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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공장 Oct 12. 2023

좌절과 희망 그 사이 어딘가

#30 여행하며 4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할 때

오랜만에 오전 일정이 없어서 의도적인 늦잠을 잤다. 11시쯤 베게에서 벗어났을까? 제일 먼저 기억 난 것은 어젯밤에 적으려다 말았던 이메일!


런던에 온 지 첫 주에 책 행사 OK를 받은 힙한 서점이 있다. 그간 많은 이벤트가 있어서인지 나랑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런지 OK를 받았지만 날짜와 시간 확정까지 4주가 걸렸다. 드디어 어제 이벤트 링크를 받았는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연령대의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만 8살 이상의 어린이)


서점에 얘기해서 타깃 연령대를 고쳐달라고 할 지 아니면 그대로 어린이로 한 번 진행해볼지 어제 선택을 하다 시간은 가고 글을 써야해서 친구의 조언에 따라 일어나자마자 선택하기로 하고 자버렸다.


일어나니 11시. 벌써 메일이 온 지 12시간 이상이 지난 걸 보고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선택하기가 어려워서 답답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면 강연과 활동 내용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 만 6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책 행사를 진행한 적은 있었지만 (9월달에 글라스코에서 2차례) 1. 내가 원하는 형태의 집중과 관심을 얻지 못했고 2. 그 자체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첫 행사기 때문에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아 만족하는 진행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8세 이상의 어린이를 데리고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미지의 세계이기도 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동시에 잡힌 일정이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거고 지금까지 내가 해온 워크숍이 모두 어른 대상이었기에 짧은 시간에 내가 잘하는 걸 하는 게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이번 여정의 포인트는 많은 기회를 얻어 많이 책 행사를 해보는 것이었기에…


긴긴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 다른 행사들처럼 16세 이상으로 공지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결정을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메일을 보내 8세 이상의 어린이와 어른들로 고쳐달라고 했다.


   

최대한 inclusive 한 행사가 되고 싶었다. 7세 이하 어린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8세 이상인 사람들은 모두 참석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전달하고 싶었다.


안 해 본 걸 해보는 게 도전이 됐다. 어른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잘 하는 이유는 많이 해봐서 그랬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아나, the best age group ever이 될 수도 있다.


못해봐서 안해봐서 그래서 안 해는 날 성장 시킬 수 없다. 그건 내가 지금 가고 싶은 방향이 아니다.




오늘은 

총 12곳에 답장을 보내고

받은 답장을 리스트에 업데이트 시키고

런던 소재 5 개 대학 도서관과 78개의 이메일을 총 93개의 public 도서관에 보냈다.



다 처리하고 나니 오후 3시였는데

바로 80분 거리에 있는 9년지기 친구 마크네 집으로 이동했다. 4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기차가 캔슬되고 퇴근 시간과 맞물리면서 5시에 도착해 버렸다. 동시에 오전에 밀린 전화가 8시부터 진행되면서 그와의 시간을 충분히 쏟는 것 같지 못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굳이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런 지 더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큰 사랑의 표현인데 내가 원하는 만큼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혹은 상대가 나와 있으면서 다른 일들을 하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마크와 이야기 하는 시간이 점점 연장되면서 분명 마크에게 9시부터 나는 글을 써야 한다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가 나의 시간을 갖기 시작한 건 11시였다.   

밤 11시에 앉아서 한 1시간 정도 메일 확인 및 답장을 하고 12시 30분부터 1시까지 30분 전화를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1시인데 내일 아침에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러면서 내일 세미나 준비를 하고 전화하고 직접 세미나를 진행하는 모든 게 부담으로 다가왔는데 아침에 할 게 많게 느껴졌고 동시에 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다른 것들이 나왔다. 현재 (1) 세미나 하나를 준비 중이고 (12일 목요일 저녁) (2) 책 행사를 가능한 많이 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고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동시에 (3)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다. 아, (4) 글을 쓰고 정리할 시간도 확보하고.


여러 가지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이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데 (과거의 나였다면 이미 압도 당해서 애를 먹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뭐가 문제일까? 쓰면서 깨달았다. 사실 나 스트레스 받고 있나? 시간과 모든 것에 통제를 가진 것 같았는데 어느새 할 일들의 사이를 뛰어다니고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할일 사이를 뛰어다니는 토끼.


한국에 있었을 때는 하루를 여유롭게 시작했는데 뭐가 달라졌을까? 한국에서는 하루의 시작을 문자 확인과 전화로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글을 쓰고 혹은 내 페이스에 맞게 시작했다. 적어도 9시에 일어나서 오전 시간이 많았다. 이동과 약속이 없었다. 그나마 약속이라면 전화나 줌 밖에 없었다. 크게 달라진 건 이동 시간과 arrangement를 해야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한국에서는 느려도 괜찮았고 1주일 메일을 확인하지 않아도, 폰을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근데 여기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이 나의 힘을 빼고 있는가? 뭐든 내 선택이다. 해야만 하는 건 없다. 그냥 내가 선택하는 것만 하는 것이다. 

어차피 세미나를 내일 할 거라면 대화를 더 적극적으로 나누고 재밌게 나누고 게임으로 가져가자. 깨닫고 나니 오늘의 경우는 해야만 한다로 가져갔던 것 같다.


이걸 인지하고 뭐가 나에게 중요한 지를 다시 보고 나니 다시 내 의도와 행동이 일치하게 되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에세이 쓰기. 내일 목요일에 중요한 건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여기서 ‘성공’이라는 건 내 친구들이 얻을 걸 얻을 수 있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게 할 일 목록으로 생각 되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다시 한 번 연결 되는 장으로 가져가기.






오늘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이동하면서 전화는 하면 안되겠다: 시간을 절약하겠다고 기차 오기 5분 전 친구와 통화로 사실을 알려주려고 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만큼 집중하기가 어렵다. 동시에 시그널도 좋지 않고 소음도 대단하다. 효과적이지 않다. 조용한 곳에서 집중해서 전화하기. 완전히 전화 통화하는 데 나를 헌신하기. 

내가 문자로 적었어도 사람마다 그걸 받아들이는 건 너무나 다르다. 생각해보고 오라고 한 걸 생각해보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 자체가 적혀 있었는지 인지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몇 시 부터 몇 시까지라고 여러차례에 걸쳐 말했지만 그걸 전날이 될 때까지 인지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각자의 맹점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듣기가 있다. 나는 지금 그걸 알고 아직 모르는 내 친구들을 오히려 더 관대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 친구가 내가 무슨 추천을 해준 걸 보고 다단계라고 말한 것에 대해 찜찜한 감정을 직접 말했다. 내가 다단계를 그녀에게 권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날 그 정도 밖에 생각하지 못하나? 하는 것과 내 말이 맞아, 친구가 틀렸어! 하는 내가 동시에 발견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다단계 같다고 말해준 건 나를 걱정하고 동시에 사랑해서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걸 나누고 널 오해한 것 같다고 나누니 친구도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전에 지냈던 절에 가보라고 권유하려다 또 다단계라고 생각할까봐 멈췄는데 그 멈칫대는 마음도 같이 나누고 절 이름도 알려줬다. 이런 걸 직접 바로 얘기하다보니 가벼워졌고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그녀는 돈을 많이 쓰게 하는 건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돈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과 그로 인해 나도 다단계라고 생각했던 것, 내가 선택한 것이어도 돈을 쓸 때 기분이 나빴던 걸 나눌 수 있었는데 나누지 못했다. 마크가 기다릴지도 몰라서 그런 건지 그냥 이야기가 길어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걸지 하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해야겠다. 


약속을 깨는 친구에게도 힘 있게 존재하며 동시에 친구도 힘있는 존재로 내가 임파워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온다고 해놓고 데드라인이 있다며 못 오는 걸 미안해 하는 친구에게 미안해 하지 말라고 이 자리는 너를 위한 자리고 이 자리에 오는 것 자체가 널 힘 빠지게 한다면 오지 않는게 나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다음에도 비슷한 행사를 하니 그때는 꼭 시간 매니징을 하고 오라고 했다. 넌 할 수 있다고. 넌 큰 사람이고 이미 다 알고 있고 똑똑하고 할 수 있다고. 친구는 고맙다고 했는데 마치 알지 못하는 사실을 들었을 때의 놀람으로 말했다. 그녀는 실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다. 


누군가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 혹은 문제의 상황에 있는 나를 볼 때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난 지금 내 생각과 행동 안에 갇혀서 그림과 방향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또 남의 것이 더 잘 보이지 않나. 


어제 젠과 나만 내일 세션에 호스트로 들어간다는 걸 알았을 때 패닉 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 뒤로 숨고 세미나에서 내 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걸 발견했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패닉했다. 오늘 그걸 나누니 젠이 웃으면서 자기도 그걸 느꼈다고 했다. 런던 센터가 하는 방법이 꽤나 파워플하다는 걸 경험했는데 나를 대담한 리더로 보고 내가 충분히 내 사람들을 견지하고 임파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난 내일 리더로 연습하는 자리를 얻었다. 동시에 북토크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야기하는 걸 연습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난 내가 주목 받고 이야기 하는 것에서 물러나서 다른 사람에게 그 기회를 돌려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북토크에 워크숍을 끼워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대충 쓰고 나니 새벽 4시에 가깝다 (절대 난 밤 인간이 아니다! 오늘을 제외하고는 매일 꾸벅꾸벅을 계속 경험하고 있다). 마크와 나눈 아주 딥하고 재밌는 이야기는 적진 못했다... ㅎㅎㅎ 내일의 나에게 성공적인 세미나와 그 과정에 있을 재미를 토스하며 이만 총총


엑셀과 숫자를 사랑하는 소설가로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살았습니다.

코로나로 4년정도 국제여행을 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보러 여행 왔다가

책을 내고 

외국에서 책 이벤트까지 하게 된 여정을 담았습니다.


워낙 매일 영화같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일상이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무지 기대됩니다.


총 6주 동안 여행하고 있고

오늘은 30일째입니다.

남은 1.5주+의 여행동안

매일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올라오지 않으면 독촉 부탁합니다)
 

정제되지 않은, 여행지에서 바로 전하는 진행형 글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생한 스토리를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yunju_writer


해외에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책이 궁금하다면: 

The Words Factory (영문 버전) 혹은 글공장(한글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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