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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Sep 23. 2023

나 참 잘 살았구나

#10 

에덴버러. 내가 사랑하는 곳.

약 4개월정도 거주했던 곳이다.


이상하게 에덴버러는 올 때마다 집에 돌아온 기분이 드는데 항상 도착하기 전까지는 런던이 내 사랑인 줄 착각하고 있다가 도착할 때마다 진짜 찐 사랑을 찾은 듯한 기분을 주는 곳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와 학자, 철학자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 도시.


도착하자마자 내 가슴 속에서 사랑이 넘쳐 흘렀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사진을 찍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냐는 엄마의 답장에 내년에는 꼭 엄마와 함께 오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곳이었다.


가장 유명한 로얄 마일을 걸으면서 내가 왜 이토록 에덴버러를 좋아하나 생각해봤더니 물론 도시를 이루는 오래된 건물과 자연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결국은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에덴버러 구석구석에는 추억이 많다. 한 때 운명이라고 여겼던 옛 사랑을 처음 만났던 곳이 에덴버러였고 지금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한 친구도 에덴버러에서 만났다. 첫 이야기를 완성했던 곳도 에덴버러였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휴학을 하기로 결심했던 곳도 낙담하고 그날 바로 일자리를 찾았던 곳도 에덴버러였다. 나에게는 첫 사랑이자 현 사랑 같은 에덴버러. 어느 골목이든 추억이 서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과거의 기억이, 그 기억을 함께 해준 사람들 덕분에 에덴버러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결국 나에게 모든 여행지는 그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로 귀결된다.


20대초부터 난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여행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게으르고 가난했던 20대의 나는 '카우치서핑'이라는 여행 커뮤니티를 활발하게 이용해 여행을 했다. '카우치서핑'은 이를테면 페이스북과 에어비엔비를 합쳐놓은 곳이랄까? 페이스북처럼 각 여행지 페이지가 있고 에어비엔비처럼 날짜와 장소를 정할 수 있고 그 여행지에 사는 사람들에게 숙박 및 meet-up을 물어볼 수 있다. 대신 에어비엔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내지 않는 공짜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한창 이용하던 10여년 쯤에는 (2019년에 멕시코 여행할 때도 사용했었다!) 꽤 괜찮았다.


카우치서핑으로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이 좋아하는 카페와 식당을 가고 현지 문화를 배웠다. 그 후 '세계 곳곳에 사는 친구들을 사귀어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여행하겠다'는 꿈이 이뤄져 지금은 이용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여행하는 방법은 어느 도시든 현지인들의 집에 공짜로 투숙하는 형태이다.


이번 영국 여행이 100% 친구들 투숙으로만 계획되어있는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잊고 지내다가 가끔 친구들이 날 위해 모든 일정을 조정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 참 잘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늘은 좀 색다른 방식으로 그걸 깨달았는데, 친구네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여행 계획을 전적으로 수정하게 됐다. 원래는 2주 동안 스페인을 갈 계획이었는데 6주라는 한정된 여행 기간동안 스페인을 오고 가는 것도 그렇고 영국 여기 저기에 만나고 싶은 친구들이 있고 책 이벤트도 준비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스페인 여기저기에 만나고 싶은 친구들도 있고 이왕 가는 거 길게 가고 싶으니, 이번에는 6주동안 온전히 영국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책 이벤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자고 결정했다. 


결정하자마자, 다음 주말, 스페인에서 만나기로 했던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에게 바로 연락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보기로 하고 나를 재워주기로 했던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스페인에서 만나기로 했던 친구는 그럼 영국으로 오겠다고 얘기했고 (이탈리아에 있는 친구도 영국으로 오겠다고 했었다) 날 재워주겠다는 친구들은 괜찮다고 오히려 길게 있어서 좋다고 얘기를 했다. 내가 어디 있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준다는 친구들, 일정이 바뀌어도 흔쾌히 괜찮다고 한 친구들을 보며 '와, 나 인생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나서 오늘 오후에 했던 행동은 친구들에게 직접 책 행사를 하고 싶으니 주변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 달라고 연락을 돌렸고 (1.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걸 어려워 한다. 2. 특히 아는 사람한테 도움을 청하는 걸 어려워 한다. 그래서 며칠 동안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고 미뤄왔던 일이었다.) 


"너는 나의 영감이야. 너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가 뭐든 도울게"

"당연하지! 주변에 물어볼게."

"바로 책 사서 사인 받아야지"

"와 대단하다."


'도움을 청하면 안돼',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목적 있게 연락하면 그건 이기적인 거야' 등 머릿속에서 저절로 올라오는 내면의 비평가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따뜻하고 영감이 되는 연락을 받았다. 뭐든 말하면 된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내가 책 행사를 하고 싶으니 주변에 물어봐줄래 했을 때 흔쾌히 주변에 물어봐 볼게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 참 잘 살았구나

다시 한 번 인정하게 됐다.


오늘은 두 번째 독자와의 만남도 진행했는데 하면서도 조금 멋쩍은 게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는 상대는 '너 대단하다', '와 완전 영감이 되는데'라고 했지만, 쑥스럽기도 하고 그 이야기가 완전히 와닿지 않았었다. 왜 그런가 들여다보니 오랫동안 나는 내 자신의 가혹한 비평가였고 그래서 내 책들/이야기/내가 만든 무엇이든 인정을 해주지 않는 습관이 있었던 게 보였다. 보이자마자, 두 번째 독자 앞에서 과거에는 그랬는데, 그래서 지금도 조금 쑥스럽고 내가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편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나를 인정하고 내가 한 노력의 결과를 인정한다고 나를 충분히 인정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내 삶, 내 행동의 결과를 인정해주는 나란 사람이란.

내가 봐도 참 많이 컸다.


에덴버러에서 날 재워주는 비키와 스캇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시간이 나면 다음에 적어보도록 하겠다.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11일째입니다.

남은 한달+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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