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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현주 May 28. 2020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아르코 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초대전이 괜찮다고 하여 다녀왔다. 디뮤지엄과 마찬가지로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 전시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세 작가의 영상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첫번째 작품인 "반도의 무희" 를 가장 재미있게 봤다. 남화연 작가의 영상 작업이었는데, 무용가 최승희 (1911-1969) 가 가졌던 꿈과 여정이 소개된다. 영상 속에는 최승희의 글이나 사진들이 등장하고, 탄츠에서도 가르치셨던 손나예 현대무용수의 퍼포먼스가 교차되어 등장한다.

전문 무용수의 오랜 전통이 있는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는 전문적인 무용이라는 카테고리가 형성되지 않은 것에 문제 의식을 느꼈던 그녀. 전 세계에 공연을 다니며 동양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동양의 발레를 정립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일본과 중국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꿈은 조선의 해방, 일본의 패망 직후 월북 하면서 실상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최근 국립발레단의 드라마 발레로 감상한 마타하리가 떠올랐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변화와 변혁의 시기,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시도들을 하던 그녀들은 결국 다시 국가 체제에 억압되고 혹은 배신당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시도가 월북 이후 북한의 무용극에 한정된 것이 좀 아쉬웠다. 또한 너무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의식하며 동양의 진정성에 매달린게 아닌가 하여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 영상에서 최승희의 무용 영상 원본도 보고 싶었는데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어쨌던 그녀와 그녀의 작업들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어 좋았다.

정은영 작가의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 은 퀴어 퍼포먼스의 일종으로 여성국극 남역배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영상과 사운드가 너무 어지러워서 도저히 볼 수가 없어 패스해야 했다. 젠더에 관심이 있는데 영상 자체가 좀 접근성이 떨어졌던게 아쉬웠다.

마지막 작품은 제인 진 카이젠의 "이별의 공동체" 였다. 세 여성 작가의 작품들 모두 다소 인류학적 접근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마지막 작품이 가장 민족지 영화의 접근을 취하지 않았나 싶다.

공연 감상 검색하다가 "샤머니즘의 미화" 라는 평을 보고 갔는데 다소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유교 가부장적 플롯이 담겨 있는 바리 공주 설화를 안좋아하는데, 그 설화에서 비롯된 한국 여성 무속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인류는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들에 대해 초자연적인 설명을 창조해왔다. 무속 신앙 역시 그러한 시도에 속한다. 예컨대 억울한 죽음은 무속 신앙에서 과거와 현재의 복잡한 뒤얽힘으로 설명된다. 버려진 자들과 죽음을 위로하는 무속 의식들의 아카이빙과 재현 차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관람은 한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전시 보기 전에 자주 지나가며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칸다 소바에 들러보았다. 마제 소바 세트를 먹어 보았는데 약간 내 입맛에는 짰지만 식초 넣어 먹으니 나쁘지 않았다. 다음엔 다른 메뉴를 시도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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