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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Sep 30. 2023

친구 보러 왔다가 결혼과 육아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다

#17 무한 포옹을 할 수 있다니 아이를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스코틀랜드에 오게 된 이유는 카멜리아 (캄, 39) 라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다. 카멜리아는 나의 영국 생활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내 삶에 의미 있는 친구이기도 했는데 못 본 4년의 시간동안 글라스코에 집을 사고 두 명의 아이들 낳았다. (남편의 이름은 애론 (38), 첫 째는 씨씨 (4), 둘 째는 토론 (2))


내가 사랑하는 커플의 집에 묵으며 결혼과 현실 육아를 24시간 넘게 경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과 육아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과 어울릴수록 점점 나는 아이들과 비슷한 사고 방식을 가진 어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나 어린 아이든 나는 그들과 다툴 수 있고 (그렇다고 진짜 다퉜다는 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놀 수 있으며, 그들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하루가 가기 전에 가족에게도 포옹을 하지 않는다는 두 살짜리 토론으로부터 포옹을 받게 됐다. 네 살짜리 씨씨가 함께 자고 싶어하는 메이트이기도 하고 씨씨와 토론의 친구인 4 살짜리 엘레나와 한 살짜리 아리아나와 춤추고 놀았다. 카멜리아와 애론이 날 셋 째로 입양할 거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했고.


어제 있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두 가지 일.


하나는 씨씨, 토론, 카멜리아와 산책을 나간 것. 자연스럽게 어린 토론이 카멜리아에게 안기자, 씨씨는 고사리 같은 손을 뻗어 나에게 건넸다. 우린 산책을 하며 서로가 좋아하는 나뭇잎을 모으기도 하고 균형 잡는 걸 도와줬다. 씨씨는 앞으로 달려가다가도 다시 돌아와 나에게 손을 건넸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일어난 일. 많은 서양권 사람들, 특히 영어권 사람들은 내 이름을 발음하는 걸 어려워한다. 그럼에도 어제 씨씨와 토론 모두 내 이름을 완벽하게 불렀다. (흑, 감동) 이게 바로 ‘엄마’, ‘아빠’를 처음 외쳤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일까?


카멜리아와 애론과 함께 자러 간 씨씨가 그들에게 내 이름을 다시 확인하더니 집이 떠나가라 내 이름을 외쳐댔다.가보니 씨씨, 투론, 카멜리아와 애론은 자기 전에 하는 루틴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씨씨가 내 무릎에 앉자, 자기 전 의식이 시작됐다.


바하이인 카멜리아와 애론은 첫 번째로 바하이 기도 노래를 부르고 오늘 어깨를 다친 삼촌을 위해 기도를 했다. 그리고 책을 골라 읽었다. 애론이 중간 중간 멈추면 씨씨는 그 다음 단어를 맞췄다. 책 읽기를 마치자, 씨씨는 나도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했고 나는 씨씨가 한국에 있는 우리 집에 오면 내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했다. 씨씨는 자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네 부모님이 알아 그러니까 그들이 한국에 와 본적 없다고 했고 그래도 그들은 알거라고 하니까 씨씨는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카멜리아의 가족은 안고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게 익숙지 않다고 했다. 카멜리아는 매우 수줍은 아이였는데 카멜리아의 엄마가 크면서 자신을 계속 친구들과 말을 하고 외향적으로 어울리게 했다고.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익숙해졌긴 한데 안고 그러는 건 쉽지 않다고. 근데 씨씨의 경우는 계속 엄마를 안아야 하고 만져야 해서 자신에게는 자신의 엄마처럼 자신에게 성장과 동시에 도전을 주는 인물이라고 했다. 두 살짜리 토론은 혼자자지만 네 살짜리 씨씨는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서 잔 적이 없다. 자면서도 계속 옆에 누가 있는지 만지고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카멜리아와 애론은 이런 씨씨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신체 접촉을 좋아하는 나는 나와 비슷한 씨씨를 보면서 저런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단지 나의 몸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는 이유로 나를 찾고 나를 만지고 싶고 나의 포옹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있다면? 나로써는 씨씨의 존재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아이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정말 나에게는 혁신이다. 언젠가 아이를 갖고 싶긴 했지만, 단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난 아이를 갖는 건 '현재' 내 커리어와 삶에 큰 방해가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아이를 가진 친구들의 이야기로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물론 육아에 포옹만이 다가 아니겠지만 말이다.


씨씨와 토론은 ‘내 것’이라는 것이 확실하고 내 것을 침범하는 걸 무지 싫어하는 아이들이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에 떼를 쓰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사랑스럽다.


카멜리아의 아버지가 40살, 어머니가 20대 후반 (28?)일 때 카멜리아를 가졌다고 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엄청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지금 자신의 나이가 39세라며 지금 셋 째를 가지면 아버지가 자신을 가졌을 때와 비슷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 삼형제였기 때문에 세 명을 가지고 싶었고 씨씨가 태어났을 때까지는 에너지가 있어서 그러고 싶었지만, 토론이 태어나고 지금은 셋을 가질 에너지가 없다고. 일단은 자신의 활기가 먼저라고 했다. 


카멜리아가 먼저 자러 들어가고 애론과 남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씨씨가 생기고 씨씨와 같이 자면서 카멜리아와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항상 자신들 사이에 씨씨가 자고 자신이 카멜리아를 포옹할라치면 씨씨와 토론이 ‘엄마’ 하면서 덤벼든다고. 그나마 2달 전에 골프를 치러 갔고 4주 전에 영화를 보는 등 저녁 데이트를 최근에 시작했다고 얘기했다. 한 달에 한 번, 세 시간의 데이트라. 같이 사는 데 대화는 온통 아이들한테 있었던 일이라며 행복하지만 동시에 아쉽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자 아이를 키우는 것을 삶의 커다란 로망으로 가진 내 파트너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반응할까 싶었다. 여전히 아이를 갖고 싶어할까? (그도 나처럼 신체적 접촉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근데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자긴 아이와 매일 같이 잘 거라고.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질투심이 든다면 이상한 걸까?) 


내가 캄과 애론을 만났을 때, 그들은 33살, 32살이었다. 그때 나는 둘 다 모든 걸 다 아는 사람들처럼 커보였다. 


애론은 2007년에 경영학 졸업을 하고 2008년 아일랜드에 대공항이 와, 6명의 밴드 친구들과 런던으로 작은 벤을 타고 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6개월 일하게 된 건설업이 지금의 커리어가 되었다고. 연애를 하고 간을 보고 하던 게 질리던 참에 캄을 만났다고 했다. 애론이 처음 캄을 만났을 때 빠지긴 했지만 자기가 봤던 캄은 완전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자신이 캄에 대한 감정과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분명한데 캄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푸시를 하지 않았다면 남남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결국 두 사람은 만나기로 한 지 얼마 안돼 약혼하고 결혼하고 허니문 후 1년 8개월 뒤에 씨씨를 갖고. 그 당시 나는 캄과 애론에 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있었다. 나도 캄도 같이 공부했던 모든 친구들도 모두 삶의 길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수선했지만, 우린 그냥 그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그런지 몰랐다. 그런 속에서 나는 캄이 모든 걸 다 알고 이미 중심이 잡혔는 줄 알았다. 근데 왠걸 뒤를 돌아보니 그때 애론도 캄도 나도 우린 참 많이 길을 잃었었다. 


길을 잃고 헤메던 20대의 나에게 감사하다. 애론은 나이 드는 게 좋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20대가 아니라서 30대라서 너무 다행이다. 나의 40대, 50대, 60대가 기다려진다. 


자기 전에 하는 의식을 어떻게 결정했냐고 카멜리아와 애론에게 물었다. 두 사람 다 (카멜리아는 바하이 가정에서 애론은 가톨릭 가정에서)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라 자기 전에 기도를 하는 게 당연했다고 했다. 나는 그게 전혀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는데 만약 내가 아이를 가지고 가정을 꾸린다면 가족 의식을 만드는 게 좋을 듯 하다. 교가처럼 ㅎㅎ 우리 집 노래를 만들어서 자기 전에 부르고 자고. 책도 읽고. 일어나서도 무언가를 하는 걸로. 아이들에게 자신들만의 루틴과 의식을 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며칠 카멜리아와 아이들과 있으면서 우리 부모님이 참 나와 내 동생들을 잘 키웠다는 걸 느낀다. 내 기억으로 부모님은 내가 뭘하든 항상 지지해 주셨고 그 결과 오늘의 내가 있다. 시간을 내서 편지를 써서 부모님께 써써 보내는 걸로! 마침 추석이기도 하다.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 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18일째입니다.

남은 한달+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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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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