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담 자리에서 "직장을 떠난 지금이 과거보다 행복하냐"는 식의 질문을 받았다. 이런 질문을 사적인 자리에서도 많이 받는데, 대충 대답하고 말지만 이날은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부러 오신 분이니 처음으로 정성들인 대답을 했다.
나는 직장 다녔을 때 행복했는지 어땠는지의 내 기억을 별로 믿지 않는다. 그때의 상태와 지금의 상태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고, 제대로 비교할 방법도 없다. 그 지난 시간은 말 그대로 지난 시간이고, 나는 사실 그때 마음이 어땠는지 잘 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 묻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그럴 필요가 왜 있겠나.
지금의 상태가 만족스러운지, 그렇지 않다면 뭘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위해 과거의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건 굉장히 이상하다. 그리고 그 과거 어떤 시점의 상태는 지금의 내가 가진 해석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 역시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포개진 일상의 총합이었기 때문에, 어떤 날은 썩 괜찮았고 어떤 날은 무척 괴롭고, 그랬을 것이다.
얼마 전 [퇴사하겠습니다]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도 한 생각이지만, 실제 퇴사한 사람의 인생이 단순히 퇴사 전과 후로 나뉘는 게 아니다. 그건 수많은 분기점들 중 하나일 뿐이고, 전과 후의 비교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허상의 것이 되어버린다.
나 역시 그렇게 '퇴사'한 사람이고, "어쩌다 회사를 그만 두었냐"는 질문을 퇴사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듣는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더 삶의 전환이 '퇴사'라는 한 단어로 압축되어버리는 요즘의 트렌드가 영 마뜩찮다.
모든 전환의 스토리가 그 퇴사의 순간에만 집중한다. 전환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만 실컷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 전환 전에 회사를 다녔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이후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사는지가 나는 훨씬 더 궁금하다. 무엇보다 퇴사 한번으로 전환의 과정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이런 식이라면 일단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는 게 전환의 선결조건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안다. '회사'로 요약되는 프로필은 일단 사람들에게 짧게 설명가능할 뿐더러, 그가 버린 것은 사람들이 대체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새로 가진 것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 인터뷰 기사는 즐겁게 읽었다. 무엇보다 아래 부분이 좋았다.
"엉뚱하게도 계기는 속칭 ‘폭탄머리’라고도 하는 ‘아프로 헤어’였다. 노래방에 갔을 때 젊은 시절의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잔뜩 부풀린 헤어스타일의 가발이 있길래 썼더니 함께 간 사람들이 다들 어울린다고 했고, 얼마 뒤 실제로 그런 모양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다. 이나가키는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으면서 인생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사표까지 썼다고 말했다."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도 있으며, 그 삶 역시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계획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의 마음에 이미 전환을 향한 씨앗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프로 헤어'로 머리를 바꾸겠다고 마음 먹을 때, 그는 이미 절반쯤 강을 건넜다. 그건 그에게 자기도 모르게 감행한 하나의 실험이었을 것이다. 현재 삶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발을 쓰윽 다른 세계로 내밀어보는.
전환을 위해서는 그런 작은 실험들이 필요하다. 현재의 일상에 틈을 내고, 방향을 틀 여지를 허락해주는 작은 실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