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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May 07. 2018

지적 연령과 사회적 연령

학교를 다닐 때나 사회초년생이던 시기에 두드러지는 것은 그 사람의 지적 연령이다. 어린 시절에는 아는 게 많고 재빨리 아는 것들을 조합해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만큼 나이에 비해 큰 기대와 역할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나면 그 사람의 사회적 연령이 발맞추어 성장해 나가야 하는 때가 온다. 뭔가를 분석하고 판단하고 의견을 내는 게 임무인 시기에는 지적 연령만으로 제몫을 할 수 있지만, 그 지점을 넘어서면 역할과 기대에 걸맞도록 사회적 연령이 자라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연령은, 

(1) 자신이 놓인 판을 이해하고, 

(2)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3) 그 역할을 "끝까지" 수행해내는 힘의 함수다.


여기서 이해해야 하는 "판"은 멀찍이 떨어져 분석하는 대상으로서의 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놓인 판,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따라 역동적으로 달라지는 판이다. 이 판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분석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그 판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역할을 안다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의 적절한 교집합을 찾아낸다는 의미다. 상대를(그리고 그 상대는 대개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다) 이해하고, 또 나를 이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 역할을 "끝까지" 수행해내려면, 일상의 규율을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내고 지켜나가는 게 필요하다. 자신의 에너지를 유지해가는 능력 또한 포함된다.


사회적 연령이 높은, 그래서 감탄을 자아내는 사람을 보면 이런 프로세스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것 같다. 물론 지적 역량은 사회적 역량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겠지만, 그보다 사회적 역량을 추동하는 힘은 자신이 추구하는 아젠다의 힘이고, 또 인간에 대한 애정인 것 같다. 아젠다를 품은 사람, 사람-일반을 향해 따뜻한 사람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큰일을 해내곤 한다. 


상황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일을 잘한다면 지적 연령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매력적이며 유용하다. 그렇지만 손에 흙을 묻혀 무언가를 완성해야 할 때,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사회적 역량과 결합되지 않은 지적 역량은 때로 한 사람을 망치기도 한다. 자신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다.


나이가 조금씩 들수록,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능력이 생각보단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내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누군가의 능력이 참 고귀한 능력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지적 연령이 높은 사람은 늘 흥미로운 존재지만, 사회적 연령이 높은 사람은 그야말로 귀한 존재다. 그 둘이 함께 가는 사람이야 만나기 힘든 귀인일 테다. 그런 사람을 보면 재빨리 들러 붙어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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