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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Sep 26. 2023

천사들만 있는 책방

14. 할까 말까 할 때는 무조건 하자!

세인트 루이스에서의 이튿날. 7시부터 자다깨다하다 결국 9시 조금 넘어서 기상했다. 어제는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노트북을 품에 안은 채로 졸다가 기록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했다.


문제는 다 하고 싶은 욕심. 내 생애 체력이 가장 낮은 시점인데다가 놀고 싶고 자기 싫은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니니, 몸이 버티질 못한다. 게다가 심한 몸살 감기까지 걸려버렸다. 에덴버러에 있던 친구한테 옮은 건진 모르겠지만, 잠을 적게 자고 많은 걸 해온데다가 일교차까지 심해 뭐든 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체력과 여유를 동시에 가져갈 생각으로 일어나서 제일 먼저 산책을 하고 있다. 마침 세인트 루이스에 묵은 친구의 집이 바로 공원 옆에 있어서 산책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었다. 산책을 하다보면 무슨 문제든 간단해지고 잘 보인다. 며칠 전 비키 네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면서 스페인을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듯이 오늘은 앞으로 내 하루를 더 비우고 대신 더 집중하기로 했다. 덧붙여 어제가 떠오르면서 무얼 해야할 지 알았다.


세인트 루이스에는 친구를 보고 게릴라 북 콘서트를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한 서점과 연결 되기 위함이었는데, 서점 매니저가 이번에는 행사를 기획할 수는 없지만, 차를 마시러 들리라는 메일에 혹해 사실상 세인트 루이스에 오게 됐다.


그래서 지난 저녁 서점에 들렸는데 나와 메일을 주고 받던 매니저는 휴가를 가, 이번주 목요일에야 돌아온다고 했다 (당시는 일요일). 당황한 나머지 나는 그러냐고 대답하고 서점을 둘러보다가 그냥 나왔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나온 게 너무 속상했다. 뭔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느낌. 이럴 때는 다시 가서 말이라도 다시 붙여봐야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막상 간다면 가서 무슨 말을 할지, 무슨 의도로 가는지, 나는 오늘 이곳을 떠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별별 생각이 올라왔다.


이 모든 혼란을 나누니, 고민하는 나를 보고 지금까지 이미 준비 다 했다며 그걸 대화하라고 막히는 게 정상이라고 말해준 코치님.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떠듬거리면서라도 말하고 오라고 했다.  


가겠다고 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이건 꼭 가야한다는 표시였다. 하기로 한 걸 한 다, 그냥 한다. 하지 않기로 한 걸 하지 않는다, 그냥 하지 않는다.


어제 일대일 북 콘서트를 할 때도 뒤로 빼고 하지 않으려는 나를 봤던 게 스쳐지나갔다. 


그냥 미친 척하고 가야지. 마지막인 것처럼 다 보여주고 와야지!!!!!! 하고 갔지만, 서점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에도 들어가는 게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래도 하겠다고 했고 하겠다고 한 걸 하기로 했다.


들어가서 가장 먼저 보이는 사람에게 어제 서점에 북이벤트 관련해서 OOO을 만나러 왔었다. 라고 하니까 매니저라며 언제 오는지 확인해줄까? 라고 물었다. 


그래서 난, 어제 물어보니 그는 휴가를 떠났고 목요일쯤에 돌아온다고 들었다. 난 한국에서 온 작가이고 지난주에 책이 막 나왔다. 6주 정도 영국에 있는데 북이벤트 관련해서 연락을 했었고 매니저는 휴가를 가고 없지만 내가 있는 동안 북이벤트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조언을 구하러 왔다. 


라고 하니까 상대는 내 말을 멈추더니 축하한다고 이건 큰일이라고 말했다. 훈남상인 남자분이 사람 좋은 얼굴로 큰 미소를 보이며 웃으니 긴장하며 들어갔던 내가 잠깐 당황했던 것 같다.


진심을 다해 기뻐해주고 축하해줘서 내가 한 일에 대해 다시 인지하게 됐고 인지하게 해줘서 또 고마웠다. 사실 작지 않은 일인데 작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고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부 매니저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일을 한 지 3주 밖에 되지 않아 잘 모른다며 책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책 이름을 알려주며 이 책은 9세 이상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고 우리가 읽은 모든 글이 우주에 있는 한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컨셉을 담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책 이름을 받아 적더니 

이건 자신을 위한 메모라고 웃으면서 꼭 찾아서 읽어보겠다고 했다. (아니 이런 천사가!)


그리고 이벤트에 관한 건 매니저가 제일 잘 알지만 매니저가 없을 때는 부매니저가 담당이라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책을 서점에 들여오는 것도 논의할 수 있을 거라고. 


계산대 뒤에 엄청 바빠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그때도 '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단 하기로 했으니까, 말을 꺼냈으니까 그냥 도망가지 않고 있었다. 그녀에게 차분히 매니저와 연락하던 걸 설명하면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하니, 부매니저는 자신이 지금 책이 75권이 막 도착해서 정신없어서 그런데 5분만 기다려 줄 수 있겠냐고 차를 마실래 라고 물었다. 그러겠다고, 괜찮다고 했다.  


그 뒤에 있는 책장이 모두 판타지 섹션이여서 둘러보고 있었는데 한 젊은 남자가 오더니 차를 마실 거냐고 커피를 마실 거냐고 물었다. 차를 달라고 하니, 차를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시가 있는 방으로 가, 앉았다.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글을 적기도 하고 차를 마시면서 그냥 있는 그 순간을 즐기기도 하고 그 방에 들어온 미국인 남자 아이들의 자존심 섞인 대화를 몰래 듣기를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부매니저가 미안하다며 왔다.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시간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는 작가이고, 지난주에 책이 나왔고, 6주동안 영국에 있다. 있는 동안 독자들을 만나고 싶어서 연락을 했다.' 등을 차분히 설명했고, 이미 너네 매니저가  9/10월 일정이 다 차있다고 말했다. 그건 알지만, 이왕 와있는 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왔다. 


부매니저는 듣더니, 번역된 첫 책이냐고 묻고 축하하다고 말했다.  제가 좋은 사람처럼 보여서 (이건 무슨 뜻이지요???)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이번에는 4~5주가 이벤트로 꽉 차있다고 말했다. 몰랐던 사실 한 가지. 9~10월은 출간으로 바쁜 시기라고 했다. 지금이 크리스마스 전에 책이 나오는 출간 시즌이라고 했다. 


나는 이번을 시작으로 내년에도 또 오면 된다고 이번 6주동안 뭔가를 하면 좋겠지만 안되면 내년에도 또 오면 되고 내년에 한국에서 책이 나온다고 말하니 내일 에덴버러 서점에서 저녁 때 영국에서 유명한 영어덜트 어린이 판타지 작가들의 패널 이벤트가 있다고 거기에 연락해서 연결해주겠다고 했다. 


아니 이런 우연이!!!!!!!!


패널 이벤트 가서 번역부터 어떻게 영국 마켓에서 크게 되는지 물어보고 작가들이랑 네트워킹 하고 오라고 했다. 아직 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방법은 있다면서 연락 해보겠다고 했다. 언제든 궁금한 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메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마침 자신은 영어덜트 판타지, 어린이 섹션 담당자라며 계속 주시하겠다고 책 이름이랑 내 이름, 연락처 등을 적어갔다.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 집에 와서 보니 어떻게 찾았는지 인스타그램도 팔로우했더라. 고마웠다. (두번째 천사와의 만남) 


마침 영어덜트 판타지 담당이라고 하니 책을 좀 추천 해달라고 하자, 아주 행복한 얼굴로 책을 4권 추천해줬다. 추천 받은 책과 줄리아를 기다리면서 봤던 책까지 총 다섯 권을 가져오고 싶었지만, 이미 가방은 반 이상이 책으로 차 있고 아직 배낭을 메고 돌아다닐 시간이 남아있기에 몇 번이나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대고 서점을 나왔다. 


어떻게 해서 커리어를 바꿨는지 이야기를 나눴고 한국에서 출판하는 게 어렵냐 쉽냐를 물어서 여기 보다는 빠른데 소설/판타지 시장은 영어권에 비해서는 작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한국 시장은 어떻고 현실은 어떻고 이런 내용보다는 내 포부, 내 꿈, 나는 어떤 판타지를 쓰고 있고 쓸 것이고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나눠야겠다고 느꼈다. 


부매니저가 알려준 대로 에덴버러에 있는 북스토어에 전화를 했고 이메일도 같이 보내놨다. 작가들 네트워킹 시간있으면 가도 되냐고 물었고 북 이벤트 계획하고 있는 것과 정보까지 같이 보냈다.




중간 점검:


이미 10월에 런던 지역과 대학, 서점에서 책 강연회 / 독자와의 만남 행사가 잡혔다! 발표 준비를 시작하자.

앞으로는 영국 팟캐스트와 유튜브다! 일단 30군데 영국 팟캐스트와 14군데 유튜브에 메일을 보냈다. 



오늘의 요약:


1. 서점에 가기 싫었지만, 결론적으로 가길 잘했다! 할까말까 할 땐 무조건 하자. 


2.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짜자.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1시간 더 여유를 주고 엑티비티 사이마다 1시간씩 여유를 주자. 다하려고 하는 거, 다 하지 못해 죄책감을 갖고 끌려가는 느낌을 받는 거 이번에 다 버리고 가자.

정해진 시간에 하지 못하면 없는 걸로 하자. 여유 시간이 더 확보될수록, 글을 쓰기가 더 좋다. 아니면 기록도 없고 브런치도, 책도 없다. 한 액티비티가 끝나고 충분히 기록할 시간을 나에게 주자. 그자리에서 바로 노트북을 꺼내고 앉아서 쓸 수 있게 준비하자.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짜고 하기로 한 걸 하는 지금의 도전은 매일 6시간 글쓰기 규칙처럼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도전이다. 이걸 확실히 이번에 잡고 가자!


3. 매일 아침을 먹고 산책을 갔다 오자.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14일째입니다.

남은 한달+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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