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현주 Feb 18. 2017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

일상기술연구소 19화/20화

‘평생교육’이란 말은 흔한 말을 넘어 이제 낡은 말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 “자, 이제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야”라고 설득하는 말 같았는데, 이제는 그런 말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고 할까요? 누군가 부추기지 않아도 모두들 ‘계속 배워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니까 뭔가를 계속 배우지 않으면 금세 뒤쳐진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요. 


그렇지만 배움이 그런 식으로 나를 채찍질해야 할 숙제 같은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데서, 하지 못하던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데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어떤 활동에서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능숙해질 때, 자신의 세계가 확장되고 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배우는 게 무거운 숙제처럼만 여겨지는 시절, 우리 안의 원초적인 배움과 가르침의 즐거움을 일깨워볼 수는 없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을 연구해봅니다. 더 충만한 일상을 위한 배움, 그리고 그런 배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가르침의 기술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계속 배우는 자, 그리고 강의능력자 이고잉


'배우고 가르치는 기술'을 연구하기 위해 모신 기술자는 '오픈튜토리얼스(www.opentutorials.org)'를 거점 삼아 '생활코딩'이라는 타이틀의 프로그래밍 강의를 제작하는 이고잉 님이었습니다. 



#1 나는 내가 컴퓨터 천재인줄 알았지!

이고잉 님은 독특하게도, 국문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입니다. 대학 재학 시절, 학과 웹사이트를 관리하는 일을 하다가 웹 개발에 뛰어들었고, 그러다 프로그래머로 일하기에 이르렀다고 해요. 

초등학생 시절, 안 좋은 컴퓨터로도 게임을 돌아가게 만드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기술로 또래집단의 선망을 받아온 터라 ‘난 컴퓨터 박사야’라는 굉장한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는데요. 이고잉 님은 대학에서도 전공이 전공이었던지라 보통의 과 친구들보다는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루는 편이었고, 이때의 친구들 역시 이고잉 님을 ‘천재해커’라고 또 착각해줬습니다. 거듭되는 이런 착각들이 동기부여가 되어 점차 프로그래밍에 빠져갔습니다.


#2 온라인에서 또 오프라인에서강의하는 프로그래머가 되기까지

이고잉 님은 프로그래머이자 동시에 강의하는 사람입니다. 스타트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시절, 프로그래머가 아닌 동료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던 것이 ‘생활코딩’이라는 이름의 일반인 대상 프로그래밍 강의로 확장되었습니다. 점점 강의에 재미가 붙고 동시에 회사생활은 덜 재밌어지던 그 교차점에 직장을 떠나 생활코딩 활동에 본격 돌입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동료들과 함께 만든 ‘오픈튜토리얼스’를 거점 삼아 온라인, 오프라인을 오가며 다양한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픈튜토리얼스는 다양한 콘텐츠가 공유되는 플랫폼인데요, 오픈튜토리얼스의 생활코딩 페이지에는 현재까지 2,200여개의 강의가 올라와 있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상에 어마어마한 양의 강의 콘텐츠가 올라와 있는 만큼, 이고잉 님은 오프라인에서도 정말 많은 강의를 합니다. 연이은 열여섯 시간짜리 강의코스를 반복하면서 얻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열여섯 시간짜리 강의를 40번쯤 했거든요. 근데 그 40번의 강의가 한 번도 완전히 똑같은 적은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개념들을 쫙 다 꺼내놓으면 되게 신기하게 우연히, 보통은 저 끝에 있었던 개념과 보통은 저 반대쪽에 있었던 개념이 나란히 놓일 때가 있어요. 그러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그때 굉장히 쾌감이 있어요. 그러면서 제가 배우는 것들이 있고요. 그래서 강의를 나가면 물론 오신 분들은 저한테 배우고 계신 거겠지만, 저 역시 새롭게 느끼고 알게 되는 게 너무 많아서 그 두 가지가 저한테는 하나처럼 느껴집니다."


#3 원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두려웠다

이고잉 님은 자신이 사실 내성적인 사람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늘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런 성향은 고등학교 때 냉혹한 비평이 오가던 문학회의 경험에서 생겼다는데요. 그 문학회에서 1년 동안 한 마디 말도 못꺼내면서, 말을 못하는 게 콤플렉스가 되었고 ‘아,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고 합니다. 방송에서는 이런 콤플렉스를 스스로 넘어서게 된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나누어주셨는데, 제게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습관이 생겼는데, 혼자 있으면 말을 해요. 만약에 오늘도 집에 혼자가면, 강의를 하면서 갈 걸요? 그래서 말을 하는 것 자체는 익숙해졌지만,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그 행위 그걸 경험을 못 하니까 실제로 일종의 무대공포는 잘 벗어나지질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생활코딩을 시작해서 참 운이 좋은 게, 일단은 온라인 강의로 시작했잖아요. 그러니까 괘 오랫동안 내 앞에 없는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훈련을 했고, 그러다 오프라인 강의를 했는데, 오프라인 강의는 하루 8시간씩 하고 그러거든요. 그때 알게 된 게 있는데, 누구나 타인 앞에서 한 시간 이상 발언할 기회가 있으면 한 시간 뒤에는 떨지 않는다는 거예요. 근데 그럴 기회가 없는 거죠. 말하는 기회는 보통, 돌아가면서 하는 1분짜리 자기소개 같은 거예요. 그런 건 저도 아직 긴장되거든요. 그러니까 타인 앞에서 발언할 기회를 못 가져본 사람들은 그런 1분짜리 기회만 갖는데, 그건 좋은 기회가 아닌 거예요. 


"누구나 타인 앞에서 한 시간 이상 발언할 기회가 있으면 한 시간 뒤에는 떨지 않는다." 

"1분짜리 자기소개는 누구나 떨린다."

이 말은 저의 개인적 경험과도 공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 역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거나 의견을 제시해야 할 일이 많은 편인데, 지금도 여전히 시작할 때는 항상 긴장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금은 세 문장 정도만 말하고 나면, 긴장감이 가라앉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첫 세 문장만 무슨 말을 할지 열심히 미리 생각해둡니다. 세 문장만 지나면 그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말이 나온다는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셈인데요, 그 덕에 설사 많이 떨리고 긴장하더라도 공포를 느끼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쩌면 이게 기술의 하나이지 않을까요.


#4 오픈튜토리얼스에서 상호부조의 생태계를 꿈꾼다

4-5년 전에 시작한 오픈튜토리얼스는 최근 정식 비영리단체로 전환했습니다. 오픈튜토리얼스 사이트는 현재 약 2만5천명의 가입자, 400명 이상의 콘텐츠 생산자와 연결되어 있고, 월 평균 45만명의 방문자, 130만의 페이지 뷰가 발생한다고 하는데요.(출처) 오픈튜토리얼스에는 이고잉 님이 직접 제작하는 생활코딩, 효도코딩 뿐만 아니라 전자공학 스터디, 평범한 개발자의 C 프로그래밍 이야기, 리눅스 문제해결 등 프로그래밍 관련 콘텐츠부터 생활태권도, 생활텃밭, 한국어 맞춤법 등 다양한 교육 콘텐츠가 올라와 있습니다.

 

오픈튜토리얼스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사용자 모두가 오픈 라이센스 원칙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오픈튜토리얼스에 올라오는 콘텐츠는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롭게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만큼 오픈튜토리얼스는 일종의 공공재이자 상호부조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런 오픈튜토리얼스의 원칙은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결국 하나라는 이고잉 님의 생각과 잘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기술의 핵심은?


방송을 진행하면서, 제 나름대로 '아 이게 핵심이다' 싶은 기술을 두 가지로 정리해봤습니다.


첫째,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기 &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너무 익숙한 것도 다시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데서 배움의 욕구도 생겨나고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 또 너무 낯선 것 안에서도 자신에게 익숙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을 때, 배움의 과정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가르친다는 것은 이 두 가지 과정으로 진입하도록 살짝 끌어주고 밀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가르치는 이 역시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결국 배우는 이가 된다.


둘째, 배우는 것과 표현하는 것을 오가기

배우기를 이어나가다가 슬럼프에 빠졌다면, 배운 것을 표현할 기회를 찾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표현과 인정의 욕구가 어느 정도는 있기 마련. 배우기만 계속해서는 멀리 오래 가기가 어렵다. 배움의 속도가 떨어지고 동기부여가 약해져서 흥미를 잃어간다면, 배운 것을 나름의 결과물로 만들어 관객 앞에서 자신을 표현할 무대를 만든다. 배우는 일과 표현하는 일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게 하면, 오래 가는 배움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고잉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해내가려면 서로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가 되어주는 느슨한 네트워크로의 접속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자, 때로는 관객이 되어주면서, 가끔은 '네가 정말 천재'라고 착각도 해주면서, 함께 배우고 확장해나가는 동료가 되어주는 거죠. 어쩌면 저에게 일상기술연구소가 그런 동료들을 거듭해 만나는 장소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들어주시는 여러분께 새삼, 감사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은 시간이오, 말은 말이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