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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주 Feb 05. 2017

이력서와 사표 사이

유료 콘텐츠 사이트인 매일경제 프리미엄에 2015년에서 2016년 초반까지 [이력서와 사표 사이]라는 타이틀로 기고를 했었다. 직장인들의 고민에 답을 주는 코너였다. 많이 망설이다가 수락한 지면이었다. 누군가의 고민에 조언을 한다는 게 무엇보다 부담스러웠지만, 어떤 고민들을 하는지가 궁금한 마음이 컸다. 글을 쓰면서는 오히려 나 자신의 사고 방식에 대해 이해가 깊어졌다. 내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는지를 매번 시뮬레이션하게 되었으니까.


아래는 기고를 마치며 보낸 마지막 글.





[이력서와 사표 사이] 코너의 마지막 글입니다. 그간 서른두 편의 글을 썼으니, 서른두 분의 고민을 듣고 함께 생각했던 셈입니다. 지면으로 고민을 받아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상대가 내 앞에 있지 않고,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한 장짜리 메일에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묻는 분에게 중요한 단편적 정보와 상황에 대한 묻는 분의 해석이 주로 담겨 있기 마련이지요. 


직장생활에 대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삶에서 부딪히는 대개의 문제에 보편적인 정답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선택지들만이 존재할 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그때 내놓을 수 있는 조언은 구체적이기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선택의 원칙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지요. 연재를 마치며 지난 서른두 편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고민은 제각각인데, 저의 조언은 몇 가지로 요약되더군요. 그게 바로, 제가 갖고 있는 선택의 원칙이겠지요. 그 원칙은 두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정보로 유불리를 따져 선택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2회차에서는 “2013년 취업포털 커리어의 설문조사를 보면, 15~20년차 직장인은 평균 4.2회의 이직 경험이 있다”는 이야길 했었고, 7회차에서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따르면, 가트너(Gartner Inc.)는 로봇을 통한 자동화로 향후 10년 안에 현재 일자리의 3분의 1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고도 썼습니다. 현재 직장에서 당장 닥친 선택의 기로는 향후 4-5회의 이직을 감안하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업무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능력도 로봇이 보편화된 10년 후의 세상에서는 쓸모없어져버릴지도 모르지요. 이런 상황에서 선택은 더 어려워지지만, 오히려 당장의 일상을 충실하게 하는 것,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더라도 유용할 무기를 오래 갈고 닦는 것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됩니다. 그런 무기들은 바로 이른바 ‘멘탈’을 유지하는 능력, 친분이 아니라 일을 중심으로 관계를 구축하는 능력, 새로운 것을 두려움 없이 배우는 능력 같은 것들이죠.


둘째, 새로운 정보가 없이는 새로운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만 답을 골라야 한다고 느낄 때, 그럼에도 그 어떤 선택지도 충분히 설득력 있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도 내릴 수 없다는 막막함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럴 때는 주어진 선택지를 확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출처로부터만 정보를 받는다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도 다른 선택지가 보일 리 만무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벌려 보지 않으면, 지금 알고 있는 선택지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에 시간을 좀 쓸 수 있는 틈새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지금 직장이 요구하는 업무, 지금 직장 안에서의 관계에만 온 일상을 매몰시키는 것은 점점 자신의 선택지를 좁히는 위험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도움이 되는 일만을 하다보면, 삶의 폭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규정된 일-직장-직업의 틀 밖에서 시험하는 관계와 활동은 커리어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통찰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 부딪히면,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고, 여러 대안 중, 우리는 언제나 직접 선택한 한 가지 대안의 결과만을 확인할 뿐입니다. 사실은 영영 정답이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어찌보면, 흔한 말처럼, 좋은 선택을 하는 비결은 어떤 선택이든 그 안에서 최선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저는 지금의 시대가 나중에야 이해하게 될 역사적 변곡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업의 개념, 직장의 개념, 일의 개념이 모두 흔들리고 있는 시대이죠. 이런 시대, 각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지만, 또 그만큼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선택지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그려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저 역시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질문입니다. 모든 분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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