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술연구소] 차이를 뛰어넘는 대화의 기술 - 최현숙 작가 섭외기
일상기술연구소 시즌2 는 '차이를 뛰어넘는 대화의 기술'로 문을 엽니다. 두 빈곤층 남성 노인의 구술생애사 작업을 인상깊은 역작 ⟪ 할배의 탄생 ⟫으로 펴내신 최현숙 작가님을 '차이를 뛰어넘는 대화'의 기술자로 모시게 된 배경을 이 자리에 소개합니다.
제가 ⟪ 할배의 탄생 ⟫을 읽은 건 사람들로 북적이던 합정 역의 카페에서였습니다. 초유의 최순실게이트와 탄핵정국이 몇달째 지지부진 지속되는 중이었고, 시청에 모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소위 ‘애국’ 노인들을 보며 만정이 다 떨어지던 시기였어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이상한 인간들,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한 번 알아나 보자, 하는 마음에서 골랐던 책이었습니다.
약간은 심드렁한 마음으로 펼쳐든 책은, 그런데 너무나 생각 밖이었습니다. 억지로 견뎌야 할 줄 알았던 짜증, 정보의 댓가로서 치를 각오가 되어있던 혐오감보다는 오히려, 제 마음에 차오르기 시작한 건 연민, 공감, 이해의 감정이었습니다. 사실 하필 그런 사람 많은 공간에서 그 책을 읽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담담한 입말체 서술에 실린 두 빈곤층 ‘할배’의 거칠고 지난한 삶을 짚어가는 동안, 몇번이나 왈칵 눈물이 터졌었거든요. 보는 눈이 많아 힘들게 꾹꾹 눌러참았으니 망정이지, 아마 좀 더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장소에서 읽었더라면, 눈물 나면 눈물 나는 대로 펑펑 울었을 테고, 그러다가 눈이 퉁퉁 부었을 테고, 이후 일과는 온통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지고 말 뻔했구나 싶었죠.
이 책을 통과하면서, ‘할배’는 이름없는 무뢰한들의 무리를 이르는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나 하나, 제 각기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낸 이들의 구체적인 얼굴이, 표정이, 주름이, 몸짓이, 선명해지기 시작했어요. 한 마디 멸칭으로써 뭉뚱그릴 대상이 아닌, 진짜 ‘사람’이, 각자의 내력을 지닌 인생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일깨워졌어요. 정치사회적인 시대의 흐름 속에 운과 선택과 적응과 희노애락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어간 구체적인 정황들을 따라가는 동안, 사람은 각자의 현실 속에서 나름의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그 삶의 궤적 위로 겹쳐지고, 내 안에서는 이 사람과, 이 사람의 세대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심정적인 이해와, 이런 굴곡을 견뎌내고 수용해낸 강인함에 대한 마지못한 존경심마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두 주인공 말고도 존경심과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 또 한 명 더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 본인이었어요.
'어떻게 이 분은 이렇지?'
사실은 읽는 내내 신기했습니다.
저자는 50대 후반의 진보성향 여성이었습니다. 책날개의 소개만 보아도 절대 전통적인 관념에 매여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 사람이, 나이로도 기질로도 성별로도 도무지 마음 맞을 것이 없어 보이는 두 주인공들과 더불어 이렇게 깊이있는 대화를 이어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작업을 해내신 걸까? 어떻게 이렇게 끈질기게 경청하고, 깊고 내밀한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었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울고, 가끔은 언쟁도 벌이고, 공감을 표하거나 위로를 건네기도 했을 작가의 모습은 담담한 녹취와 해석의 행간에서 여러 번 포착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결코 주인공들을 대상화 하거나 편들거나 비난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냉연하게 견지하는 객관적인 관찰과 거리두기의 태도는 정말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불현듯 그게 열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과 ‘대화’라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의 근원 말이예요.
싫은데 어떻게 그런 말에 귀를 기울여?
이렇게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댁이야 무슨 생각을 하든 나는 상관없어’라고 생각되는 상대방의 입을 쳐다보면서 으레 그랬죠.
좋아하는데 어떻게 그런 말에 귀를 기울여? 이런 생각도 정말 자주 해요. ‘엄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냥 엄마 생각 모른 체 하고 말래요.’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그냥 서둘러 넘겨버렸던 숱한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연령으로 나이로 성향으로 성격으로,… 서로 간에 너무 넓은 차이가 가로놓여있는 사이에, 듣기에 실패하고 말걸기에 실패했던 그 숱한 순간들에, 사실 그 패인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한 감정 그 너머에 있었음을 수긍합니다. 좋아해서도 실패하고 싫어해서도 실패한다면, 감정을 내세워서는 어떻게든 실패한다는 얘기가 되니깐요.
그렇다면, 이렇게 강력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길고 깊은 대화가 가능하고,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호오를 떠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이런 것을 작동시키는 이 경이로운 객관성, 휩쓸리지 않는 관찰자의 시선은 어떻게 견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사실 저자 개인의 성품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하긴 했어요. 하지만 아주 약간이라도 배워 익힐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이런 역량이 작업의 과정에서 얼마간은 길러질 수 있는 부분이라면, 말씀을 청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죠. 난 정말 어떻게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리하여 며칠후, 저는 최현숙 선생님께 섭외 메일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켜게 되었던 것입니다…. (끝)
안녕하세요. 팟캐스트 일상기술연구소의 편집을 담당하고 있는 리피디입니다. 제 존재감은 오디오 파일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안에 넓고 은밀하고 촘촘하게 편재하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