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지성계의 BTS 를 책으로 만나다!
양보다 질이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딱 그 말이 떠올랐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어주는 책 한 권을 발견해서 읽는 것이다.
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데미안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왜였는지 이유는 정확히 모른채 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은 나의 삶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는데,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참이 흘러 얼마 전 초판본 표지로 다시 출간됐길래 읽어봤는데 그렇게 큰 감흥이 없었다. 그건 지금의 나는 이미 그 때의 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유현준님의 공간의 미래를 읽으며 다시 생각한 것은, 십대 중반의 나에게 데미안이라는 책이 선사해 준 것은 아마도 나라는 자아의 장소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금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 무언가 다른 나만의 것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라는 그런 생각이 있었다. 뭐 사실 이런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긴 하다.
유현준님이 건축학계의 BTS 라고 하던데 책을 읽으면서 뭔가 굉장히 동의가 가는 이야기였다. 근데 이 분은 그냥 건축학자라기 보다는 공간 인류학자, 건축 인류학자 느낌이었다. 요즘 한국 지성인계의 BTS 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라떼는 진중권님이 미학 오딧세이 시리즈로 그때 그 시절 한국 지성계의 BTS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 미학 작업은 많이 업데이트를 안하시는 것 같아 살짝 아쉽다. 그래도 이 말도 안되는 정세에 정치 논객으로서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 분이니 뭐..
공간의 미래를 읽으면서 참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편으로 조금 더 일찍 이 분의 책을 읽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전국민들에게, 특히 소위 사회의 “리더”들에게 필독 도서로 지정해주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 생각이 상당히 비슷한 분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이렇게 온라인, 오프라인 세계의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공간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분이 있다는 것도 좋았던 것 같다.
가장 속 시원하면서도, 안타까움으로 공감을 많이 했던 부분은 현 정부, 소위 진보 정당의 부동산 정책 방향성과 포퓰리즘이 잘못된 방향임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인구수가 줄어들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잘못된 예언으로 집을 사지 말라고 하면서, 공공 임대 주택 포퓰리즘을 주장하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방향이며 위선적인 태도임을 강조한다.
일단 인구수가 줄어도 1인 가구가 늘면서 세대수가 늘었기에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것이므로 소위 진보 정당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의 예측은 틀렸다. 또한 집을 소유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정말 집을 사지 못하게 만들고 이들을 공공 임대 주택으로 유도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권력과 표를 불리기 위한 포퓰리즘이다. 결국 현실을 제대로 읽어서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서 자신들의 이권을 챙기려는 위선자들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인용해 본다.
“우리는 악당을 잡으면 세상이 좋아진다고 믿지만 실제로 세상에는 악당과 그 악당을 손가락질하면서 그 상황을 통해서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위선자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악당과 위선자 사이에서 국민은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한국의 한참은 잘못 가도 잘못 가고 있는 부동산 이야기 말고도, 정말 인류의 삶에서 공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주는 많은 사례들과 아이디어들이 등장해서 유익하고 흥미로웠다. 그가 제시한 공간의 미래에 대한 제안들도 상당 부분 공감이 가고 또한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다. 특히 도시 속 공원 조성의 중요성, 그리고 건축이나 도시 디자인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잘 이야기되어 좋았던 것 같다.
다만 K-Pop 에 대해 잠시 언급하신 것에 대해서는 약간 이견이 있긴 했지만.. 건축계에서 재능 기부나 자문 구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 부분은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케이팝이 흥한 것이 돈을 많이 버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서 인재가 몰린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얼마 전 기자와 케이팝 같은 K-이미지메이킹 산업의 부패와 전지구적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 한 게 생각나기도 하고.. 그리고 건축계에 존재하는 재능 착취, 자문 채집, 지적 재산권이나 저작권 침해 문제 등은 사실 한국의 다른 영역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들이다.
그냥 책을 읽으며 한국에 그래도 이런 분이 있구나 하는, 아주 조금은 자라난 희망을 가지게 되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