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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Oct 11. 2023

이제 돌아가는 날짜 2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28 북토크를 할 현장 방문 + 3년 만에 보는 친구 + 중매 설 계획

문화원이 있는 Embankment에 허둥지둥 대면서 동시에 제 시간에 도착했다. 사실은 워털루 역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한 번에 올 수 있었는데 내가 딴짓을 하면서 돌아다녀서 그런 건지 앱이 날 골탕 먹이려 한 건지 골목을 돌아돌아 도착했다. 덕분에 신기한 골목이며 오래된 펍 등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헤드폰을 쓴 사람들만 아니면 주변 풍경만 봤을 때 빅토리안 시대 혹은 그 전에 와있는 것 같았다.  


단 1~2분 전에 도착해서 아직 미팅을 하기로 한 담당자님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로비 옆쪽으로 있는 전시 공간으로 가서 전시를 보고 (초록색으로 된 공간에 검은 우유처럼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 설명을 읽진 않았지만 초록색 필름으로 덮인 유리창을 보면서 잠시 우리가 각자 가진 필터가 떠올랐다. 우리가 초록색 필름으로 된 유리창 안쪽에 살고 있지만 그걸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삶은 어떤가. 각자 자신들의 색깔 필름이 있다는 걸 떠올렸다. 필름 자체가 강력해서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또 유리창 건너에는 급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완전 다른 세계 같았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시라도 예의에 어긋나 보일까봐 (동시에 가만히 앉고 싶기도 했었다) 로비에 앉았다. 


그것도 2~3초 유지 됐을까…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뜬 강아지마냥 로비를 돌아다니며 브로셔를 보고 그러다 약속 시간보다 4분쯤 시간이 지나,  분명히 한국문화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혹시 그게 오늘이 아닌가? 혹시라도 만나자고 한 것이 환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상태로 이메일을 열어 오늘 만나기로 했던 담당자님과 대화를 확인하고 데스크에 계시는 분께 연락을 부탁드렸다. 신호가 가지 않는다고 하셔서 오는 길이거니 싶었다. 언제 오실지 모르고 또 젠과 5시 30분에 전화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조금 당황하고 걱정되고 하는 게 있었다. 


한 외국인 방문자가 아래층으로 내려가길래 호기심에 나도 내려갔고 내려가자마자 이벤트 장소를 마주했다. 알렉스와 미라가 참석자들과 아이컨택을 할 수 있을 정도로 cosy하다고 했는데 딱 내려가서 보자마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정면과 왼쪽에는 도서관 공간이 나왔고 오른쪽으로는 무대와 의자가 놓인 공간이 나왔다. 대충 행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상해봤다. 


그리고 사무실이 연속된 복도를 쭉 걸어가 본 뒤 로비로 올라왔다.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데 두 명의 여성이 내가 앉아있던 소파에 오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 분은 자신 때문에 늦었다고 사과를 하셨고 한 분은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한 번에 내가 만나기로 했던 담당자님과 일행 분이라는 걸 깨닫고 인사했고 담당자님은 나의 다음 일정을 걱정하시며 워털루 역 쪽으로 나갈까 물어보셨다.


건물 안에서 미팅을 할 줄 알았는데 1~2초 당황하다가 나가자고 했고, 걸어가며 담당자님은 자신을 소개해 주셨다. 털털함과 친절함에 바로 무장해제가 됐다. 


책이 한국에서 독립 출판으로 출간된 것도, 아마존으로 출판된 것도 알고 계시고 심지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알고 계셨다. (어떻게 아셨지???—무엇을 보셨고 어떻게 아시는 지 여쭤볼 걸! 내가 부끄럽다고 말하는 게 너무 강력해서 담당자님의 말을 충분히 듣지 못했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됐는지, 런던을 떠나 멕시코를 가게 됐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나눴다. 담당자님도 백그라운드를 나눠주셨는데 역시나 수퍼파워 능력자셨다. 


South Bank에 가게 됐는데 현재 거기서 런던 필름 페스티벌을 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감독들, 배우들이 보인다고 했다. (헐리웃 배우 친구가 떠올랐다) 이번 런던 필름 페스티벌에서는 한국 영화는 딱 한 편 놈놈놈을 찍은 감독분만 초대됐다고 하셨고 한 달 뒤에는 같은 장소에서 한국 필름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했다. 현재 12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고 다음주에만 4 개의 행사가 진행된다고 했다. (게다가 다음 달에 중요한 행사로 갑자기 일이 바빠지셨다며 한국에서보다 영국에서 더 바쁜 시간을 보낸다며 너털웃음을 지으셨다.)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해주시며 행사 진행이 괜찮을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았다.


1.    다음주에만 4개의 행사가 진행된다.—> 카파가 있나? —> 행정 상으로는 가능하다


2.    당장 다음주 행사기 때문에 프로모 시간이 없다. —> 사람이 많이 오지 못할 것이다


책에 관해 설명하고 나는 내가 이걸 하는 이유를 나눴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런 시간을 가졌는데 다들 배경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이런 세션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이 된다고 나눴다. 이걸 최대한 많은 사람과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대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이벤트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 내가 있는 동안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다. 


어떤 형태의 행사를 생각하는지 생각을 나눴고 책 이벤트를 여럿 해봤지만, 이런 형태는 보질 못해서 문화원에서 하는 것 자체로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내가 런던에 있는 시간에 맞춰 행사를 진행하기에 촉박한 시간인데도 연락을 주신 것에 감사를 표현했는데 당연한 거라면서, 언제든 가치가 있는 일이면 한다고. 문화원을 가치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하셨다. 이 부분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


내년에도 오냐고 물어봐 주셨고 내년에 또 해볼 수 있겠다고 말씀해주셨다. 비행기를 펀딩해주실 순 없지만 강연비에 빵빵한 프로모션이 가능할 거라고 해주셨다.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일을 하러 만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했던 대로 유쾌함과 솔직함에 그냥 무장 해제를 시켜주셨다. 어찌나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목소리가 왜 이렇게 좋은 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끝까지 타이밍을 놓쳤다. 







목요일 저녁에 3시간 짜리 세미나 하나를 준비하는데 나는 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늘 처음 내가 세미나를 리딩한다는 걸 알았다. (메인 리딩은 아니다). 약간 패닉인 상태에 내일/목요일 일정이 있지만, 중간중간 짬을 내서 준비를 하려고 계획을 짰다.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뒤로 빠지려고 하다니 생각해보면 조금 웃긴 자세다!


3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코로나가 도달하기 직전 마이에미에서 지냈던 넬슨을 만났다. 런던에서 본다는 게 정말 이상했고 오랜만에 보지만 동시에 오랜만인 것 같지 않다고 서로 말했다. 


넬슨과의 대화는 항상 즐겁다. 딥하면서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대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넬슨이 나를 자신과 비슷한 경향의 사람으로 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가 보기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나는 자유로운 고양이 같은 사람으로 세계를 이리저리 누비는데 내가 파트너와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내가 하는 행동(잘 연락 안하고, 어디로 자유롭게 슝 여행가는 것 등)이 딱 자신이 할 행동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가끔씩 하루 이틀씩 세상으로부터 사라져서 아무와도 연락을 잘 하지 않는데 자신이 과거에 만나던 사람은 그걸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어려웠다고 했다.


어쩌다 양자 역학으로 주제가 옮겨 갔고 우린 둘 다 양자 역학을 몸으로 이해한다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우린 물체를 전혀 만질 수 없다고 양자 역학 이야기를 하다가 넬슨은 요즘 자신 안의 힘이 강력하다면서 어떤 사람들이 현재의 자신과 맞는지 아닌지를 그냥 단번에 느끼고 심지어 슈퍼에 가서 쇼핑을 할 때도 어떤 바나나가 자신과 ‘맞는’ 바나나인지 ‘아닌’ 바나나인지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넬슨은 ‘뭐?’라고 물었고 


내가 ‘난 바나나야’라고 했다. 내가 ‘맞는’ 바나나인지 봐봐, 라고 하니까


넬슨이 그제야 내가 어떤 장난을 치고 있는지 이해하고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리더니 맞는 바나나라고 장바구니에 담아야겠다고 했고


나는 바나나가 널 따라가길 거부한다고 말하며 드립을 마무리 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mi casa es tu casa 라고 말하는데 버벅거리니까 무슨 일이냐고 스페인어 완전 망가졌다고 했다. 나는 몰랐던 사실인데 넬슨이 보기에 내 스페인어는 항상 좋았다고 말해줬다. 지금은 잘하지 못하지만, 거의 까먹었지만, 원어민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좋았다. (넬슨은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으로 성인기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살았다) 


넬슨은 유럽에 6개월, 마이애미에 6개월 사는데 자신의 목표는 유럽에 사는 거라고 했다. 일단 지금은 비자 때문에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오늘 네덜란드에서 런던으로 왔는데 굳이 나를 보러 왔다고 말해주는 스윗한 친구. 다음주 쯤 같이 관광객 놀이를 하기로 했다. 마침 그의 누나가 National Theatre에서 일한다고 티켓을 구해보겠다고 했다. 


Foyler와 일하는 담당자님부터 극장에서 일하는 넬슨의 누나까지 손을 뻗어보면 계속 뭔가 연결된다! 내 원래 커리어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신기함과 만족감이 동시에 든다.





집에 와서 젠과 얘기하면서 젠과 넬슨이 참 비슷한대가 많다는 걸 깨달았다. 소설가답게 상상의 나래를 서서 이미 둘을 서로 소개시켜주고 서로가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결혼식에서 둘이 나에게 고마워 하는 장면, 내가 그들의 'best woman'이 되는 걸 상상했다.


당장 월요일에 두 사람과 동시에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화원 담당자님께 온 메일에 어쩌면 행사를 다음주 수요일이 아닌 월요일에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당장 목요일 저녁, 금, 토/일 풀로 참석하는 세미나가 있어 남은 이번주는 꼼짝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일단 중요한 건 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시간을 확정 짓는 것! 그러고 나면 옛 동료와 친구들에게 알릴 수 있다.


계속 답장을 기다리던 힙한 서점에서도 연락이 왔는데 (오늘 이동하면서 독촉 메일을 보냈다 ㅎㅎ) 참여자 연령대를 어린이로 갈건지 어른으로 갈건지 정해달라고. 지금까지 어른 대상이었기 때문에 어린이도 해보고 싶은데 동시에 새로운 대상자를 하기에 그걸 ‘잘’ 운영할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이럴 때는 그냥 어른으로 가야하는데 항상 난 새로운 걸 해보고 싶고 발전하고 싶다. 친구의 조언을 따라 일단 오늘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결정하자.


내일은 처음으로 아침에 아무런 미팅이 없다. 전화를 해야할 것이 여러개 있긴 하지만 나의 목표는 늦잠 자기!! 


오늘 밤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입술이 갑자기 부어올랐다. 젠은 내가 잠을 못자서 면역체계가 고장난 거라고 말했고 일단 알러지 약을 먹었다. (발목도 피부도 점점 심해지기만 하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자지 하면서도 젠과 나는 둘 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푹 자는 걸 떠올렸다. 오전 9시 도착 비행기라 가는 내내 자긴 해야한다.


여하튼 2023년 10월 10일 화요일도 끝!

현지시간 231011 2:05 AM 

헐 돌아가기 딱 2주 남았다. 2주도 안 남았다!!!!!!!!!!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28일째입니다.

남은 2주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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