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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Sep 24. 2023

4년 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12 부탁을 잘 못합니다. + 비키와 스캇의 이야기 일부

독자와의 만남을 서점, 도서관에서만 한정짓지 않고 게릴라 형식으로 하기로 마음 먹자, 마음이 가벼워진 동시에 바빠졌다. 이제 5주가 안되는 시간동안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니 내가 가진 무기, 즉 내가 아는 사람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차피 친구들을 만나는 거, 어차피 그동안의 일들을 업데이트를 할 거 북 콘서트를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쭈뼛거리며 한 명 한 명 연락을 돌렸다.


특히나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못하는 나는 부탁하려고 연락하는 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락을 돌려 북 콘서트를 친구와 친구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대단한 도전이었다.


전 글에서 썼듯이 너무나 감사하게 긍정적인 답변들이 돌아왔고 (물론 네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만나서 설명을 좀 해달라 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전에 일하던 곳에서는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연을, 어쩌면 지역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재밌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물어보기 전에는 혼자 끙끙 앓고 있었는데 물어보니 길이 열렸다!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이 서로가 연결되어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사람들도 떠올랐는데 10년 전 네덜란드에서 살 때 패기 있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만났던 노벨상 수상자. 알고 보니 그 때 갔던 그의 동네가 내가 한창 대학원을 다니고 일하던 직장의 동네였다는 걸 지난주에 깨달았다. 전에 보내던 메일로 만나고 싶다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지만, 그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지 반송 메일이 왔고 트위터부터 구글 검색까지 해봤지만, 그의 이메일을 찾을 수 없었다. 꼭 만나고 싶은데, 적어도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내일 스코틀랜드 동부의 한 도시에 친구를 보러 가는데 그곳에 있는 두 곳의 서점에서 연락이 왔다. 결론적으로 두 서점 모두 이벤트를 호스팅할 수 없다는 메일이었는데 한 곳에서는 차 마시러 놀러 오라고 했고 한 곳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완전 빠른 답장을 보내줬다. 작은 도시에 여러 곳의 서점이 있는데 과연 어떤 도시일지 궁금했다!


덧붙여 친구는 4년동안 어떻게 살았을지 어쩌다 그 도시에 있게 됐는지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기쁘다.


오늘 비키와 시내를 돌아다니며 부동산도 좀 돌아봤는데 살고 싶은 집 값이 서울에 비하면 싸다! 물론 통장에 그 돈은 없지만, 내가 원하면 어떻게든 이 곳에서 집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무한 긍정의 가능성이 보였다.


파머스 마켓도 갔는데 환경 단체가 한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고 나도 거기서 책을 팔아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컬은 아니지만, 오늘만 로컬이라고 홍보하면서. 


이번 여행에서 친구들의 몰랐던 것을 배우고 있다. 비키와 스캇의 삶도 배우고 두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도 듣고 있다. 둘 다 배려심이 엄청 강한데 그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두 사람은 비키가 23살, 스캇이 24살 때 라틴 아메리카를 나가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며 1년동안 살았다고 했고 내가 영국을 떠나 멕시코로 이주 했을 때 같은 시기에 영국을 떠나 멕시코로 이주했고 코로나가 터졌을 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비키는 학창 시절 무려 9번이나 전학을 다녔다고 했는데 그 중 일 년은 호주에서 지냈다고 했다. 그 전에도 원래 조용했지만, 청소년기 잦은 전학으로 자긴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걸 선택했다고 했다. 자신은 조용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비키는 내성적이긴 하지만, 필요하면 할 말을 하는 사람이다. 스캇도 내성적인 것 같은데 수줍음은 없는 것 같고 독특한 유머로 사람들을 무장 해제 시킨다.


대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나, 10년 연애하고 팬더믹 때 Civil marriage를 한 두 사람은 결혼 한지 2년 차 부부이다. 두 사람 다 결혼 제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사돈' 이라고 부르고 싶은 양가의 어른들을 고려하기도 할 겸 팬더믹 때 가족들끼리 모이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할 겸 Civil marriage를 결정했다고 했다. 마침 그 때가 처음으로 스코틀랜드에서 Civil marrige 제도가 시작 됐을 때였다. 내 주변에 특히 영국 친구들 사이에서 Civil marrige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기 연애를 했던 비키와 스캇에게 결혼 전 후 다른 게 있냐고 물어보니까 전혀 없다고 스캇은 심지어 세금 혜택도 없다고 말하며 농담 80%로 괜히 했다고 말했다. 비키는 자기는 생각보다 안정성이 삶에 중요했던 것 같다면서 결혼하고 집을 사고 공무원으로 일하게 된 일련의 과정에서 왠지 모를 반가운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박사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면서 무시무시한 학업의 세계로 다시 뛰어든 이유라고 얘기했다. (결혼하면 박사를 한다고? 말도 안돼!)


북 콘서트를 하면서 창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올해 안에 배우고 싶은 게 있냐고 묻자, 비키는 키보드라고 대답했다. 스캇과 스캇의 동생은 기타, 베이스, 트럼펫을 연주 할 수 있어서 비키만 음악을 할 줄 알면 가족 밴드를 결성할 수 있다고 했다. 콘서트를 하게 되면 내가 맨 첫 줄에 가기로 했다.


케빈한테도 물어봤던 현재 머릿속에 있는 가장 중요한 이슈를 묻자,


스캇은 "Death 죽음"라고 답했고 비키는 10월 15일에 멕시코를 가는데 지금은 가장 그게 크다고 했다. 갔다 돌아오면 아무 계획이 없다면서 일단은 멕시코를 갔다 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죽는다면,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을 묻자, 스캇은 단번에 "Good riddance"라고 대답했다.

번역하자면 ‘잘 갔지 뭐야!’ 정도. 이 얘기하자 Vicky가 너무 시니컬하다면서 보통의 파트너가 하는 코멘트를 궁시렁거렸다. 반대로 비키는 나무와 씨앗을 더 심겠다며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 의 명언을 빌린 듯한 말을 했다.


참고로 스캇은 내가 오기 며칠 전 9월 20일에 33번째 생일을 맞이 했다. 농담을 무지 좋아하는 친구인데 – 런던에 있는 동생과 FIFA 게임을 하는 걸 ‘국제 회의’라고 칭하고 33번째 생일을 맞이한 기분이 어떻냐는 말에 더 지혜로워졌다고 인터뷰에 ‘the wise man’이라고 불리길 원했다. 뭐든 답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오늘의 저녁 메뉴가 뭐가 좋겠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오늘 몸이 무겁고 힘든 게 감기가 슬금슬금 오는 것 같다. 일단 잘 자고 내일을 맞이하려 한다. 내일은 세인트 앤드류에서 앤드류라는 친구 인터뷰와 서점 투어를 할 예정이다.


To be continued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12일째입니다.

남은 한달+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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