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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Oct 05. 2023

작심 30분: 띵동, 주문하신 좌절 왔습니다

#23 난 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망각의 존재였다.

내가 가장 중요한 것에 시간을 쏟는다고 하고 그걸 지킨다고 했는데, 하루가 가기가 무섭게, 전화를 한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의지가 약해서 그래’, ‘정신을 아직 못 차렸어’라며 나를 책망하지만, 그건 안 하려고 또 쉽게 빠져나가려는 수법이다. 너무 자동적으로 올라와서 그 뒤에 숨으면서도 내가 그 뒤에 숨는지 모르는 수법. 내가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나와의 약속은 잘 지키지 않는다는 걸 봤다. 나와의 약속일수록 더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고 있다, 잘 굴러가지 않고 있다를 봤다. 이것도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영역인데 나와의 약속 부분에서 잘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어제 너무 잘했고 오늘은 그대로만 하자고 다짐했건만, 12시가 되어도 친구 대니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어제 약속했던 예정했던 시간 (12~3시 리스트 업 및 메일 보내기, 9시 30분~10시 정리 및 질문, 10시~1시 글쓰기)으로는 전화를 끊고 메일 보낼 곳을 리스트업 해야하는데 결국 전화를 12시 40분쯤 되서야 끊었다.


그러고나서는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게 너무 좋았다, 내가 1시간 더 일찍 일어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등등 자기 합리화의 세계로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게 빠져들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어제 시간을 지킨다고 두 번의 통화에 걸쳐 다짐했는데 벌써 오늘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합리화를 하고 당당하게 시간을 못 지키고 뒤로 미룬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걸 보고 진짜 조심하고 더욱더 인지를 해야겠구나’라고 느꼈다. 


아, 나는 어떻게 해서든 원래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구나…


지금 나한테 뭐가 제일 중요한 지 물어봤을 때 사실 친구 만나는 것보다 메일 보내고 글을 쓰는 게 더 중요했다. 친구 만나는 걸 무리하게 하지 않고 줄이면서, 다른 일정을 없애면서 하기로했던 리스트업을 하고 메일을 보내자, 그리고 글 쓰는 것에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다짐하고 30분이 채 되지 않아, 가족 그룹 채팅방에 가족들이 모여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분명 며칠 전에 음력 날짜를 확인했건만 (분명 입국하고 난 뒤였는데) 잘못 계산했는지 오늘이라고 했고 바로 그룹 비디오콜을 걸었다. 그렇게 30분이 더 가고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엔 파트너에게 전화가 오더라. 그렇게 또 40분 전화를 받으니 내가 약속한 시간은 다 지나가있었다.


대니와 전화를 시간을 오버하면서 하던 것도, 아빠 생신으로 가족들과 전화하는 것도, 파트너의 전화를 받는 것도, 모두 다 같은 패턴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내 우선순위, 나에게 중요한 걸 다른 사람을 핑계로 대고,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나 지금 중요한 일이 있어서 끊어야 해’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내가 해야할 일을 미루고, 다음에 하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합리화 하고 자책하고. 이 고리를 끊으려면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 해결책으로 매 약속을 했던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놨다. 




오늘 또 발견한 건 책 소개 이벤트를 한다고 왔는데 막상 기회가 생겼을 때 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대니와 전화 하면서도 끝까지 책을 소개하지 않으려는 나를 봤고, 오늘은  마지막에 전화 끊기 전에 하나만 더, 하면서 책을 소개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찾고 있는 것들을 말했다. 마지막에 책을 소개하고 끝냈지만 이걸 제일 먼저 했을 수 있었다. 


이걸 깨닫고 갔던 저녁 식사 때는 친구들 앞에서 먼저 책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이 아니다. 아드난이 먼저 물어봐줬다). 아드난과 헤티는 실물 책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아드난이 한국책을 보면서 완전 최고라고 멋지다고 해줬다. 책과 이야기를 소개하는 건 이번에 잘했지만 아쉬웠던 건 나와 책/이벤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음 기회로 만들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시간과 연락처를 따자! 그리고 그들의 감상을 적어달라고 하는 걸 잊어버렸다. 포스트잇에 순서와 질문, 개요를 적어 다녀야겠다.  


한 친구는 이 자체가 커뮤니티를 서포트하는 것 같다면서 내 주변 도서관에 가서 물어보고 그냥 해보라고 했다. 이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내일 메일을 보내고 시간이 남으면 주변 도서관을 돌아다녀야겠다.


이미 정해진 북 이벤트가 뭐고 어디서 하는지 물어보는 친구들도 여럿있다. 분명 내가 이벤트를 게릴라 식으로 하고 있다, 어떤 세팅이라도 좋으니,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 설명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 수동적이다는 걸 느낀다. 동시에 내가 결정을 하지 않고 있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달려와줄 사람들이 무궁무진하다. 내일 첫 번째로 일어나자마자 맨처음 이벤트를 허락했던 서점에 연락하고 장소를 묻자. 그리고 친구들을 모두 초대하자.


이번주 커뮤니티 센터에서 책 이벤트가 있는데 1시간 정도 한다고 하니 한 친구는 너무 짧은 것 같다며 자긴 한 3시간 할 줄 알았다고 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난 아직 1시간이 편하다. 해보고 늘리거나 줄이면 된다.



말을 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지지하는 우리 가족들. 아빠는 친구들에게 책 10권을 사서 돌린다고 하고 엄마는 이미 친구를 시켜서 책 2권을 샀다고 했다. 엄마는 여전히 날 몰래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있는데 사촌 동생이 인스타로 내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보고 이모들과 나눈다고 했다. 포스팅도 잘 하지 않고 주로 스토리로 남기는데 그걸 계속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엄마보고 아이디 알려달라니까 여전히 알려주지 않았다.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23일째입니다.

남은 약 3주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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