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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Sep 28. 2023

어린이 독자들 앞에서 책을 홍보하기

#16 이런 내가 더 부끄러운 걸

세인트 앤드류에 한 책방에서 만난 인연으로 에덴버러 서점과 연결되어 오래 전에 매진된 책 행사를 무료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어제 적었어야 하지만... 책 행사 후 글라스코로 이동 후 4년 만에 만난 친구 부부와 약간의 캐칭업을 하고 저질 체력의 난 뻗어버렸고... 저질 체력을 보완하고 깊이 있는 에세이를 쓰고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책을 나가겠다고 당당히 친구들 앞에 선언했으나 일어나자마자 4년동안 탄생한 친구 부부의 아이들, 씨씨와 토론과 친해지겠다고 고군분투하느랴 (라고 쓰고 귀찮다며 미뤘다고 읽는다) 체력 보강은커녕 기록을 하지 못했다.


오늘은 기필코 하겠다 + 한 줄이라도 올리겠다며 당당히 틈틈이 노트북을 꺼내 앉았으나, 3명의 아이들이 집 안에 있고 나도 아이들도 워낙 사람에 관해 호기심이 많아 번번이 기록하기를 실패했다 (사실 글 쓰기 바로 직전까지 세상에 재밌는 일들 천지다).


이유를 따라가다보니 무엇을 하고 언제하고를 정하지 않았다.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겠다고 했지만, 너무 자동값으로 매일매일 남이 결정해주는 삶을 살려고 하는 내가 보였다. 오랜만에 친구네집에 왔으니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세요, 누가 나에게 나 대신 말해줬으면 했다. 어디든 누구의 집에 있든 지금까지는 상대에 맞추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정한 스케줄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내 코에 걸어놓은 고삐를 내가 풀어주자. 이번주 아주 심플한 스케줄을 짜봤다.


7~8 산책 및 아침

8~9 기록

9~11 북콘서트 관련 연락

21~23 기록
 

지금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고 내일 아침 산책이 기다리지만,

오늘 처음으로 6살 이하의 어린이들 넷 앞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했기에 그 부분을 꼭 남기고 싶었다.



친구 카멜리아에게 이미 어린 독자들을 대상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싶다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나의 문제는 하고 싶고 그래서 여기저기 메일을 보내고 친구들에게 독자와의 만남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었지만 (1) 부탁하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아주아주 불편하고 (2) 멍석을 깔아주면 또 부끄러워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굉장한 외향인이기 때문에 다들 내가 부끄럽다고, 물어보는 게 어렵다고 하면 눈을 크게 뜨면서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물어볼 기회가 올 때마다 (우연히 현지 도서관을 가고, 이벤트를 하게 장소를 빌려주는 커뮤니티 센터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 속으로는 '말해야 하는데, 당당하게 이벤트 할 수 있냐고 물어봐야 하는데, 용기를 내야 하는데, 아아아아 불편해, 왜 용기가 없는거지, 뭐하는 거야?' 등의 이야기가 마구 돌아갔지만, 오늘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물어보지 않아도, 굳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불편함을 사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지금 주어진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 나를 성장시키는 나침반 같은 불편한 느낌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죄책감? 등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진짜 기회는 친구 두 명과 그들의 아이들과 카페에 가서 일어났다. 카멜리아가, '지금 한 번 해봐'라며 자리를 마련해줬고 키라, 씨씨 (4), 토론 (2),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여자 아이까지 총 4명의 어린이와 2명의 어른들 앞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갖게 됐다. 


처음에 자리가 생기자마자, 헉, 어떻게 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지만 너무 자동값으로 하기 싫다, 불편하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아직 이 나이 아이들한테 안해봤는데’ 쭈뼛거리면서 책에 관해 설명하고 있고, 아이들이 읽어달라고 소리쳤을 때 ‘헐 나 읽는 거 못하는데’, ‘재밌게 못읽는데’ 하는 등의 생각이 또 자동값으로 올라왔고 막상 읽으면서는 ‘재미 없는 거 아냐?’, ‘애들이 듣고 있는 거야?’, ‘이 단어 제대로 못 읽었네' '발음 참…' '샬롯이 나 잘 못읽는다고 판단하면 어쩌지', '샬롯이 책이 재미 없다고 평가하면 어쩌지', '내가 제대로 읽고는 읽는 건가',  '또 잘못 읽었어. 난독증있는데’ 등의 염려와 이야기로 내 머릿속이 가득 찼다. 심지어 읽으면서도 샬롯한테 ‘나 처음 읽는 건데’, ‘나 잘 못읽는데’ 하는 등의 부연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면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나, 남을 눈치 보는 내가 올라왔다. 애들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 같으면 멈춰서 책을 덮었는데 그때마다 애들이 계속 읽어 달라고 해서 이상해하면서 계속 읽어주고 멈추기를 4번쯤 반복했다. 이 경험으로 내가 말을 하거나 발표할 때 청중의 반응을 살피고 그것에 내 발표를 의존하고 있구나를 발견했다. 아직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할 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레슨이었다. 


어느정도 읽고 책을 덮자, 씨씨와 키라가 정말 좋은 책이다, 재밌다, 라며 얘기했다. 바로 듣자 마자 기분이 좋았고, 씨씨가 상냥하고 천사같은 목소리로 여러번 반복해서 말해서 정말 이 아이들이 알고 말하는 건가, 그냥 기분좋으라고 말하는 건가 하는 나만의 염려의 목소리가 올라왔지만,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입기로 했다. 독자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처음이기 때문이 부족했고 또 처음이기 때문에 배운 게 많았다. 아이들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인정하고 기뻐할 뿐이다. 평가는 다 내 머릿속에 있다. 누구랑 얘기해도 툭 튀어나올 수 있게 얘기가 나오게 준비하자. 책을 소리내서 읽는 연습하자.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오늘이 끝날쯤 샬롯과 카멜리아와의 대화에서 나의 뇌파와 행동, 생각 방식은 4살짜리 아이들과 꽤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고나니 왜 난 아이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는지부터 어린이 소설을 쓰는지 다시 한 번 이해가 갔다. 아빠한테도 잘 안기지 않는다는 토론이 몇 번이나 날 안아주고 씨씨와는 이미 좋은 친구가 된 것 같다.


이 아이들과 이번 주말까지 함께 할 예정이고 주말에는 더 많고 9살 이후의 어린이들과 만날 예정이다. 두 번째 어린이 독자와의 만남은 내가 주도해서 당당하게 하게 매일 조금씩 연습하자.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16일째입니다.

남은 한달+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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