올릴 수 있나요?

 

이날 방송에서는 문화로놀이짱의 아랑 님을 모시고 ‘손으로 만드는 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쓸모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당연하고, 그러다가 좀 여유가 생기면 그저 놀거나 돈을 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쓸모’가 우리 삶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돈이 되는 일을 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돈 되지 않는 일은 곧 돈을 쓰는 일이기 마련인지라 쓰는 돈에 견주어 또 쓸모를 따져보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노동(돈 버는 일)이 아니면 소비(돈 쓰는 일)로 나뉘고, 노동자(돈 버는 사람, 싫은 일이라도 참고 해야 하는 사람)와 소비자(돈 쓰는 사람, 돈 만큼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하루를 보냅니다. 


어쩌면 손으로 무엇이든 직접 만드는 일은 소비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무언가를 생산하는 활동이고, 노동이라고 하기엔 돈벌이가 되지 않는 활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으로 만들기'는 노동과 소비로 갈리는 이분법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균열을 몸으로 느끼며 몰입할 때, 일상이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확장되곤 하지요. 그곳에서 미리 기획하지 못했던 삶의 다른 가능성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랑 님이 이날 나누어준 이야기가 바로 그 가능성을 몸으로 겪어온 시간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문화로놀이짱의 구성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아랑.


오늘의 기술자 손을 써 직접 만드는 사람, 아랑


#1. 내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본 첫 경험의 짜릿함

아랑은 폐목재를 활용해 업사이클링 가구를 만드는 기업이자 생활 공동체 ‘문화로놀이짱’의 구성원입니다. 홍대 문화가 꽃 피우기 시작하던 시절, 문화기획자로 활동을 시작했던 아랑은 우연한 계기로 직접 쓸 의자를 만들어보는 경험과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생전 겪어보지 못한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되고, 그때의 경험이 ‘만드는 사람’으로 살게끔 이끈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2. 손을 쓰는 일은 몸에 힘을 빼는 경험으로 가는 통로

손을 써서 무엇이든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어린애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색칠공부가 ‘컬러링’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기도 하고, 목공이 30-40대 남성들의 로망으로 대접받기도 하죠. 사람들이 이렇게 손으로 하는 일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일이 ‘몸에 힘을 빼는 경험으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라는 게 아랑의 생각이었습니다. 손을 써서 몸으로 직접 하는 일은 대상과 내 몸,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합니다. 몸과 대상 사이에 리듬이 맞으면서,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합이 딱 맞물려나가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이죠. 이 경험을 통해 늘상 몸을 짓눌러 실감조차 못하던 긴장감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몸에 힘을 빼는 경험으로 가는 통로라는 점에서 저는 '손으로 만드는 일'의 매력을 느껴요. 

몸에 힘을 뺀다는 게 어느 정도 숙련이 돼야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몸에 힘이 들어간 채로 살잖아요. 근데 만들기를 손으로 직접 하다보면, 합이 딱 맞으면서 힘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손이 척척 움직이는 순간이 있거든요. 

이걸 경험하고 나면, 모든 것을 너무 무겁게 긴장한 채로 생각하지 않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저한테는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3. 지속가능성은 시장경쟁력과 같은 말이 아니다

이케아에 가면 10만 원쯤에 쓸 만한 4인용 탁자를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금전적으로만 보자면, 자기 손으로 직접 나무를 자르고 붙여 가구를 만드는 일이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죠. 기업으로서 시장에 내다 팔 물건을 만든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문화로놀이짱의 사업이 "어떻게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가"를 묻는 질문에 아랑은 "누가 만드느냐, 어떻게 만드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둘러 답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문화로놀이짱이 만든 물건을 찾고, 그 덕에 작은 규모로나마 지속가능성이 생겨난다는 뜻이겠지요. 


흔히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속가능성과 시장 경쟁력을 동의어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서의 시장 경쟁력은 계량될 수 있는 단기적 효용으로 환산됩니다. 그러나 '물건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단기적 효용만을 소비하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들은 단기적 효용 뒤에 숨은 층위를 볼 수 있는 사람이고, 그럼으로써 객관적으로 쓸모없는 것에서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쓸모를 찾아냅니다. 바로 문화로놀이짱의 물건에서 숨은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겠지요.

 



아랑 님은 '손으로 만드는 기술'의 핵심 세 가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 몸에 힘을 빼는 순간을 찾는 것

당장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지 않더라도, 일상의 어떤 순간에 자신이 몸에 힘을 빼고 있는지 찾아본다. 어느 순간에 나도 모르게 긴장감을 내려놓고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확인해보자. 내 손, 내 몸이 움직인다는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손을 써 만드는 일의 출발점이다.


(2)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는 것

특별한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물건을 사서 쓰면서 일상을 채우면, 일상 속에서 스스로 의지를 갖고 선택한 것은 점점 더 줄어들기 마련이다. 꼭 해야 해서 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도 아닌, 주인 없는 일들로 가득 찬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대상을 조금씩 늘려가 보자. 우리 사회는 이른바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삶의 패턴을 요구하는 압력이 강한 사회다. 그런 압력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 스스로 늘 부족하다고 다그치고 있지는 않나? 그런 압박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일상 속 작은 선택들을 진짜 내 ‘선택’이게 만드는 일이다.


(3) 쓸모없는 일을 자신에게 허락해주는 것

무엇이든 만들기 시작하자마자 쓸 만한 물건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쓸모없는 일을 해도 좋다는 마음이 아니면, 비숙련의 미숙한 시간을 견뎌내기 어렵다. 내가 무엇을, 어떤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냈느냐가 아니라, 만드는 시간에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 내 손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객관적으로는 쓸모가 없더라도, 자신이 느끼는 즐거움과 변화에 집중하다보면 어느덧 ‘만드는 사람’으로 살게 된다. 




'쓸모없는 일을 허락하라'는 말이 제게는 특히나 와닿았는데요,  손을 쓰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일이긴 하지만, 저도 그런 쓸데없는 일을 내 나름대로 끝까지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제법 오래된 일이지만, 한 2년 반 동안 철학책을 읽는 독서모임을 이어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당장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이걸 열심히 읽는다고 누가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그냥 좋아서 계속 했던 거죠. 그런데 제가 정말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가끔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 읽어보면, 막 줄이 그어져있고 메모도 써있곤 한데, 지금은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참 이상하게, 그때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겼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뭔가 쓸데있는 것,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거나 돈이 벌리거나, 남들이 보기에 근사한 일을 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쓸데없는 걸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2년 넘게 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내가 나를 오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그렇게 내 기준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잘 살 수 있겠다고 믿게 되었죠.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난 전환이었고, 그 이후로 내린 많은 선택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런 기억 때문인지 아랑 님의 이야기가 새록새록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시장이 규정하는 쓸모 밖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것은 일상 속에서 자유의 여지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자신에게 쓸모없는 일을 허락하라”는 아랑 님의 조언이 “조금씩 더 자유로워지라”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게 들렸던 이유입니다. 일상기술연구소가 여러분이 조금씩 자유의 틈을 만들어갈 용기를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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